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내 사부님' 멘토를 찾아라

선배의 경험·전문지식 일대일 조언받아 업무 활용
미국선 일반화… 기간·만남 횟수등 사전에 정해야
염강수기자 ksyoum@chosun.com

입사 1년차인 메리츠증권 영업부 배대훈(30)씨는 지난 7월부터 회사 내에 든든한 조언자가 생겼다. 그의 멘토(Mentor)인 최우영 과장이다. 배씨는 “무엇보다 10년차 회사 선배의 경험과 전문지식을 일대일로 전수받아 바로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멘토링(Mentoring). 회사나 업무에 대한 경험과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멘토·스승이라는 뜻)이 신참자(멘티) 한 명을 일대일로 전담해 업무에 관한 문제나 고민을 조언하고 지도해 주는 활동을 말한다. 미국 기업에서는 보편화된 제도.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신입사원의 조기정착을 돕고, 그들의 잠재 능력을 발굴하기 위한 제도의 하나로 도입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멘토제도를 단순한 ‘신입사원용’이 아니라 모든 직장인에게 필요한 자기계발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한국멘토링코칭센터 이용철 원장은 “위대한 경영인으로 존경받는 GE의 잭 웰치 전 회장도 전문경영인으로 성장할 때까지 수많은 멘토의 도움을 받았다”며 “멘토로 삼을 만한 닮고 싶은 상사, 각 분야 전문가를 찾는 노력 자체가 스스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 서울 여의도 메리츠증권 본사에 선배사원들인 멘토와 신입사원인 멘티가 함께 모여 격려의 표시로 줄지어 어깨를 잡고 있다. 멘토는 멘티의 종목분석을 코치해주고 기업탐방 활동도 함께하며 자신의 경험을 전수한다. /이기원기자 kiwiyi@chosun.com
◆분야별로 다양한 멘토를 찾아라

한국 IBM 조직역량강화팀 박서영(42) 실장은 부서 이동이나 승진 등과 관련된 문제와 직면하면 미국 본사에 있는 모 임원에게 자문을 구한다. 함께 일하며 친분을 쌓은 관계도, 자신의 인사와 직접 관련이 있는 임원도 아니다. 박 실장은 “그는 사내에서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자 닮고 싶은 사람이어서 멘토가 돼 달라고 부탁했다”며 “닮고 싶은 사람의 조언은 판단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IBM은 관리자에게, 부하 직원들에게 분야별로, 직급별로 적절한 멘토를 구해주는 것도 중요 업무의 하나로 요구할 정도로 멘토 제도가 보편화돼 있다. 박 실장은 “부하 직원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난 선배, 육아 방법을 조언해줄 여자 선배도 멘토로 삼아 조언을 받았다”며 “‘저런 것도 일일이 조언을 받나’ 하는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그들의 조언은 모두 실전용이어서 곧바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훌륭한 멘토도 소극적인 멘티에겐 무용지물

멘토링솔루션 김호정 원장은 “현장 컨설팅을 나가보면 의외로 멘토들이 ‘멘티의 요구 사항이 뭔지 몰라 뭘 조언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며 “멘티들이 스스로 ‘이런 것까지 물어봐도 되나’하고 움츠러들면 멘토의 역할도 그만큼 줄어든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정해준 멘토에게도 명확하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전달 못 하면 회사 내에 무수히 존재하는 또 다른 멘토의 지식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개인에게도 회사에도 마이너스죠.”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에서 멘토제도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김여진 선임은 “멘토제도를 도입한 것은 회사 전체 조직원이 보유한 경험과 지식자원을 최대한 공유하자는 취지”라며 “적극적인 멘티 활동은 멘토의 업무역량을 업그레이드하는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멘토링을 부탁할 때 지켜야 할 에티켓

멘토링은 멘토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 시간적, 정신적으로 부담이 된다. 멘토링코리아 류재석 대표는 “특정인에게 멘토를 부탁할 땐 ‘몇 개월간, 월 몇 회, 몇 시간씩’ 하는 식으로 멘토링 기간과 정규적인 만남 일정을 사전에 확정해야 멘토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멘토링 과정에서 오고 간 개인적인 이야기를 제3자에게 옮기는 것도 금물. 또 멘토와 만나면서 인간적으로 친해졌다는 이유로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도 멘토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멘토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류 대표는 말했다.

