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의 미학 - 도스또예프스끼의 간질병과 예술혼
김진국 지음 / 시간여행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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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이건 영어식 발음인 줄로 알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도스또예프스끼라고 했는데 모르긴 해도 그게 러시아식 발음일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영어식 발음으로 더 잘 알려있으니 그냥 편하게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가 간질병 환자라는 건 익히 잘 알려진 바다. 그리고 역사상 위대한 인물 몇몇이 같은 병을 앓기도 해 한때 천재병(?)으로도 불린 것으로 알고 있다.

 

저자는 신경과 전문의다. 그러니 간질병에 대해 오죽 잘 알고 있을까? 간질병이 어떤 병인지에 관해선 단편적으로 나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 책을 보니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우선 저자의 간질병에 관한 설명을 보자.

간질병 환자들이 발작을 일으킬 때, 구덩이에 빠져 피울음을 토해내는 듯한 짐승의 소리를 내면서, 희멀건 눈을 치켜뜬 채 온몸의 근육을 쥐어짜는 듯한 긴장성 발작. ... 그 다음 간대성 발작이 이어진다. 이 시기에 몸의 떨림이나 강직이 서서히 풀리면서 발작이 멎는다. 그 이후 환자는 몇 시간씩 깊은 잠에 빠지거나, 비몽사몽을 헤매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쉴 새 없이 지껄이기도 한다. (중략) 그런데 온몸을 뒤트는 고문과도 같은, 길고도 긴 고통의 시간도 지나고, 완전히 의식을 회복한 뒤에는 정작 자신의 몸에서 일어났던 일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33p)

 

간질병 환자가 발작을 일으키면 사람들은 그의 치열한 사투를 혐오스럽게 지켜봤을 테니 본인은 얼마나 수치스러울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병을 운명으로 알고 받아들였다. 놀라운 건 발작이 일어날 때 그처럼 육체적으로는 힘이 드는데 영적으로는 현실의 찬란한 순간이 즐거운 환희의 아침으로 들려오며 이루 말할 수 없는 희망이 생생한 이슬방울처럼 영혼을 적시듯 하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글을 쓰는 소재와 기회로 삼은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전반에 걸쳐 간질병이 자주 나오는 것도 다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측두엽 간질의 전형처럼 보이는데 그것의 특이점은, 중독성 글쓰기와 성욕감퇴증, 과잉종교증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의 그처럼 많은 저술은 바로 이런 증세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기도 하다. 또한 성욕감퇴증에도 불구하고 도스토옙스키는 두 번째 부인에게 서만도 4명의 자녀를 얻었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그러니 의학적 소견이란 건 정말 소견일 뿐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평생 여성을 혐오했다고 하는데 그게 성욕감퇴증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 것을 보면 의학적 소견이란 걸 간단하게 무시할 수도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책의 첫 부분에서 간질병에 대해 이런 설명을 들으니 도스토옙스키가 일생 얼마나 피곤한 삶을 살았을지 깊은 한숨이 쉬어지면서도, 사람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꽃 피우는 존재라더니 과연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겠다 싶다. 무엇보다 간질병에 중독성 글쓰기가 있다니 살짝 부럽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나도 간질병을 원한다는 건 역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단지 내가 새롭게 깨닫는 것은 인간의 질병은 반드시 해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 어쩌면 질병에도 신의 감추어진 섭리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 간질병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유로지비 즉 바보 성자다. 이 유로지비는 자신의 안락을 위하지 않고 남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존재들이다. 이를테면 노트르담의 꼽추 콰지모도나, 우리나라엔 바리데기가, 그의 작품에선 <죄와 벌>에 나오는 소냐가 될 것이다. 그들은 병든 세상을 헤아리고, 용서와 베풂을 실천하는 성자로 거듭나며, 그의 간질병은 신께 받은 천형이 아니라 신의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수난과 고행으로 탈바꿈 시키며, 그를 19세기 근대의 길목에 들어선 유로지비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20세기를 넘어오면서 세계 4대 강국의 반열에 드는 러시아에서 이제 더 이상 유로지비를 찾기는 어려울 거라고 말한다. 그것은 가난했던 시절 잊을만하면 찾아 와서 온 동네를 활기 있게 해 주던 각설이가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간질병을 통해서 현대 문명과 사회를 통렬히 비판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오늘날의 발달된 과학과 의료 체계만이 최선인가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무엇보다 21세기 현대 과학과 첨단 의료로 봤을 때 도스토옙스키는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없는 불구폐질자로 너무나 쉽게 낙인찍을 것이라고 했다. 즉 그가 그처럼 위대한 대문호가 될 수 없었을 거라는 것이다. 그것은 19세기니까 가능했을 거라고.

