미국의 영화 배우 탐 행크스

퀴글리 출판사가 매년 발표하는 '흥행 영화 배우 톱 10'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퀴글리 순위는 극장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지난 1년 간 극장에 가장 많은 흥행 수입을 올려 준 사람을 묻는 투표인데요.

그동안 행크스는 총 11번 이 투표 10위권에 들었고, 5차례나 1위를 차지했습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필라델피아'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 등으로 유명한 행크스는

올해는 사실 이렇다 할 대표작을 추가하는 데는 실패한 것 같은데

'레이디 킬러' '터미널' '폴라 익스프레스' 등 3편의 영화에 출연해 관객은 꽤 끌어모은 것 같습니다.

 

영계 신인도 아니고, 꽃미남도 아니고, 몸짱은 더더욱 아니고,

내년이면 50세가 되는 나이에 연기력 하나로 할리우드 최강의 파워를 구가하고 있으니

주연급 가운데 연기 되는 배우를 찾기 힘든 국내 연예계 현실에 비춰 부러운 일입니다.

 

 

 

  

 

 


2위는 '또다른 Tom'인 탐 크루즈가 차지했습니다.
탐 크루즈는 10위 내에 17번 들어가 최다 기록을 갖고 있고, 1위에도 6번이나 올랐습니다.
올해는 '콜래트럴' 한편 뿐인 것 같은데 2위에 오른 걸 보면

3편으로 간신히 1위를 차지한 탐 행크스보다 '관객 동원력'은 더 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미남이긴 하지만 그가 할리우드에서 얼굴로 승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탐 행크스에는 못 미치지만 43세면 만만찮은 중년인데 역시 부러운 일입니다.

 

그밖의 순위를 봐도 30대 후반 이상이 대부분입니다. 

 

3위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4위는 니컬러스 케이지

 

5위는 짐 캐리

 

6위는 덴절 워싱턴

 

7위는 줄리아 로버츠

 

8위는 윌 스미스

 

9위는 브래드 핏

 

10위는 애덤 샌들러

 

 

 

             

 

 

           

 

 

 

모두 결코 젊지만은 않은, 관록 있는 배우들이지요.

거친 액션 영화에 주로 출연하는 니컬러스 케이지가 마흔한살,

꽃미남 이미지의 브래드 피트도 만으로 마흔두살,

경쾌한 코믹 연기로 항상 젊게 느껴지는 짐 캐리도 마흔세살이니까요.

나이를 먹지 않는 것 같은 덴절 워싱턴은 어느덧 51세군요.

 

장난스러운 미소의 악동 애덤 샌들러는 서른아홉,

언제나 '프리티 우먼'인 줄리아 로버츠는 서른여덟,

래퍼 이미지 때문에 더 어려보이는 윌 스미스는 서른 일곱

유난히 동안인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만 31세로 제일 젊군요.

'길버트 그레이프'에 출연했을 때에 비하면 많이 성장한 거지만요.

 

우리나라에선 40대 이상의 배우는 '아저씨 배우'로 인식되기 때문에 보통 조연을 맡고

요즘 인기 있는 백윤식씨 같은 경우도 나이 때문에 종종 희화화되곤 하죠.

그러나 할리우드에선 탐 크루즈가 40대라고 해서, 탐 행크스가 50을 바라본다고 해서

콜린 패럴 같은 20대 주연급 배우와 비교해 우습게 취급받는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최고 대우를 받는 1류 배우들은 40대 이상이 많지죠.

콜린 패럴에 비교할 수 없는 관객동원력을 유지하니까요.

 

우리나라에선 최민식, 송강호 같은 경우가 그에 해당하겠죠.

(개인적으로 두 사람이 나온 영화는 작품에 상관없이 '무조건 보러가는' 편입니다.)

그러나 극히 몇명을 제외하면 중년배우가 이들 정도 관객을 동원하기는 매우 힘듭니다.

한때 관객동원력 최고로 꼽혔던 한석규, 박중훈 등도 최근엔 흥행이 부진했죠.

할리우드 중년 배우들은 전세계적으로 관객층이 두터운 데 비해

우리나라는 20~30대가 주요 관객층이고, 그들이 젊은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엔 통신사 등에서 10대들 상대로 영화 할인 혜택이 많아져서 10대 관객도 상당히 늘어났지요.

 

물론 가끔은 중년층을 겨냥한 중년 배우들의 영화가 기획되곤 합니다만

연기가 안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둔 경우는 드뭅니다.

작품성도 작품성이지만, 젊은 관객들이 배우의 나이에 상관없이 영화를 보는 안목을 기르거나

중장년층이 일제히 극장으로 뛰어나오지 않는 한 쉽게 해결되지 않을 문제입니다.

(좋은 영화 있으면 친구들이랑만 보지 마시고 부모님께도 좀 보여드리세요!)