재테크·취미·웰빙 정보 나누는 '사이버 멘토링' 직장인에 인기

고정욱·취업포털 잡링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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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샐러리맨 인사이드
멘토링 활용은 기업이나 교육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재테크 정보를 공유하거나, 웰빙, 취미, 혹은 투잡, 창업을 위한 정보공유 등 관심사에 따라 다양하게 멘토링을 활용할 수 있다.

재테크 정보를 공유하는 ‘선한부자’(http://cafe.daum.net/fq119)의 경우, 회원끼리 정보와 도움말을 공유해 함께 발전하는 모습을 추구하는가 하면 멘토링을 정례화하고 있다. 독서를 매개체로 자기 계발을 하려는 사람들의 모임인 ‘젊은 독서가의 세상바꾸기’(http://cometoread.cyworld.com)가 있는가 하면, 여성 네트워크 강화를 위한 멘토링(www.women-net.net)도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여러 사람이 하나의 공통 관심사를 두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이버 멘토링도 점차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여러 사람을 멘토로 둘 수 있고 필요할 때마다 온라인에 접속해 그때그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직장인들의 관심이 높다. 하지만 주로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진다는 특성상 자주 접속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기 쉬운 만큼, 멘토링 중간에 오프라인 만남을 가짐으로써 유대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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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드무비 > '나의 집은 백만 평'이라니!
건축가는 어떤 집에서 살까 - 특별하지 않게 특별하게 사는 집 스토리
김인철, 김진애 외 지음, 김재경 사진 / 서울포럼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우리는 세 종류의 집에서 동시에 거주한다.
유년 시절을 보냈던 기억의 집, 현재 살고 있는 집, 그리고 우리가 아직 용기 있고 열정이 있다면
살아보고 싶은 꿈속의 집.
(본문 90쪽)


‘우리가 아직 용기 있고 열정이 있다면...’이라는 대목에서 나는 잠시 울컥한다.
용기와 열정이 남아 있지 않아서냐고? 아니다.
나는 용기와 열정을 내 것으로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것이 새삼스럽게 사무친다.


이 책을 맨 처음 발견했을 때 ‘건축가들이 사는 집이라고 뭐 특별한 게 있으려고?’ 하는 마음이
반, ‘아니 그래도 집에 관한 전문가들인데 뭐라도 하나씩은 특별한 게 있지 않겠어?’ 하는
마음이 반이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느낌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 한 명 한 명, 그리고 그들의 집들은 자기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되 또 어찌 보면
그 개성마저도 지극히 평범하다.

건축가들의 사는 집의 특색은 몇 가지로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고쳐 사는 집이 의외로 많다는 것, 집과 일터가 같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
느린 삶과 오래된 시간을 즐긴다는 것,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며 나름대로의
정신적인 사치를 부리는 부분이 있다는 것.


통일연수원을 지었다는 김원이라는 건축가의 집을 살펴보자.
반포아파트에 오래도록 살던 그는 어느 날 문득 북촌 근방에서 살기로 결심하고 집을 나선다. 
여러 날 인왕산 근처를 맴돌다가 마음에 쏙 들어오는 오래 된 한옥을 발견, 복덕방에 들어가 앞으로 그 집을 주인이 내놓으면 자기에게 꼭 연락을 달라고 청을 넣어놓고 온다.

2년 뒤, 그 집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달려와 집주인과 계약을 체결한 그.
그는 아주 오래 된 한옥을 전부 헐지 않고 고쳐야 할 부분만 고쳐서 살고 있다.
매일아침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인왕산을 변기 위에 앉아 느긋하게 감상한다니

세상에 이런 호사가 또 있을까!


건축가 김원의 인왕산 밑 한옥


열세 명의 건축가 중 내가 제일 매료된 이는 ‘느낌표’ 도서관 프로젝트를 맡았던 건축가 정기용.

‘나의 집은 백만 평!’이라고 호기를 부리는 그는 명륜동의 허름한 다가구주택에서 혼자(!) 살고 있다.

