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소설에 비친 대학은…

지성·낭만 ‘옛 얘기’ 상아탑은 죽었다
취업난에 찌든 캠퍼스가 무대
구직 재수생·알바생이 주인공 고뇌하는 지식인 모습 사라져

2006년 소설 속의 대학은 더 이상 ‘상아탑’이 아니다. 적어도 한국 문학에서 그 말은 사어(死語)가 됐다. 저성장과 취업난은 현실 세계뿐만 아니라 상상적 허구의 세계에서도 대학의 풍경을 바꿔버렸다.

▲지성 ▲낭만 ▲농활 ▲민주화 운동 등의 소재에 묘사되던 1990년 이전 대학생 모습은 소설 시장에서 사라졌다. 이젠 ▲구직난 ▲패스트푸드점 알바 ▲지성인 대접을 받지 못하는 초라한 대학생의 초상이 새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김경욱의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 김애란의 ‘베타별이 자오선을 지나갈 때, 내게’, 박현욱의 ‘동정없는 세상’, 김주희의 ‘피터팬 죽이기’ 등 대학을 소재로 삼은 최근의 소설 10여 편이 한결같이 상아탑의 몰락을 그리고 있다. 계·월간지나 단행본, 다 마찬가지다.

1980년대 대학의 낭만을 그린 이주희의 ‘F학점의 천재들’, 대학생 주인공의 내적 성장을 다룬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시대를 아파하는 지성인의 고뇌를 담은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등은 그야말로 옛 얘기다. 대학생을 주인공으로 다룬 과거 소설들이 그린 ‘대학생=지식인’의 등식도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문단도 이런 변화를 주목한다. 문학평론가 고인환 교수(경희대 교양학부)는 5월 중 발간되는 계간지 ‘문학수첩’ 여름호에 ‘2000년 이후 소설에 나타난 대학의 풍경’이란 글에서 “대학이 소설 속에서 사라졌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한 계간지에 발표된 김경욱의 단편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은 아버지의 실직으로 아르바이트에 나선 대학생이 주인공이다. 고 교수는 이 소설에서 “대학생의 생활공간이 대학에서 맥도날드 매장으로 이동했다. 삶의 의미니 인생의 본질이니 상아탑, 학문의 전당 등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대학의 위상이 들어설 틈이 없다. 대학생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애란의 ‘베타별이…’는 학과 성적 4.0 이상, 토익 점수 900점을 맞고도 서류심사에서 30번이나 낙방한 취업재수생이 “혹시 나는 괴물이 아닐까”라며 자책하는 장면을 그린다. 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지성을 추구하는 대학생 대신 순결과 여대생이란 신분을 무기로 결혼시장에 뛰어드는 속물 여대생의 욕망을 비꼬고 있다.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양진오 교수(대구대 국문과)는 “대학은 더 이상 엘리트 공동체가 아니며, 취업난이 소설에 반영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재룡 숭실대 불문과 교수는 “프랑스 문학에서 대학과 대학생이 지식인 역할을 하는 것은 20세기 초에 이미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고교 졸업생의 2%만 대학에 가던 4·19 때와 70%가 가는 2000년대 대학의 위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오히려 2000년대 문학에 그려진 대학의 모습이 현실의 고민을 잘 반영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상아탑’으로서 대학은 영화와 TV 드라마 등 영상 매체에서도 퇴장했다. ‘내일은 사랑’ 같은 대학생 멜러물, 유신 말기 대학가 시위 풍경을 그렸던 ‘모래시계’류의 시국 드라마 등도 TV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김태훈기자 scoop8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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