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세계 : 알베르 카뮈의 여정
카트린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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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김화영 교수의 강연을 참석한 적이 있다. 그는 잘 알려진 대로 카뮈 전문가다. 그 강연회를 다녀 오고 나서 당장 이 책을 질러버렸다. 그만큼 카뮈에게 매료당한 것도 있고, 김화영 교수의 강의가 워낙 유려해서 혹시라도 놓쳤을지도 모를 내용을 이 책에 있지 않을까 해서다. 그것은 김화영 교수가 카뮈를 다룬 가장 최신간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날의 김화영 교수의 강연과 책은 그다지 관련성은 없어 보인다. 그냥 이 책은 그날 김화영 교수의 강연회를 빛내주기 위한 소품이라고나 할까? 무엇보다 이 책은 일반책 보다 훨씬 크고 양장이다. 문학 앨범인 만큼 글은 별로 없고 사진만 풍성하게 많다. 솔직히 이런 책을 내가 좋아할 리 없다. 무거워 한 번 들을 때마다 손목에 무리가 가고, 편하게 누워서나 기대어 앉아서 볼 수도 없다. 오로지 책상 앞에 정자세로 앉아 봐야한다. 정말 카뮈가 아니라면 이런 책은 나에게 쉽게 용서 받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표지도 그렇긴 하지만 어느 정도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그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솔직히 그는 미색은 아니다. 하지만 남자답게 생겼으며 인상이 진지하면서도 좋다. 이런 상을 두고 누구의 말처럼 귄한 상이라고 하는 걸까? 그래서 한때 시몬느 보부아르로부터 사귀자는 청탁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고 한다. 글쎄, 아무래도 그는 한미한 가문의 사내로서 보부아르가 부담스러웠는지도 모른다. 그러자 그녀는 복수하는 의미에서 카뮈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퍼트리고 사르트르에게로 갔다고 한다. 그런 걸 가지고, 여자가 한을 품으면 어찌된다는 고리짝 여혐발언 같은 건 하지말자. 차도녀라면 그 정도 뒤끝은 보여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왜냐고? 나는 소중하니까.

 

하지만 그런 그도 첫 번째 결혼은 실패했다고 한다. 좋은 여자일 것 같아 결혼했지만 알고 봤더니 마약쟁이었고, 마약을 구하기 위해 몸을 팔기도 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아 이혼을 했다고 한다. 그 후 재혼해 딸 아들 쌍둥이를 두었는데 그 딸이 이 책을 엮은 카트린이다.

 

사르트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람들은 흔히 사르트르와 카뮈를 라이벌로 여기기를 좋아하지만, 카뮈는 늘 그렇게 비교되는 걸 원치 않았다고 한다. 그는 모든 면해서 사르트르가 자신 보다 우위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르트르는 유서 깊은 가문의 일원이었으며, 수재중의 수재만 통과한다는 국가시험을 통과해 당당히 교수가 되기도 했는데 어떻게 그런 사람과 자신이 비교될 수 있냐는 것이다.

 

하지만 신은 일견 공평하기도 하다. 그렇게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이 완벽할 것 같은 사르트르도 아쉬운 것이 있었으니 그는 사시였다. 그리고 빼어나게 잘 생긴 것도 아니다. 그런데 비해 카뮈는 매력적이었으며 단명했다. 사르트르는 장수했고. 그러고 보니 공평한 것도 아닌가? 게다가 카뮈는 돈과도 별로 인연이 없는 듯하다. 그가 출판이나 강연 등으로 적지 않은 돈이 은행에 있었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있었단다. 그나마 노벨문학상을 받는 바람에 그 상금으로 엑상프로방스에 조그만 시골집을 사서 어머니와 함께 편하게 글을 쓰겠다는 바람도 이루지 못하고 어느 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그의 어머니도 그 충격으로 6개월 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카뮈가 사르트르와 비교되는 것을 거부했던 것엔 그의 가정환경도 한몫했을 것이다. 포도농장의 감독이었던 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에 징집돼 일찍 전사하고, 어마니 역시 말을 잘하지 못하며 정신적으로도 온전치가 못했다고 한다. 집안은 늘 가난했고. 그랬다면 그는 불행했을 거라고 사람들은 짐작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가난했지만 불행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건 지중해가 주는 기후와 햇빛 때문이었다.