하긴 중장년층이 극장에 와서 젊은 배우만 찾으면 아무 소용 없으니

이상적인 것은 관객들이 배우가 아닌 작품성을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트렌드가 정착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관객동원력이라는 건 (작품에 상관없이) '그 사람이 나오면 무조건 보러가는 관객이 있다'는 뜻인데

관객동원력이 확실한 배우라면 나이가 들어도 흥행에 힘이 있겠죠.

개인적으로 위 목록에서 '이 사람이 나온 영화라면 웬만하면 꼭 보러 간다'는 사람은 1위, 2위 정도인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이 나온 영화라면 웬만하면 보고 싶다'라고 하면 3위와 10위가 우선 추가됩니다.

디캐프리오는 배우가 좋아서라기보다는 그가 평균적으로 괜찮은 작품을 고르기 때문에,

애덤 샌들러는 자주 '별로인 작품'을 고르긴 하지만, 그를 보는 것이 그저 즐겁기 때문입니다.

 

많이 봐도 또 보고 싶은 배우, 새해엔 그런 배우가 충무로에 더 많아지길 소망합니다.

'그 사람이 나오면 무조건 보러 간다'고 말할 수 있는 배우가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요.

그런 배우가 있으신가요?

 출처:인사이드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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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5-01-05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카프리오도 마찬가지죠. 타이타닉 이후에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으니...

근데 새벽별님 디카프리오를 녀석이라 하시면 님의 나이가...? ㅋㅋ.

니르바나 2005-01-05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영어발음공부를 위해 선택한 배우 탐 행스입니다.

처음에는 반복해서 보아도 질리지 않을려고 선택한 배우인데,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배우더군요.

이제는 가장 친근한 목소리를 저에게 들려줍니다.

stella.K 2005-01-05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저도 탐 헹스 좋아해요.^^
 

출처:기쁨이 열리는 창

  
 * 풍류의 참 佳客 황진이 누구를 위한 吟詠이었나..?   
  

  < 먹과 청의 조화 >  
  
 ※ 황진이의 인생과 시문학..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황진이..
그녀의 이력이 단순한 조선 중기 명종조 화류계의 명기로, 
음풍농월의 명인으로, 그렇게 알고있으나,
그 이면 또한 자신을 사모하다 상사병으로 죽은 가엾은 영혼이 타고 가는 
상여위에 자신의 저고리를 벗어주어 그 가는 자의 영혼을 달래, 
순탄히 그 가는 저승으로의 길을 가게 했던 것으로 알고있다.
때문에 자신의 일생이 만인을 위한 꽃이 되어버린 숙명적인 여인으로 
누구나 그렇고 그렇게 황진이를 인식하여 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에 흐르는 진실, 사랑 그리고 그녀 의 시문학 등 
그녀가 소유했던 삶 속의 모든 것들은 우리후대 인들이 
그녀의 심오한 내면세계를 모르고 한 말이 거의 태반인 것 또한 사실이리라 생각해본다.   
 
그러면 그녀가 가졌던 사유  인생관 그리고 애정관을 그녀의 한껏 승화된 마음의 창, 
그녀의 작품들 한시와 시조란 이름의 열차를 타고 
조선 중기의 옛 시대로 시간 여행을 松都의 옛 길로 떠나 보기로 하자. 

그녀는 한시보다 시조의 대가로 알려져 있으나 
한시에도 아주 능했음을 다음 시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능소화와 참새> 

* 詠半月. 반달을 노래함..

誰斷崑山玉  누가 곤륜산 옥을 떼어내어 
裁成織女梳  직녀의 빗을 만들어 주었는가
牽牛離別後  견우신랑 직녀아내 이별 후
愁擲壁空虛  시름에 겨워 허공에 던져두었네 

崑崙山은 전설상의 산으로 거기에는 옥이 많이 난다고 하는데 
그곳에서 쪼금 찍어낸 참 빚 모양의 달이 은하를 배회한다는 
황진이의 섬세한 기지야말로 시인의 경지를 초탈한 선녀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감히 이拙人은 생각해보는 것이다. 

황진이의 그 경지는 李白 杜甫 孟浩然를 넘어 
우리들의 가슴에 영원한 누이로 자리 매김 하는 것이 라 생각해본다. 
특히 시를 사랑하는 이 세상의 여인들은 황진이의 다정다감한 그 韻을 사랑하리라.

黃眞伊 朴淵瀑布 徐華潭(徐敬德) 이세 傑物이 松都三絶이라,
사람들은 그 으뜸이 황진이라 했다한다니......


 < 墨竹圖 > 
 
* 送別蘇陽谷詩..

月下庭梧盡  밝은 달 아래 뜨락 오동잎 다 지고 
霜中野菊黃  서리 내려도 들국화는 노랗게 피어있구나 
樓高天一尺  누각 높아 하늘과 지척의 거리 
人醉酒千觴  사람은 취하고 남겨진 술잔은 천이라
流水和琴冷  흐르는 물 차가운데 거문고는 화답하고 
梅花入笛香  매화가지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와라 
明朝相別後  내일 아침 그대, 나  이별 후 
情與碧波長  정은 물결 따라 멀리멀리 가리라. 