 

특별히 그의 주 무대가 러시아가 아니고 유럽이었다면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유럽은 17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동안 광인과 비정상인을 감금하고 화형에 처하는 광기의 역사가 지배했던 시대였다. 또한 현대의 의료체계를 가장 먼저 도입해 고흐처럼 일찍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했던 유로지비들은 마녀 사냥의 먹잇감이 되거나 정신병원에 감금되었을 것이고. 그것을 도스토옙스키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의 작품에 그런 유럽을 조롱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나는 이 부분을 읽는데 순간 아찔했다. 도대체 문명의 발달 특별히 현대의 의료 체계가 인간을 살리기보다 죽일 수도 있다는 걸 감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린 그것이 최선인 양 그것에 맡기는 걸 주저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인간이 만든 질병 분류에서 조금만 비껴나가도 환자 딱지 붙이기를 서슴지 않고, 그것이 아니었다면 얼마든지 구제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우울증으로 내몰고 그들의 자살을 방조해 왔는지 알 수가 없다.

 

아픔이나 질병의 고통을 견뎌내는 인간의 인내심을 고갈시켜버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그의 간질은 뭐란 말인가? 도스토옙스키는 그것을 묵묵히 견디며 예술혼을 불태웠는데 그냥 아픔을 해결해 줘야할 환자로만 보았다면 우린 평생 도스토옙스키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과연 아찔하지 않은가?

 

문득 요즘에도 그런 작가가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도스토옙스키와 같지는 않지만 한 세기 전 우리나라의 이상이 그랬다지. 그의 천재성은 처음부터 발현이 것이 아니다. 폐에 병이 들고 죽기까지 그 짧은 기간 동안 그는 천재란 소릴 들을 만큼 심오한 작품을 쏟아냈다고 했다. 그만큼 인간의 고통은 때로 숭고할 수 있는데 그걸 현대 의학은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차단해버린다면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도스토옙스키가 평생을 걸쳐 주장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전통이다. 전통으로의 회기. 전통으로의 복고. 그는 어쩌면 그것을 위해 그처럼 많은 글들과 말을 쏟아냈을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신경 뉴런 하나로 인간을 규명하려고 하는 오늘 날의 과학을 부정하려하지 않았다. 우주의 삼라만상과 무한 광대한 인간의 정신세계를 과학의 공식과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과학자들의 녹슨 경박한 물질주의의 상투를 잘라내 버리고 싶어 했다.

 

저자는 말한다. 문명의 빛이 퍼지면서 어리석은 인간들이 무릎을 꿇고 손 모아 머리를 조아리던 거룩한 존재들은 힘을 잃고, 그에 따라 믿음조차 시장에서 거래되는 산업으로 변질되었으며, 예술의 정신도 변패되어 미가 투자와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한 채 과학만 득세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고. 그리하여 과학과는 무관한 어리석은 사람들의 맑은 영혼이 빚어낸 고졸(古拙)의 아름다움도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나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나는 왜 이 세대를 의심하려 하지 않는가? 왜 비판하지하지 않는가? 그러면 그런가 보다 무관심, 무감각으로 일관했는지도 모른다. 특히 과학이 득세하니 종교에 대해, 신앙에 대해 나 스스로 입을 닫아버린 건 아닌지? 도스토옙스키의 신앙이 그저 그의 간질병의 증상중 하나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얼마나 그를 무시하고 무례를 범하는 것이 되는 것일까. 그리고 새삼 다시 한 번 글의 힘을 믿어보고 싶어졌다. 또한 자신의 병을 내치지 않고 끌어안으며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관철시켜 나갔던 도스토옙스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어졌다.

 

사실 처음 책이 다소 어렵고 산만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다. 저자의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상당한 애정과 경의가 느껴졌고, 그러기 위해 선택한 텍스트를 미처 따라 갈 수 없었던 나의 일천한 지식이 부끄러워졌다. 결코 읽기엔 만만치 않았지만 좋은 독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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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2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11-03 14:22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사람은 뭔가의 결핍이 있어야 위대한 일을 해내죠.
늘 잘 나기만하고 아무 걱정이 없으면 발전이 없죠.
저는 이 책 읽기는 쉽지 않았지만 나름 유익했어요.^^

2017-11-04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06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08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7-11-07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해가 지는 시간이 되었어요. 날씨가 차가워지고, 해도 일찍 지고, 저녁이 빨리 찾아옵니다.
한시간 전과는 공기가 다른 느낌이예요.
stella.K님, 저녁 맛있게 드시고, 따뜻한 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