--눈 내리는 날, 초라하던 한옥들이 갑자기 눈에 띄게 그 실존적 모습을 드러내는 모습을 본다.
반복하는 기와골들이 만들어내는 규칙적인 흑백의 대비들은 다가구집들을 압도하고,
새벽녘 푸르스름한 도시 풍경은 사랑스럽다.
(...)나는 내가 사는 곳이 집이라고 생각하기보다 ‘나의 방’이라고 여긴다.
나의 집은 공용면적을 포함해서 임대계약상 31평이 아니라 50~ 100만 평이 넘기 때문이다.
나는 또 나만의 정원을 가지고 있는데 내 방에서 10분을 걸어가야만 한다.
그곳은 다름 아닌 성균관, 즉 문묘인 명륜당 앞마당이다. 500년 묵은 은행나무 두 그루와
느티나무 한 그루, 마로니에와 단풍나무가 몇 그루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명륜당은
사계절 나의 벗이기도 하다
.(본문 82쪽)

 


 건축가 정기용은 다가구주택을 하나 얻어 살며 명륜당 문묘가 자신의 정원이라며
아침마다 저 나무 밑에서 신문을 읽는다.


한옥 골목에 살아보지 못한 이라면 절대 모를 ‘눈 오는 날 갑자기 눈에 띄게 그 실존적 모습을
드러내는 한옥’들. 마루에 쪼그리고 앉거나 문지방에 팔을 괴고 앉아 바라보는 한옥 마당의 하늘,
아파트보다 열 배쯤 큰 소리로 내리는 빗소리.....
그 풍경 속에 한 3년 남짓 살아본 것이 나는 지금도 그토록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
그러니 이 책에 나오는 각양각색의 멋진 집들 중에서도 건축가들이 고쳐서 살고 있는 몇 채의
한옥에 온통 마음을 빼앗길밖에......


집은 아침마다 일어나 내가 눈곱을 닦는 곳이다.

내가 가장 방만한 자세로 드러누워 책을 읽고 놓친 영화를 보는 곳이다.

조물락조물락 내가 만든 음식들과 내 가족의 상긋하고 콤콤한 냄새가 벽지마다 서랍장 구석마다 배여 나의 집의 냄새를 완성한다.

열세 명의 건축가는 이 책에서 자기 사는 집을 보여주되 전망 좋은 곳, 깨끗하게 청소된 곳,
자신의 안목과 독특한 취미를 자랑하는 정도까지만 자신의 집들을 공개했다.
좀 인색한 듯하게  보여주는 전망과 인테리어를 흘깃대는 재미도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자기 사는
집을 통하여 13인의 건축가의 철학의 일단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 제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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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6.25란 전쟁은 없었다
한국전쟁 -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
박태균 지음 / 책과함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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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로 있는 박태균 선생의 책 "한국전쟁 -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을 읽으며(나오자마자 읽기 시작해서 하룻밤새 읽을 수 있었다.) 처음 든 생각은 나와야 할 책이 나왔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를 이야기하며 수백 번에 이르는 외침을 이야기하지만, 한국사적으로가 아닌 국제사적으로 의미가 큰 전쟁이라 한다면 고구려와 수의 전쟁, 제1차 조일전쟁이라 할 수 있는 임진왜란,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한국전쟁이다. 현재에 와서는 어느 정도 "한국전쟁"이라고 정리되는 듯 한데, 사실 한국전쟁만큼 많은 별칭으로 불린 전쟁도 많지 않을 것이다. 동란이나 사변이란 명칭은 어느 정도 관변화된 명칭이라 할 수 있고, 학문적으로 중립적이라 할 수 없기에 요사이는 대개 "한국전쟁"으로 정리되고 있다. 

