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후배와 작은 언쟁이 있었다고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게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그때 우리는 교보문고를 나와 가까운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고 나오는데도 그 친구는 아직도 뭐가 안 풀렸는지 뜬금없이 자신이 무슨 책을 보니 사람이 화가 나는 건 상대가 화를 나게 만들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화를 내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란다.   

 

왜 그 말을 하는지에 대해선 역시 구구하게 설명하지는 않겠다. 적어도 그 친구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을 나에게 투사하고 있었고, 선배인 나에게 그런 대우를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그 친구와의 만남이 썩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약속 시간에 늦었고, 그전부터 나의 뭐 하나 꼬투리 잡아 나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으니까. 도대체 그 친구가 읽었다던 책이 뭔지 모르겠다. 난 그때 누가 쓴 무슨 책이냐고 물어봤어야 했던 건데 그 보단 그 친구의 말본새가 하도 어이가 없어 더 이상 듣지 않으려고 했을 뿐이니까. 

 

사실 그 말처럼 무책임한 말이 또 있을까? 그러니까 그 친구의 말에 의하면 화가 나도록 자극한 사람에겐 책임이 없고 화를 낸 사람만이 문제가 있다는 건데, 도대체 그렇게 말한 그 이름모를 책의 이름모를 원저자는 어쩌다 그런 말을 했을까? 뭔가의 맥락이 있었을 것도 같은데 만일 정말로 그렇게 말했다면 난 그 책의 저자가 누구인지를 알아 그 위험한 발언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하고 싶다.

 

인간은 그렇게 선택이 용이한 존재가 아니다. 특히 오늘 날의 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은. 물론 나도 그 얘기를 들어보기는 했다. '인간은 정말 그렇게 생겨 먹어서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기로 이미 선택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말. 이것은 그 옛날 빅터 프랭클이 저 아우슈비츠의 죽음의 수용소 나와서 이와 비슷한 말을 한 것 같긴 하다. 그 친구가 설마 이 위대한 실존주의 정신의학자의 이론이 그 순간 생각나서 그런 건지는 할 길은 없다. 물론 빅터 프랑클의 로고 테라피는 그후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확장시켜 왔을 테니 그중 한 사람이 얻어 듣고 자기식의 해석을 그 친구가 나에게 써 먹었는지도 모르지. 

 

아, 그런데 이건 정말 함부로 써 먹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이 말이 어디까지 확대 해석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요즘 미투 운동이 한창이다. 그나마 가해자들이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기에 망정이지 그런 무책임한 사이코가 없으라는 법 없다 나는 그렇게 행동한 게 잘못인 줄 몰랐다. 난 병맥히 친근감의 표시를 했을 뿐이다. 상대가 모멸감을 느꼈다면 그건 그 사람이 그러기로 선택했을 뿐이지 내 책임은 아니다. 이렇게 말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못 됐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된다는 말인가?

 

물론 오해하기 좋아하고 유난히 성격 나쁜 사람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덮어 씌우려는 음모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 과연 그럴 목적이라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는 것 아닌가. 나의 옳음을 증명하고 상대의 입을 닫게 만드려는 음모를 획책하기 위해 하는 공부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DNA부터가 못 먹고 못 배운 것을 한으로 여기는 구조로 되어있다.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가 그런 건 이해할 수 있다. 워낙에 못 먹고 못 살았으니까. 그러나 이제 겨우 잘 살기 시작한 우리 대는 좀 배우는 의미가 남 달라야 하는 것 아닌가? 적어도 너와 나의 더 넓고 깊은 소통을 위해, 공동체를 위하고 대변하기 위해 우리의 지식을 쓰여져야 하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그 친구는 소위 말하는 우리나라 최고 학부를 나왔다. 나는 그 친구에 비하면 나이만 많다는 것뿐이지 하나 잘난 것이 없다. 그런 나를 상대로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려고 했다는 게 영 석연치가 않다. 차라리 그때 내 앞에서 최대한 말을 아꼈다면 오히려 내가 잘못했나 반성했을지도 모른다. 말하기는 더디하고 듣기는 속히 하라고 했는데 나도 그 친구에게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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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6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26 1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26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2-27 13:41   좋아요 0 | URL
넵.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