이 시는 황진이가 蘇陽谷(蘇世讓)과 이별 할 때 지어준 시라 하는데 
그 節奏感이 음악처럼 물 흐르듯 壓卷이다.
流水와 冷은 소양곡을 말함이요 
菊花 梅花는 황진이 자신을 隱喩한 것이라 생각해본다.

여기서 소양곡은 당대의 이름난 학자라고 하는데 
그는 여색에 신중하기를 친구나 후학들에게 역설하면서 
내가 만일 여색에 眈溺하며는 나을 개새끼라(犬子) 부르라 하였다, 
하지만 그는 황진이의 미색과 풍월에 현혹되어 自繩自縛 하였다하니 
그를 친구들은 犬子님 하고 불렀다한다.
풍류란 바로 이런 것인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 石榴의 孤獨 > 

* 청산리 벽계수.. 

靑山裏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明月이 滿空山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이 시조에는 重臣 李氏 碧溪守와의 헤어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碧溪守는 벽계고을의 수령으로 목민관을 지칭하는 말로 
지금의 개성 부근으로 추정하고있다. 
이와 음이 같은 "碧溪水"라 하고 자신의 기명인 "明月"을 짜 넣은 
황진이의 예리한 기지이리라 생각해 본다. 

황진이는 순수하지 못한 꾀임 수로 자신을 가까이 하고자 한 
벽계수를 이 시조를 지어 말에서 떨어지게 하였다 하는데 
이는 엉뚱한 생각을 품은 벽계수를 보기 좋게 골탕먹이는 
황진이의 여유로운 풍류의 여운이 아닐까..? 

蛇足하면 이 시조는 엉큼한 자 벽계수를 보기 좋게 조롱한
축객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단히 역설적으로 벽계수를 조롱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이 시조를 듣고 낙마한 어리버리한 벽게수란 자는 진정 풍류를 알았단 말인가? 

* 산은 옛 산, 등.. 2수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물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니 옛 물이 있을소냐
人傑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노매라.

청산은 내 뜻이요 녹수는 님의 정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 할손가
녹수도 청산을 못 잊어 울어 예어 가는가.

이 두 수 시조에는 한 인걸에 대한 애도와 추모의 정이 담겨있다. 
인걸은 누구였을까. 
문헌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으나 徐敬德을 말함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황진이가 평생 성인으로 우러러 사모한 인물이 서경덕이었기 때문이라 
졸인은 생각도 해본다.. 

한때 황진이는 속세를 떠나 산수를 즐겼다 한다. 
금강, 태백, 지리 등 여러 산을 유람하고 송도로 돌아온 것은 화담이 세상을 뜬 후였다. 
그녀는 화담정사의 물가에 나 앉아 "지나가는 것은 물과 같은 것, 밤 낮 없이 멎지 않는다"
"(서자여사逝者如斯)" 라는 논어 말씀을 되 챙겨본다. 

생전의 화담을 애도하고 추모한 시조는 "유한한 인생의 한 철학을 담고 있으면서도 
說理가 아닌" 정서적인 멋을 느끼게 한다. 
남성을 "물"로 여성을 "산"으로 비유한 것도 진이의 機智에 찬 풍류이리라 느껴본다

어촌의 노옹 
情 恨의 時調 3수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로더냐
있으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구타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1-

내 언제 無信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대
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하리오.
            -2-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어드란 굽이굽이 펴리라.
            -3- 

이 세 편은 情恨의 시조다. 상대방은 누구였을까. 
이에 따르는 이야기도 전하지 않는다. 
기생이었으니 각기 다른 대상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보면 이는 황진이의 풍류를 모르는 이야기다. 

이는 한 사람에 대한 애틋한 情恨을 노래한 連作으로 보아야 한다. 
1.에서는 이별에 아무런 안달 없이 보내놓고 나서야 그리워지는 사랑을, 
2 .에서는 시간이 흐르고 철이 바뀌어도 잊을 수 없는 그 사랑을, 
3에서는 그 사랑과 다시 만날 밤의 정경을 상상으로 담아낸 
일련의 작품으로 볼 수밖에 없어 
윗 삼 수도 역시 對象人이 스스로 도인, 묵객 蘇陽谷(蘇世讓)으로 추측할 수 있다.


< 수 묵 蓮 > 
* 明月이 된 황진이... 
 
 
주지하다시피 황진이는 송도출신(開城) 명기로 그녀의 妓名은 明月이라고 누구나 알고있다. 
중종 때 황 아무개 進士의 庶女로 태어났으며, 經書에 능하고 詩 ·書·音律에 뛰어났고, 
더구나 아름다운 용모는 타인의 追從不許였다 한다. 

15세 무렵에 동네 총각이 자기를 연모하다가 相思病으로 죽자 
妓界에 투신했다 하니 인간의 길흉화복은 알 수 없는 미스테리이리라.....

      - 자료출처/문학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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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담아야 할 명언..  