사회학자 김동춘은 얼핏보면 사변이나 동란보다는 가치 중립적으로 보일 수 있는 명칭인 "6.25"에 대해 의미있는 분석을 가하고 있는데("전쟁과 사회", 돌베게), '6.25'라는 개념 규정 속에는 이미 '상기하자 6.25 무찌르자 공산당'이란 구호로 집약되는, 즉 전쟁 책임자가 누구냐? 그것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도록 강제하는 요소가 잠재해 있다고 말한다. 그 결과 온 나라가 전쟁 개시 일자인 6.25를 기념하고, 서울 한복판에 전쟁기념관을 세워놓고 이를 (평화가 아닌) 기념하는 기이한 결과를 만들었다. 전쟁 개시일은 기억하고, 기념해도 휴전일을 기억하는 이들은 없는 심리 구조는 우리 사회를 늘 전시체제로 몰아가고, 전시체제 혹은 전시동원체제는 군부독재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모든 억압을 안보로 치환하여 합리적인 것으로 만들어내는 기이한 심리 구조를 만들어 낸다.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이들을 잠재적인 노이로제 환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우리가 한국전쟁에 대해 고민해야 할 부분은 우선 이런 의식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즉, 나 자신의 심리구조는 이미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가를 먼저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책 제목에서도 드러나고 있듯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종전 협정이 아닌 휴전 협정이라는 정치현실만의 문제가 아니라 최근 동국대 강정구 교수 파문에서도 알 수 있듯 한국전쟁은 현재 우리 사회, 남북한 모두에게 있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도 현재 진행형의 전쟁이며, 우리 사회의 지배질서를 구축한 이들의 마음 속은 여전히 전시(戰時) 상황이다. 남북한의 지배계급들은 비록 이념적으로는 큰 편차를 보이지만, 분단상황을 그들의 지배이데올로기를 공고히하는 데 이용했다는 점을 놓고 보자면 분단의 주범까진 아니더라도 종범에는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박태균 선생의 평소 글들을 여러 차례 접해왔고, 그의 입장을 대체로 알고 있는 편이므로 과감하게 입장 정리를 시도해보면 우선 박태균은 이념적으로 좌우를 막론하고 특정한 정치적 패러다임에 의존한 역사해석을 지양하는 편이다. 그것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중립적이고 가능한 일일까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최소한 나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는 나름대로 성공적인 편이다. 최소한 표면적으로라도 그러하기에  박태균의 "한국전쟁"을 놓고 불필요한, 소모적인 논쟁은 벌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두 번째, 박태균의 개인 이력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지만 그는 역사 대중화라는 쉽지 않은 일을 비교적 꾸준하게 진행해 온 학자다. 그는 "인물현대사""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의 방송 프로그램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그의 주전공이라 할 수 있는 우리 근현대사의 묻혀버린 인물과 사건들을 재발견하는데 일조해 왔다. 이 책 "한국전쟁" 역시 그런 역사 대중화 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다.

한국전쟁에 대한 여러 편견들을 빚어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개인적인 생각 중 하나는 지나치게 일국사적인 관점에서 한국전쟁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때 일국사적인 관점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전쟁이란, 그것도 세계 여러 나라가 참전하고,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전쟁을 동란이나 사변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감정적이란 한계가 있으며, 객관적인 역사서술을 어렵게 만드는 한계로 작용한다. 그런 차원에서라면 강정구 교수의 접근 방식도 이런 혐의로부터 완전히(대체로 자유롭지만 일부는) 자유로울 수 없다. 또 한 가지는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만들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러시아(당시 소련), 일본, 중국의 역학관계를 제대로 바라보기 어렵게 만든다. 한국전쟁에 대한 감정적 찌꺼기, 이념적 혼란을 거둬내고 바라본다면 한국전쟁은 기본적으로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배와 대소련 봉쇄 정책을 실행하기 위한 미국의 이해관계와 소련의 이해관계가 충돌하여 그 주된 전장을 한반도로 삼은 국제전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좀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미국의 서부개척의 역사가 완료된 이후 지속적으로 태평양 진출을 꾀한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전략과 맞물려 있다. 미국은 태평양 진출의 교두보로 하와이를 병합하고, 필리핀을 식민화한 뒤 잠시 숨 고르기를 한다. 이때 미국은 유럽의 식민 헤게모니 대결이 결국 무력을 이용한 전쟁(제1차 세계대전)으로 발전하면서 사실상 세계 유일의 열강으로 떠오른다. 결국 미국은 일본과 아시아 패권을 놓고 태평양 전쟁을 치른 뒤 오키나와를 점령하고, 일본을 그들의 입맛에 맞도록 아메리카나이제이션하여 최종적인 경쟁에 승리를 거두게 된다. 한반도는 그 부수적인 결과물이었으며, 이는 소련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의 상황에서 미국과 소련이란 전쟁의 또 다른 당사자들이 실제로 한반도에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를 잘 반증해준다. 그들에게 한반도는 정치, 전략적으로 그다지 의미있는 공간은 아니었던 것이다.

한반도의 차원에서 한국전쟁은 물론 피할 수도 있는 전쟁이었고, 박태균 선생 역시 그것이 가능했다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문제는 당시 남북한의 지도층이 국제정세를 읽는 식견이 부족했고, 분단 상황이 올 수도 있는 정세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한 측면(혹은 분단 체제가 오더라도 이것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낙관이 도리어 전쟁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는 것이 박태균 선생의 견해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은 남북한의 정치 질서가 비교적 안정되어가던 시기에 벌어졌으며, 북한의 남침으로 촉발되었든, 아니든 간에 한국전쟁의 본질 가운데 하나는 일제 식민 질서가 빚어낸 미완의 민족해방(이것을 이념적으로 이해하지 마시라. 그것이 남북한 모두의 현단계 지배계급이 원하는 바다)을 완수하려 했던 전쟁이란 것이 본질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이 책의 특기할 점 가운데 하나는 북한의 의도가 애초에 제한전쟁의 성격을 띄고 있었으나 전쟁이 너무 손쉽게 전개된 나머지 무리하게 확전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인천상륙작전 직후 남한과 미국에 의해 반복된다.

