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다고 다 문학인가
▲ 김광일 문화부장 | |
#1. 엊그제 김명곤 신임 문화관광부 장관과 상견례 점심. 그는 젓가락을 잠시 내려놓고 취임 다짐을 말했다. “어쨌든 저는 현장 중심의 문화정책을 펴겠습니다.”
현장? 현장 좋아하기로 따지면 기자들도 둘째갈 수 없기에 반갑게 들렸다. 담당 직원들이 서류로 보고한 내용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잘 모를 때가 있는데, 현장으로 달려가 현장을 보고 현장에 귀를 기울이면 금세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현장은 말한다”는 것을 그는 기자보다 절감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다음날 같은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내왔다. 문서로 약속한 셈이었다.
문제는 “무엇이 현장이냐”다.
#2. 늦은 시각 광화문에 있는 한 호프집. 중견 출판인 H씨, 소설가 K씨, 그리고 신문 기자 한 사람이 거칠게 술을 따르고 있다. 낙담은 울분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초판 1500부만 찍었는데도 반품이 90%가 넘는 현실을 개탄했다. 싸구려 상업주의를 부추기는 몇몇 외국 작가가 우리 시장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 공연장의 현실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초대장 공짜 관객이 유료 관객보다 많다는 통계를 들이댔다. 몇몇 인기 뮤지컬만이 독식하고 있을 뿐 나머지는 손가락을 빨고 있다는 것이다.
#3. 1991년 마크 빅터 한센과 잭 캔필드라는 미국인 강사들은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 원고를 마무리해놓고 허탈에 빠졌다. 이미 130번 이상 출판 거절을 당하고 있던 터다. “짧은 이야기 모아봤자 안 팔립니다.” “이야기에 강렬함이 없습니다.” “그 제목은 절대 안 먹힙니다.”
이때 두 사람은 아이디어를 냈다. 그 책이 출판되면 사겠다고 약속하는 구매약속 용지를 하나 인쇄한 것이다. 이름, 주소, 구매 희망 부수를 적는 칸이 있었다. 두 사람은 몇 달 동안 신발이 닳도록 전국을 뛰었고, 합산으로 2만 권을 사겠다는 약속을 얻었다. 마침내 131번째 출판사와 계약에 성공했다. 오늘날 전 세계 39개 언어로 번역되고, 첫 권이 단숨에 800만 권이나 팔렸으며, 무려 80권까지 시리즈로 이어진 20·21세기 초대형 베스트셀러는 그렇게 탄생했다.
#4. 다시, 무엇이 현장인가. 기자의 현장 따로 있고, 장관의 현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면, 어디가 현장인가. 오늘날 창작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아서 고뇌하는 작가보다, 팔리지 않아서 고통받는 작가가 더 많다는 것이 혹시 현장의 진실은 아닌가.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는 ‘흡혈귀의 비상’이란 책에서 “작품의 완성은 독자에 의한 실현 속에 들어 있다”고 말했다. 솔직해지자. 문학 기자에게 현장은 소설가가 아니라 독자다. 뮤지컬은 배우가 아니라 관객이 현장이다. 왜냐하면 현장(독자·관객)이 없으면 기자도 없고, 장관도 없기 때문이다.
#5. H씨와 K씨께. ‘좋은 공연에는 관객이 들기 마련’, ‘좋은 책은 독자가 사기 마련’이라는 말은, 하루빨리 잊어야 할, 실패자들의 유언 같은 것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쓴다고 문학이 아니다. 찍어낸다고 문학이 아니다. 투르니에의 말처럼 읽어주어야 문학이다. 현장으로 가 ‘좋은 공연’이란 무엇인지 관객에게 물어야 한다. 세계적 스타도 가장 짜릿한 순간은 첫 공연 매진 때다. 문화는 마켓과 티켓으로 완성된다.
#6. 김명곤 장관은 한때 ‘애물단지’ 소리까지 듣던 국립극장을 6년 동안 맡아 최고의 연봉(1억2900만원)을 받는 성공 스토리로 이끈 주인공이다. 누구보다 그는 “텅 빈 객석”의 허탈을 잘 안다. 장관의 현장이 ‘구매 약속 용지’를 들고 전국을 누비는 그곳이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