40세가 넘은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링컨] 

늙었다는 가장 확실한 징후는 고독이다.[올커트] 

현명한 자는 적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아리스토파네스] 

인간은 얼굴을 붉히는 유일한 동물이다. 
또한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 동물이다.[마크 트웨인] 

완전 무결을 바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괴테] 

명성은 얻는 것이요. 인격은 주는 것이다.[테일러] 

햇빛이 아주 작은 구멍을 통해서도 보여질 수 있듯이 
사소한 일이 사람의 인격을 설명해 줄 것이다.[스마일즈] 

사람은 그가 우습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가장 뚜렸이 성격을 드러낸다.[괴테] 

종교는 신을 찾으려는 인간성의 반응이다.[화이트헤드] 

죽어야 할 때를 모르는 사람은 살아야 할 때도 모른다.[존 러스킨] 

상황은 비관적으로 생각할 때에만 비관적으로 된다.[빌리 브란트] 

행복이란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노력의 부산물이다.[파머] 

사람은 누구나 마음의 집을 마련 하지만 
나중에는 그 집이 마음을 가두어 버린다.[에머슨] 

사고는 수염과 같은 것이다. 성장하기 전에는 나오지 않는다.[볼테르] 

믿음을 얻은 연후에 간[諫]하라. 
믿음을 얻지 못하면 비방한다고 한다.[공자] 

적을 사랑하라. 그들은 너의 결점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벤자민 프랭클린] 
출처:기쁨이 열리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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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가 말하는 '추사 김정희 삶과 예술'




"추사체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추사체가 뭐냐 하면 대답을 잘해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어쩌면 추사체는 우리들이 쓰고 있는 글씨들이라고 해도 될지 모른다. 그의 대표적인 글씨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를 보자. '다 떨어진 책과 무뚝뚝한 돌이 있는 서재'라는 뜻으로 제주도 유배후 강상(한강 용산변의 강마을)시절의 대표작이다. 글자의 윗선을 맞추고 내리긋는 획은 마치 치맛자락이 휘날리는 듯 변화를 주었다. 이렇게 자유분방한 글씨는 추사 김정희밖에 없었다. 빨래 줄에 빨래 걸린 듯하지만 필획이 맞으니 자유분방하다고 표현한다."

8일 오후 광주 의재미술관에서는 '완당과 완당바람전' 개막에 맞춰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삶과 예술에 관한 명지대 유홍준 교수<왼쪽 사진>의 강연회가 있었다. '완당평전'을 쓴 유교수는 추사의 글씨와 글씨체, 그리고 추사 김정희의 인생에 대하여 두시간 동안 강의를 했다. 강의내용을 요약한다.

추사의 글씨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자들은 괴기한 글씨라 할 것이요, 알긴 알아도 대충 아는 자들은 황홀하여 그 실마리를 종잡을 수 없을 것이다. 원래 글씨의 묘를 참으로 깨달은 서예가란 법도를 떠나지 않으면서 또한 법도에 구속받지 않는 법이다. 글자의 획이 혹은 살지고 혹은 가늘며, 혹은 메마르고 혹은 기름지면서 험악하고 괴이하여, 얼핏보면 옆으로 삐쳐나가고 종횡으로 비비고 바른 것 같지만 거기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유최진의 '초산잡서'에서)









'잔서완석루'와 함께 대표작으로 꼽히는 '선게비불(禪偈非佛, 사진왼쪽)'과 '판전(板殿, 사진위)' 같은 작품을 보면 추사체의 '괴이함'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선게비불'은 획의 굵기에 다양한 변화가 있어 울림이 강하고 추사체의 파격적인 아름다움이 잘 드러난다. '판전'은 추사가 세상을 떠나기 3일 전에 쓴 대자 현판으로 고졸한 가운데 무심의 경지를 보여주는 명작. 파격이라 하기보다는 어린애 글씨 같은 천연덕스러움이 있다.
추사체는 변화무쌍함과 괴이함에 그치지 않고 잘되고 못되고를 따지지 않는다는 '불계공졸(不計工拙)'의 경지에까지 나아갔다.

추사 글씨체 변화에 대하여
추사체가 예술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된 것은 천재성의 발로가 아니라 판서를 지낸 아버지 김노경과 그 선조들, 그리고 청나라 고증학이 합해져서 가능해진 것이다.
추사와 동시대에 활동한 박규수는 추사체의 형성과 변천과정에 대해 "...완옹(阮翁)의 글씨는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그 서법이 여러차례 바뀌었다. 어렸을 적에는 오직 동기창(董其昌)에 뜻을 두었고, 중세(스물네 살에 연경을 다녀온 후)에 옹방강을 좇아 노닐면서 열심히 그의 글씨를 본받았다. 그래서 이 무렵 추사의 글씨는 너무 기름지고 획이 두껍고 골기가 적었다는 흠이 있었다. ... 만년에 제주도 귀양살이로 바다를 건너갔다 돌아온 다음부터는 남에게 구속받고 본뜨는 경향이 다시는 없게 되고 여러 대가의 장점을 모아서 스스로 일법을 이루게 되니 신(神)이 오는 듯 기(氣)가 오는 듯 바다의 조수가 밀려오는 듯하였다"고 증언하였다.

