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만 같은 그 일을 나는 해를 넘기고 봄이 되올무렵 그만둬야 했다. 그것은 내가 그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를 도와줬던 제자 하나가 있었다(이 제자는 나의 책 <네 멋대로 읽어라>에 잠깐 언급했었다). 그때 나는 그 아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불행이었을까 아니면 다행이었을까 하필 그 아이는 그해가 고3이 되었던 때였다. 입시를 준비해야 했으니 언제까지나 나를 도와 줄 수는 없었다. 나는 그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말이 나를 도와주는 거였지 일에 대한 욕망이 너무나 커서 자칫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우를 범할 아이 같았다. 즉 선생인 나를 위협할 것 같았다. 바로 그것이 감지될 즈음 그 아이는 좋던 싫던 고3이 됐으니 다행이랄 밖에. 나는 나대로 아무 것도 거칠 것이 없었다. 

 

그 때는 또 팀을 따로 꾸리지 않고 그때그때 아이들을 차출해서 해왔던 터라 이제부턴 팀도 정식으로 만들고 안정적으로 일(사역)을 해 볼 참이었다. 바로 그 무렵 그 아이가 다시 나타났다. 그것도 대학에 당당히 합격을 해서. 물론 가끔 주일학교를 거쳐갔던 아이가 졸업하고 봉사하겠다고 오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주일학교에선 그 아이에게 보조 교사의 자격을 준다. 그런데 담당 목사는 뭐 때문인지 그해부터 모든 주일학교를 자원하는 사람에게 교사/보조 교사 구분없이 동등하게 교사 자격을 부여했다.

 

모르긴 해도 목사님은 그런 구분을 없애도 별무리가 없을 거라고 판단했던 것 같았다. 어차피 우리나라 사회는 연공 질서 사회가 아닌가? 더구나 신자의 덕목 중 겸손을 제일로 삼는 교회에서 그것을 능멸하는 일을 일삼을 사람이 나올 거라고는 목사님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우려하던 바가 정확히 1년 후에 나타났다는. 그것도 너무나 큰 호랑이가 되어. 녀석은 마치 자신이 입시 때문에 잠시 선생인 나에게 맡겨놨던 것을 도로 찾겠다는 태도로 팀을 장악하려고 했다. 또한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의 교사의 권위는 목사님께로부터 부여 받은 것이다. 녀석은 이제 더 이상 내 앞에서 어리광이나 피우는 조무래기 고등학생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목사님은 교사의 구분을 철폐할지라도 그 아이는 나를 도와 그 일을 잘 해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걸 알리없고 설혹 알았다고 해도 워낙에 일에 대한 욕망이 강했기 때문에 녀석은 주위를 찬찬히 살필 겨를 일 없었을 것이다.

 

나와 녀석이 갈등을 겪고 있으니 팀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아이들은 나와 녀석의 눈치를 보며 불안해 하고 있었고, 그러면 그럴수록 녀석은 팀을 장악하려는 의도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이런 상황은 처음 겪어보는 것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건 그저 굴러들어 온 돌이 밖힌 돌을 빼겠다는 의도로 밖에는 볼 수 없었고, 조금 강한 표현을 쓰자면 하극상이었다. 이 상황을 목사님께 터놓고 말씀을 드려도 목사님 역시 별 뾰족한 수를 내리지도 못하고 주저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시간만 흐르고 있을 때 일은 공교롭게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터졌다.

 

봄방학을 이용하여 1박2일 수련회를 가졌는데 팀의 한 아이가 거기서까지 나와 녀석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속상한 나머지 울음을 터트리더니 급기야 오바이트까지 하고 말았다. 그것도 덩치가 농구선수 같은 아이가.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웃픈 상황이지만 당시로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여간 당황스럽지가 않았다. 결국 이 광경은 주일학교 전체 교사들에게 알려졌고, 결국 그 수련회 이후 나와 그 녀석은 소위 말하는 교사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고나 할까? 물론 실제로 교회내에 그런 위원회는 없다. 그만큼 그때 일은 중대사안으로 다뤄졌고 결국 회의 끝에 나와 녀석을 주일학교에서 그만두게 만들었다.  

 

물론 억울하고 속이 상했지만 그것이 최선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내가 제자 녀석 하나를 잘못 가르친 죄도 전혀 없다 할 수 없을 테니 주일학교에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부끄럽고 처절한 느낌이 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목사님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없어 주일학교 교사들과 회의를 했다는 게 너무 창피했고, 1년 동안 피 말려 가며 일했던 댓가가 고작 이건가 원망스러웠다. 목사님이 1년만 더 있어 달라고 부탁하지 않고, 내가 그 부탁을 들어주지만 않았더라도 이런 일은 내 인생에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교사회의에서 녀석을 자르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자르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목사님은 위로조로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쉰다고 생각하라며 몇 개월 후에 다시 부를 테니 그때 다시 돌아와 일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 말도 별로 위로가 되지 못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것일까 한동안 자괴감 때문에 거울을 보기가 싫었다. 그리고 갑자기 남게된 그 많은 시간을 뭘 하며 보내야할지 망막했다. 또한 나에게도 이렇게 떨어질 나락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 일은 나에게 굉장한 희망이었고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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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28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굴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일은 정말 힘들어요. 저 같은 쿠크다스 멘탈을 가진 놈이 교사 일을 하면 오래 못할 거예요.

stella.K 2017-05-28 17:51   좋아요 0 | URL
헉, 쿠크다스...? 그게 뭐지?
가르치는 거 잘 할거 같은데.
과외 한 번도 안 해 봤나?

근데 정말 가르치는 건 쉬운 일이 아냐.
주일학교 교사하는 것도 나는 정말 힘들더군.
남들은 잘도 하더만.ㅠ
그러니 현직 교사들은 얼마나 힘들겠니?
후배 하나가 현직 교산데 이제 제법 관록이 붙었구만 그래도 힘들데.
그래도 그 후배는 정년까지 갈 거야.
지금은 못 산다고 징징거리지만 어떻게 그 자리까지 갔는데.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어.ㅠ

cyrus 2017-05-28 17:59   좋아요 0 | URL
쿠크다스, 이거 과자 이름이잖아요. 그 과자의 두께가 얇아서 봉지를 뜯기만 해도 부러지고, 부스러기가 많이 생겨요. 그래서 쉽게 멘탈이 부서지는 것을 ‘쿠크다스 멘탈(심장)‘이라고 표현해요. 제가 말을 썩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을 안 좋아해요. ^^;;

stella.K 2017-05-28 18:06   좋아요 0 | URL
그거였어? 몰랐네.ㅋㅋㅋㅋ

그렇구나. 나도 좀 그런데.
물론 사석에서 떠드는 거야 요령껏 잘 하는 편인데
청중을 앞에 놓고 무슨 말인가를 하는 건 부담스러.
그래서 요즘도 하루에 한번씩 연습중.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