언젠가 맥아더에 대해 자세하게 다룰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대충 요사이 이야기되었던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은 그의 공과와 상관없이 즉, 표면적인 이유와 상관없이 우리 사회의식 수준이 어느 정도까지 와 있으며 어느 부분이 한계인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실례라 할 수 있다. 보수를 흉보는 거야 너무 뻔한 이야기가 될테니 일부 진보세력의 맥아더 동상 철거 이슈화에 대해 약간의 흉을 보자. 우선 개인적으로 철거하자는 의견엔 동의하지만 그보다는 이전하자는 쪽이다. 그들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지만 일단 그들의 주장대로 철거해버리는 일은 너무나 쉬운 일이기 때문이며, 마음의 총독부는 고스란히 둔채, 외형상 존재하는 조선총독부 건물만 허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보다는 훨씬 더 잔인한 방법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 조선총독부 건물을 포크레인으로 일거에 때려부수는 이벤트 대신에 조선총독부 건물 밑 바닥 땅을 파내어 총독부 건물이 자체의 무게로 서서히 침강해 들어가는 방식 같은 것 말이다. 짧게는 한 100년, 길게는 1,000년에 걸쳐 서서히 침강해 경복궁 앞 마당으로 가라앉히는 것이다. 건물 구조는 그대로인 채로 말이다. 그렇게 해서 건물은 그대로 온전하게 보존하고 우리는 지하에 묻힌 총독부 건물을 일제 강점기를 기억하는 박물관으로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건물은 부서졌고, 친일진상규명은 온갖 잡소리들에 시달린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맥아더 동상 철거란 획기적인 시도는 그 뜻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네들도 그 일이 지금 당장 시도하여 가능한 일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다만 균열을 주고자 했을 뿐이다. 그 덕분에 맥아더가 이 땅에 핵폭탄 26기를 투하하자는 과감한 주장을 했던 이라는 객관적인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나. 우리 땅에서 맥아더 동상의 철거가 더이상 이슈로 떠오르지 않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 그때쯤이면 그 동상이 거기 서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우스워 보일 것이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상황이란 두 가지를 상정한다. 하나는 그것이 아무런 힘도 갖고 있지 않을 때이고 다른 하나는 그에 대한 반항이다. 지금 맥아더 동상이 자유공원에 여태 서 있는 까닭은 이 땅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들의 사회의식이 아직 그 동상의 힘을 믿고 있기 때문이긴 하지만, 그 동상에 거기 서 있도록 하는 사람들의 차가운 무관심은 그에 대한 반항이기도 하다.

박태균은 38선 이북으로 북진이 전략적인 실패였다고 말한다. 우리는 얼마전 인천 자유공원(개인적으로는 자유공원보다는 이전의 명칭이었던 만국공원이란 명칭을 좀더 선호하긴 하지만)의 맥아더 동상 철거 문제로 촉발된 일련의 논쟁들을 통해 우리는 박태균의 이 저서가 어떻게 논거로 응용되고 있는지 살필 수 있었다. 물론 박태균의 입장과 주장이 그로부터 처음 시작된 것은 아니다. 가깝게는 김동춘의 "전쟁과 사회"에서도 이미 한국전쟁에 대한 전통주의와 수정주의를 모두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고, 역사학계도 일반적인 것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하나의 추세로 보인다. 그 자신도 여러 저서들로부터 도움을 얻었음을 밝히고 있다.