박규수의 증언에서도 드러나듯이 추사체의 골격이 형성되는 계기가 된 시기는 제주도 유배생활. 완당은 55세때인 1840년 10월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되어 제주 대정현에 위리안치(탱자나무 가시 울타리 속에서만 생활하도록 하는 형벌)되는 유배의 형을 받게 된다.
유배가던 길에 있었던 일로 두가지 전설이 전해진다.
하나는 전주를 지날 때 그곳의 이름난 서가 창암 이삼만을 만난 얘기다.
창암은 전형적인 시골 서생으로 요즘으로치면 지방작가였다. 원교의 글씨를 본뜬 창암의 글씨는 속칭 유수체라 하여 그 유연성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그 흐름이 도도하지 못하여 영락없이 시골 개울물 같은 면이 있었다. 그래서 꾸밈없고, 스스럼없는 천진스러움의 진국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이삼만의 '운학유천'. 시골서생의 순수함이 있다. 대둔사 '대웅보전' 현판. 원교글씨.

그런 창암이 완당에게 글씨를 보여주며 평을 부탁한 것이다. 완당은 이때까지만 해도 배 갑판 밑에 모여 사는 쥐의 수염만으로 만든 붓 등 최고의 붓과 종이로 글씨를 쓴 '스타일리스트'였기 때문에 창암의 개꼬리를 훑어내어 만든 붓으로 쓴 글씨를 보고 일순 당황했을 성 싶다.
그때 창암은 완당보다 열여섯이 더 많은 71세의 노인이었다. 현장엔 그의 제자들이 쭉 배석해 있었다. 창암의 글씨를 보면서 완당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윽고 완당이 입을 열었다.
"노인장께선 지방에서 글씨로 밥은 먹겠습니다."
창암은 완당이 삽짝을 닫고 나가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한다.
"저 사람이 글씨는 잘 아는지 모르지만 조선 붓의 헤지는 멋과 조선 종이의 스미는 맛은 잘 모르는 것 같더라."

전주를 떠난 완당은 해남 대둔사로 향했다. 절마당에서 대웅전을 바라보니 '대웅보전(大雄寶殿)' 네 글자가 원교의 글씨였다. 완당은 초의선사를 만난 자리에서 "원교의 현판을 떼어 내리게! 글씨를 안다는 사람이 어떻게 저런 것을 걸고 있는가!" 하고 지필묵을 가져오게 해 힘지고 윤기나며 멋스러운 글씨로 대웅보전 네 글자를 써주며 나무에 새겨 걸라고 했다. 완당은 붓을 잡은 참에 '무량수각'이라는 현판 횡액을 하나 더 써주었다.


대둔사 '무량수각' 현판. 제주도로 유배가면서 써준 것이다. 획이 기름지고 윤기가 난다.


예산 화암사 '무량수각' 현판. 획이 가늘면서 힘과 멋이 함께 들어있다. 제주도 유배시절 글씨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두가지 전설은 완당 자신만이 최고라는 생각을 갖고 원교의 글씨를 낮추어보는데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 동안 누렸던 특권층의 삶과는 거리가 먼 척박하고 고독한 유배생활 8년3개월을 보내면서 예스러운 멋과 회화적 조형미를 동시에 보여주는 '입고출신(入古出新)'의 세계를 갖추게 된다. 더 이상 어깨가 올라가는 일도 없어지며 골격은 힘있고 필획의 울림이 강하게 느껴지는 추사체의 면모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
9년뒤 해배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완당은 대둔사에 다시 들러 떼어 내리게 했던 원교의 대웅보전 현판을 다시 걸게 했으며, 전주에 들러 창암 이삼만을 찾았으나 그때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제주도 유배에서 풀려난 완당은 강상(江上)에서 매우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시절부터 완당 글씨의 특징을 보면 추사체의 파격미나 개성미, 이른 바 괴(怪)가 완연히 드러남을 실감할 수 있다. 글자의 구성에서 디자인적인 변형이 대담해지고 서체를 넘나들며 자유로운 조형미를 보여준다. 붓끝에는 힘이 실리고, 획에 금석기가 있으며 필세에 생동감이 있는 등 추사체의 참 멋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때 씌어진 명작 현판 '단연죽로시옥(端硏竹爐詩屋)'은 유명한 단계벼루, 차 끓이는 대나무 화로, 그리고 시를 지을 수 있는 작은 집을 뜻하는 것으로 그것만으로 자족하겠다는 선비의 마음을 말한다. 이 현판 글씨는 글자의 구성미, 즉 디자인은 대단히 멋스럽고 획의 흐름에서 리듬조차 감지된다.