김화영 교수는 카뮈를 이해하려면 이 지중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중해가 무엇인가? 고대 그리스 헬레니즘 문명의 발상지다. 기독교의 반대되는 지점에 헬레니즘이 있다. 기독교는 병적이고, 사변적이며, 낭만주의를 대표하지만 헬레니즘은 구체적이고 확실한 지향점을 펼쳐 보인다. 그러면서 문학은 구체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나는 순간 귀가 좀 번쩍 뜨였다. 이건 별로 깊게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기도 한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던 기독교가 헬레니즘에선 저렇게 인식되는구나 한 것. 또한 이는 카뮈가 지중해의 햇볕아래서 춤추던 조르바와도 중첩되기도 한다. 아무튼 그는 그 햇빛 아래서 가난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카뮈하면 흔히 <이방인>이나 <페스트>를 떠올리겠지만 난 오래 전부터 <시지프의 신화>를 떠올렸다. 그것은 내가 그 책을 독파해서가 아니다. 실은 독파하는데 실패했다. 사춘기 시절의 일이다. 그 책을 이해하긴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책에 손을 댔던 건 바로 실존주의 때문이다. 그게 그렇게 멋있게 들릴 수가 없었다. 이 책에서 그 한 자락을 만났다.

“...... 그러나 시지프는 신들을 부정하며 바위를 들어 올리는 한 차원 높은 성실성을 가르친다. 그 역시 만사가 다 잘 되었다고 판단한다. 이제부터는 주인이 따로 없는 이 우주가 그에게는 불모의 것으로도, 하잖은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그에게는 이 돌의 부스러기 하나하나, 어둠 가득한 이 산의 광물적 광채 하나하나가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행복한 시지프를 마음속에 그려보지 않으면 안 된다.” (96p) 그 얼마나 멋진 말인가.

 

카뮈는 이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훗날 정오의 사상을 구축해 나갔다. 그는 지중해에는 안개의 비극성과는 판이한, 태양의 비극성이 있다고 했다. 아마도 그래서 <이방인>을 쓰지 않았을까? 그의 세계는 삶과 죽음이 인접해 있다. 이를테면 투우사가 아름다운 건 소의 정수리에 창을 꽂아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한 번에 삶과 죽음을 가르는 그 분명함을 설명했다. 그의 문학은 항상 젊었다. 그것은 그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죽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문학도 사람과 함께 나이 먹어가는 유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의 흐름을 뒤집어 놓은 것이 죽음이라고 <최초의 인간>에서 밝히기도 했단다.

 

또한 그의 사상은 따로 또 같이의 문학이었다. 그것만이 이상적인 예술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는 사랑이 없는 반항은 온전한 반항이 아니라며 사랑과 정의의 함수관계를 그의 책 <결혼, 여름>에서 밝히기도 했다. 그것은 정오의 사상과도 그 맥을 같이 하는데, “정의를 실현하려는 요구가 오래가면 그것을 낳아준 사랑을 메마르게 한다.”, 절도를 지향하는 집념을 표현하기도 했다(111p).

 

카뮈는 앙드레 지드와 함께 프랑스 국어사전에 가장 많은 예문을 싣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명쾌하며 감동적인 표현을 하는 작가라고 한다. 그는 늘 사랑 받지 못하는 건 운이 없는 거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건 불행이다.’라고 했단다. 그런 그가 낭만주의자가 아니라니. 모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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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6-08-18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카뮈 사진 보니 눈이 정말 초롱초롱하네요.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김화영 교수의 강의도 궁금합니다.

stella.K 2016-08-19 13:02   좋아요 0 | URL
오, 고마워요 브랑카님. 이 글에 댓글이 없어서 좀 우울했었는데...ㅋㅋ
강의 정말 좋았어요.
솔직히 그때 제가 거의 뒤에 앉아서 들어서 정말 귀를 쫑긋 세우지 않으면
들을 수가 없거든요. 게다기 교수님이 앉아서 강연을 해서
얼굴도 볼 수 없고 오로지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어요.
전 그러면 거의 듣기를 포기하는데 아무래도 문학에 관심이 많고
더구나 카뮈라 정말 한마디도 허투로 흘려 듣고 싶지 않았어요.
카뮈는 정말 멋진 남자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