어떤 연구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고, 그만한 연구 토대가 구축된 뒤에 비로소 나타난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이런 당연한 상식을 지금 반복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까닭은 최근에 불거진 강정구 교수 파문 때문인데, 위의 말을 반복해보면 강정구 교수에게 들씌워진 학문외적인 작태들은 학문의 자유니, 양심의 자유니 하는 것보다 우선하는 우리 사회의 노이로제, 강박관념이 그 원인일 뿐, 강정구 교수의 발언 자체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말하고자 꺼낸 말이다. 이미 국내외의 많은 학자들이 연구했고, 주장해온 바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만경대 방명록 파문의 당사자였다는 점, 꾸준히 우리 사회의 군사독재문제, 사회적 이슈들에 발언해온 이라는 미운 털 때문에 도처에서 그를 공격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 지배계급과 그에 기생하는 이들(혹은 나도 모르게 길들여진)이 벌이는 일종의 이슈 파이팅일 뿐 실제 사실과는 전혀 관련 없는 논박이다. 그런 점에서 박태균의 "한국전쟁"은 매우 실증적인 외형을 갖추는 형식을 통해 이런 공격들로부터 나름대로 잘 빠져나가고 있다. (그 점도 신기하긴 하다. 박태균 성생께 조금 죄송한 말이긴 하지만 박태균이 강정구와 크게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진 않은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는 구속하잔 말이 없는 건지. 브레히트처럼 나서서 "내 책도 태워다오"라고 외쳐야 하는 건 아닌지...) 대중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 드문 책이란 점에서 특히 돋보인다.

박태균의 "한국전쟁"이 이전의 연구들과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그가 한국전쟁의 책임을 외세에 의한 것으로만 치부하지 않는 점이다. 최근의 우리 모습을 보면 그의 이런 지적은 뼈아프긴 하지만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분단의 책임으로부터 우리들은 자유로운가. 우리는 최근의 과거사 청산 과정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해프닝들을 통해 과거사가 결코 과거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깨우치고 있다. 역사는 과거에 묻힌 고리타분하고 퀘퀘한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우리 기억을 위해 벌이는 기억 투쟁의 장이다. 누군가 당신이 태어날 때부터 당신의 기억을 조작하려고 애쓰고 있다. 투쟁하지 않으면 당신의 기억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조작될 것이다. 눈을 감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 것도 의심하지 않은 채 남이 시키는대로만 살면 인생은 절대로 내 것이 될 수 없다.

* 나머지 이야기는 책을 보시라. 이런 책에 말하긴 너무 경박한(?) 표현이긴 하지만 그 어떤 무협지보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어깨에 힘을 좀 빼고 편하게 보아도 좋은,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게 보아야만 하는 책이다. 왜? 우리는 이미 한국전쟁의 당사자로서 너무 몰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선 과도한 긴장을 풀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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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women-net.net      위민넷 적성 Test Room

 http://www.work.go.kr           노동부/ 직업정보/ 직업심리검사

 http://www.kpti.com             한국 심리검사 연구소

MBTI 연구소, STRONG 직업흥미 검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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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프랑스 출판의 산증인



피에르 아술린 지음|강주헌 옮김|열린책들|516쪽|1만8000원
김한수기자 hansu@chosun.com

앙드레 지드, 마르셀 프루스트, 생텍쥐페리, 사르트르, 카뮈, 앙드레 말로 등 20세기 프랑스 문학사의 거장들이 다투어 자신의 책을 내고 싶어했던 출판사. 아직도 살아 움직이는 프랑스의 문화권력이자 프랑스 문학의 자존심이기도 한 ‘갈리마르 출판사’의 설립자인 가스통 갈리마르(1881~1975)의 전기이다. 그의 일생은 곧 20세기 프랑스 문학사와 동의어로 통할 정도. 이 때문에 각각의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문단 이면사가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가령 출판 초년병이었던 갈리마르는 당대의 거장 지드의 신작 ‘이자벨’을 출판했다가 지드에게 보기 좋게 한 방 맞는다. 한 페이지의 행(行)수가 들쭉날쭉인데다 오자(誤字)까지 튀어나오자 격분한 지드가 창고까지 쫓아가 초판본을 모두 찢어버린 것. 그러나 갈리마르가 얼이 빠져 미안해하는 동안 지드는 초판본 6권을 몰래 빼돌렸다. 나중에 희귀 초판본으로 팔려고. 그밖에도 프루스트의 명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원고를 처음에 퇴짜 놓았다가 이내 후회하고는 결국 어렵게 경쟁 출판사에서 판권을 다시 사오는 과정, 매주 화요일 열리는 ‘독자위원회’에서 접수된 원고를 놓고 격론을 벌인 끝에 출판을 결정하는 모습에선 문학과 문화에 대한 지극한 정성을 느낄 수 있다. 한 시대의 문화와 정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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