또하나 현판 글씨로 '소창다명 사아구좌(小窓多明 使我久坐)'라는 작품이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작은 창으로 밝은 빛이 많이 들어오니, 나로 하여금 오랫동안 앉아 있게 하네'라는 뜻이다. 이 현판글씨는 구성미가 아주 뛰어나다. 그리고 글자에 유머와 파격을 주어 추사체의 '괴'가 곳곳에 드러나 있는데, 특히 밝은 명(明)자의 획을 삐뚜로 쓴 것이나, 앉을 좌(坐)를 흙 토(土)위에 네모 두 개를 그려 마치 땅에 앉은 궁둥이처럼 쓴 데서는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것도 한쪽 궁둥이를 슬쩍 들고 비스듬히 앉은 듯 네모의 양감이 다르다.


말년인 과천시절 완당이 남긴 '대팽두부(大烹豆腐)'는 결국 완당이 살아온 인생의 종착점이 어디였는가를 말해주는 명작 중의 명작이다.

최고가는 좋은 반찬이란 두부나 오이와 생강과 나물 大烹豆腐瓜董菜
최고가는 훌륭한 모임이란 부부와 아들딸과 손자 高會夫妻兒女孫

글 내용과 글씨 모두가 완당의 예술이 평범성에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잘 쓰겠다는 의지를 갖지도 않은 상태에서 절로 드러난 불계공졸의 경지이다.

추사 김정희에 대하여
추사 김정희는 1786년(정조10년) 오늘날 추사고택이라고 부르는 경주 김씨 월성위 집안의 향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훗날 판서를 지낸 김유경이었다.
추사의 일생은 보통 다섯 단계로 나뉘어진다.
-태어나서부터 연경에 다녀오는 24세까지의 수업기
-연경을 다녀온 25세부터 과거에 합격하는 35세까지 10년간의 학예 연찬기,
-관직에 나아가는 35세부터 제주도로 귀양가는 55세까지 20년간 중년의 활동기
-55세부터 63세까지 제주도에서 귀양살이하는 9년간의 유배기
-제주도 귀양에서 풀려나서부터 세상을 떠나는 71세까지 8년 간의 만년기.

'조선왕조실록'에는 추사 김정희에 대해 "철종 7년, 10월10일 갑오. 전(前) 참판 김정희가 죽었다. 김정희는 이조판서 김노경의 아들로 총명하고 기억력이 투철하여 여러 가지 책을 널리 읽었으며, 금석문과 그림과 역사에 깊이 통달했고, 초서 해서 전서 예서에서 참다운 경지를 신기하게 깨달았다. ...젊어서부터 영특한 이름을 드날렸으나 중도에 가화를 만나 남쪽으로 귀양가고 북쪽으로 유배가며 온갖 풍상을 다 겪으며, 혹은 세상의 쓰임을 당하고 혹은 세상의 버림을 받으며 나아가기도 하고 또는 물러나기도 했으니 그를 송나라의 소동파에 비교하기도 했다"고 적혀있다.
출처:기쁨이 열리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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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5-01-05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한도에서 살펴 볼 수 있듯이 풍상을 겪어야 고매한 정신이 예술에 얹쳐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좋은 집안에 넘치는 재조가 말년까지 정치판에 휘둘렸다면 이 모든 예술품이 어찌 다 남았겠습니까? 그래서 세상은 알고도 모를 구석이 많은가 봅니다. 스텔라님
 


출처:작은 곰 자리 북 극 성

[謹賀新年] 성공을 위한 50가지 명언 [아침단상]




성공을 위한 50가지 명언


1. 주간계획, 월간계획, 연간계획, 3년, 5년, 10년, 평생계획을 세워라.
이 때 가능한 한 목표를 높게정하라.
왜냐하면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고,
크게 생각하는 사람이 크게 되기 때문이다.

2.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 빨리 발견하라. 그리고 그것에 미친 삶을 살아라.

3. 인간에 있어서 발전은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겠다는 기본적인 욕구에서
출발한다. 인생은 굴러가는 공이라는 체념적.운명론적 사고를 버려라.
굴리는 사람에 따라서 그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현자(賢者)는 마음의 주인이 되지만, 우자(愚者)는 마음의 노예가 된다.

4. 암기도 필요하다. 그러나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기억하기보다는 폭넓게
창조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이 더 중요하다.

5. 고쳐질 수 없는 것을 가지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
예컨대 나이와 학력과 건강과 외모의 부족한 점을 가지고 전전긍긍하지 마라.
시간만 낭비할 뿐 백해무익하기 때문이다.

6. 지나친 오만과 자신감도 금물이지만, 한편으로
나는 "천상천하유아독존적(天上天下唯我獨尊的)" 존재임을 깊이 생각해 보라.
한마디로 내 인생은 나의 것,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것.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인데, 안 될 때 안 될 값이라도 이왕이면 적극적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어깨를 펴고 도전적으로 세상을 살아보라.

7. 같은 말이라도 듣기 좋게, 긍정적으로 하라.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남을 칭찬하라.
그리고 우호적인 미소를 보내라.
화초에게도 가장 좋은 비료는 주인이 매일 아침 말을 걸어 주는 것이다.
음악을 듣고 자란 오이는 결실도 좋다는 말을 그대는 들어보지 못했는가?

8. 말을 착하고 부드럽게 하라.
악기를 치면 아름다운 소리가 나오듯이 그렇게 하면 몸에 시비가 붙지 않고,
세상을 편안히 살다 가리라.(法句經 : 101장 134절)

9. 쓰잘 데 없는 일 때문에 남과 다툴 필요는 없다.
논쟁을 벌일 만큼 중요한 일인가, 가치있는 일인가를 생각하라.
그렇다고 무조건 양보하고, 경쟁을 쉽게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10. 맹목적 입장에서 다른 사람의 견해를 수용하지 말라.
항시 무엇인가 문제가 있을 거라는 창조적 회의의 자세를 가지고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라.
즉 나라면 이렇게 할 텐데 라는 생각을 머리에서 버리지 마라.

11.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의 눈에 띄어야 한다.
강의실 맨 앞에 앉아서 화자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라.

12. 말하는 데 자신의 지식과 에너지를 모두 탕진하지 말고,
경청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쓸 수 있도록 비축해 두라.
대인(大人)은 경청하는 일에, 소인(小人)은 말하는 일에 전념한다는
옛 말이 있다.
또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성공할 확률이 낮다는 이야기도 있다.
인간이 왜 입은 하나, 귀는 두 개를 가지고 있는지, 그대는 아는가?

13. 근묵자(近墨者)는 흑(黑)이다. 진보적이고 합리적인 사람과 교제하라.
그리고 가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자가 어찌 사회를 잘 다스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가정적으로 원만한 사람과 친교를 맺어야 한다.

14. 모든 일에 소수의 비판을 무시하지 마라.
군중심리에 의하여 뜻밖에 우매한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결정을 했다면 과감하게 추진하라.

15. 때깔이 좋은 사과가 맛이 있는 법이다. 외모를 단정히, 말은 교양있게,
행동은 예의 바르게 하라. 그러면 남에게 호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16. 사회생활을 할 때 항시 나만을 생각하지 말고, 우리를 생각하라.
그리고 항시 남을 나의 입장에서 인간적으로 바라보라.
그런 연후에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도출해 보라.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 내 탓이오.

17. 위대한 종교가.철학자.정치가는 적지 않은 시간을 홀로 보낸다.
그리고 그 고독 속에서 번쩍이는 예지를 발견해 내었다.
이와 같이 명상은 뜻밖에 좋은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그러기에 홀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라.
매일매일 조용한 시간에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져라.
그리고 중요한 일이라면 조용한 곳에서
3∼4일 동안 구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라.

18. 고정관념을 가지고는 남을 뛰어넘을 수 없다.
그러기에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즉 구태의연한 사고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엉뚱한 생각이 세계를 바꾼다.
평범한 사고를 하여서는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고,
발전의 엔진을 돌릴 수도 없다.

19. 성공하는 삶은 인생에 대한 열의에서 출발하여 집념과 인내를 통하여
결실을 맺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에 도전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20. 상대에게 우정과 사랑을 바라지 말고, 먼저 다가가 꽃이 되어,
그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어라.

21. 무슨 일이든 잘 되지 않으면,
우선 거기에는 무엇인가 나의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라.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상대와의 경쟁에서 탈락되었을 때,
남을 원망하지 말고 그 원인을 나에게서 찾아라.
그리고 생각할 여유를 가지면서 재도전하든지 우회하라.

22. 인간의 마음은 크기가 한이 없어서 크게 생각하면 자꾸 커진다.
언젠가는 큰 바위 얼굴이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부단히 생각을 넓고 깊게 하라.

23. 사람을 대하는 데 말재주로써 하면 자주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
말한 것은 반드시 실천하라. 말만 번지르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말을 안 한 것만 못하다. 언행일치(言行一致).실천궁행(實踐躬行).

24.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다. 실패했을 때는 다시 일어서라.
아픈 만큼 성숙해지듯이 인간은 성공보다는
패배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25. 인생은 머나 먼 나그네길.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스텝 바이 스텝으로.

26. 말과 행동은 자신있게, 힘차게, 즐겁게,
그리고 발걸음은 남보다 좀 빨리 걸어서 진취적인 인상을 주어라.

27. 자신이 이룬 업적에 대한 공은 그 일을 함께 한 동료와 함께 하라.
공과 명예는 나의 몫이고, 희생과 책임은 부하의 몫이라는 생각으로는
리더가 될 수 없다.

28. "안되면 되게 하라."고 말하지 말고, 안되는 이유를 규명하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라."고 말하지 말고, 큰 유를 창조할 작은 유를 제공하라.

29. 비장한 말은 슬픈 얼굴로, 위협적인 말은 성난 얼굴로,
변덕스러운 말은 익살스러운 얼굴로,
진지한 말은 엄숙한 얼굴로(호라티우스).

30. 화를 낼 때 위벽은 산과 위액을 과다방출함으로써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위궤양을 가져 온다. 웃자. 한 번 태어난 인생인데,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은가?

31. 깜빡이는 한 점의 불티가 능히 넓은 숲을 태우고, 반 마디 그릇된 말이
평생의 덕을 허물어뜨린다.(명심보감)

32. 적극적.낙천적.협력적 성격을 가진 지능지수 100인 사람이
소극적.염세적.비협조적인 성격을 가진 지능지수 120인 사람보다
훨씬 더 능력을 발휘한다.

33.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잔인한 말 한마디가 삶을 파괴합니다.
쓰디쓴 말 한마디가 증오의 씨를 뿌리고,
무례한 말 한마디가 사랑의 불을 끕니다.
인자한 말 한마디가 길을 평탄케 하고,
칭찬의 말 한마디가 하루를 즐겁게 합니다.
유쾌한 말 한마디가 긴장을 풀어주고,
사랑의 말 한마디가 삶의 용기를 줍니다.
함부로 뱉는 말은 비수가 되지만,
슬기로운 사랑의 혀는 남의 아픔을 낫게 합니다.

34. 모든 집단에서 리더의 역할은 막중하다.
로마를 전율케 한 것은 이집트 군대가 아니라 한니발이었고,
인도를 점령한 것은 마케도니아 군대가 아니라 알랙산더였다.(나폴레옹)

35. 나는 보석보다는 인격의 아름다움으로 장식되고 싶다.
보석은 재물에서 주어진 반면, 인격은 정신에서 온다.(Platus : 外套)

36.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만 천국에 들어가리라.
(신약성서 : 마태복음 7장 21절)

37. 눈은 비밀을 확실히 드러낸다. 아름다운 눈은 침묵을 웅변으로 만들고,
친절한 눈은 반대 의견에 동의하게 하며,
분노한 눈은 아름다움을 추하게 만든다.(Saunders : 문학의 길 잃은 잎)

38. 인간의 얼굴은 신의 걸작이다. 눈은 영혼을 드러내며, 입은 육체를,
턱은 목적을, 코는 의지를 나타낸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 뒤에는 우리가 "표정"이라고 부르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Hubbard: 짧은 여행)

39. 무릇 눈으로 마구 보면 눈이 흐려지고, 귀로 마구 들으면 귀가 어지러워지고,
입으로 마구 말하면 입이 난잡하게 된다. 이들 셋은 신중하게 간직해야 한다.
이들을 잘 간직하고자 하면 이들은 멀리 떨어진 듯 쓰지 말 것이며,
이들을 잘 꾸미고자 애를 쓰면 도리어 망치고 말 것이다.(淮南子 : 主術訓)

40. 입은 화를 불러오는 문이요, 혀는 목을 베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몸이 어느 곳에서나 편안하리라.
(연산군 : 海東野言)

41.사람은 말을 적게 말한 데 대해 뉘우치는 일은 없으나,
말을 너무 많이 했다고 뉘우치는 일은 흔히 있다.(Commynes : 회상록)

42. 개는 잘 짖는다고 좋은 개가 아니요,
사람은 말을 잘한다고 현명한 사람이 아니다.(莊子 : 雜篇)

43. 나는 잘 생긴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고,
못 생긴 사람들이 가장 훌륭한 사람들인 것을
흔히 보았다.(Phaedrus : 우화집)

44. 어떤 사람에게 말을 할 때는 그의 눈을 보고,
그가 말을 할 때는 그의 입을 보아라.(Franklin :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

45.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이야기를 하지 말라.
그 대신에 그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에 관하여 이야기하게 하라.
거기에 기뻐하게 하는 모든 기술이 있다.
사람마다 이것을 알면서도 잊고 있다.(Goncourt : 관념과 감각)

46. 봄철의 새소리, 여름의 매미소리, 가을의 벌레소리,
겨울의 눈 내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낮에는 장기의 말소리에,
달빛 아래서는 피리소리에, 산에서는 솔방울소리에,
물가에서는 물결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그렇게 해야만 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을 것이다.
다만 젊은 무뢰한들이 길거리에서 싸움질을 하거나,
마누라가 시끄럽게 바가지를 긁을 때에는 귀머거리가 되는 것이
상책이다.(林語堂 : 생활의 발견)

47. 유머의 감각에 둔한 머리치고 철저히 잘 짜인 머리는 없다.(Coleridge : 茶話)

48. 무지의 가장 큰 기쁨은 질문하는 기쁨이다.
이 기쁨을 잃었거나 그것을 독단의 기쁨 즉 대답의 기쁨으로 바꾼 자는
벌써 완고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Lloyd :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49. 회의에서 위대한 아이디어가 탄생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많은 어리석은 아이디어는 거기서 죽었다.(Fitzgerald : 붕괴)

50. 일 천만 아동에게 개성이 같은 음반에서 나오는 똑 같은 환상을
마련해 주는 것이 텔레비전의 일차적 위해다.(Mannes : 분노의 加重)





















^*^ 세계 최고 지성인의 카페 Saint [聖] Column
작은 곰 자리 북 극 성 朴聖培 (Sanctus) 올 림^*^
北極星印



** 2005 년 01 월 04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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