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이 저자] "장애 여성의 세상 바꾸기, 한번 해

보죠"

'오늘도 난, 외출한다' 김효진

▲ 김효진 작가
김효진씨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하다. 마흔 넘어 결혼해서 3년 전 아이를 낳은 뒤 그가 새로 듣게 된 말이 있다. 아이와 길을 나서면 “몸도 성치 않은데 애는 왜 데리고 다녀요?”라는 걱정이 들려온다. 아니, 저런 몸에 결혼을 했나, 하는 노골적인 시선도 느낀다. 장애인이며 여성이자 어머니로 살아가기란 어떤 것일까. 김씨는 “친정어머니조차 결혼을 반대하셨다”며 아이를 낳아 키우며 ‘여성 장애인의 권익’에 새로 눈뜨게 됐다고 말한다. 신체 장애를 지닌 여성은 ‘무성(無性)’의 존재로 살아가도록 압박하는 세상의 편견과 정면으로 맞설 용기도 생겼다. 김씨가 쓴 ‘오늘도 난, 외출한다’(웅진지식하우스)에는 그렇게 세상 속으로 나오려는 한 여성의 체험과 생각이 실렸다.

“지체장애 신입생을 위해 건물 출입구를 고쳤다, 이런 게 남다른 미담으로 신문에 나지 않는 세상이 와야죠. 장애인 중에서도 여성 장애인은 성차별의 장벽을 하나 더 겪고 있어요. 장애가 없는 여성도 직업과 출산·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운데 장애여성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해내겠느냐는 거죠.”

억울하고 아픈 이야기를 쏟아놓는데 막상 얼굴은 웃음이다. 인터뷰 사진을 찍기 위해 화단 위로 올라가 달라는 요구에도 “한번 해보죠” 웃으면서 목발을 내려놓는다. 짧게 자른 머리와 자그만 체구에서 에너지가 툭툭 터져 나온다. 한국장애인연맹 여성위원장으로 있는 그는 자신을 ‘장애인운동가’라고 소개한다. 2003년부터 3년간 ‘에이블뉴스’라는 인터넷 장애인신문에 ‘백발마녀전’을 연재하면서 일상에서 겪는 차별과 과제를 풀어내기도 했다.

‘모두’를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학교 시절 내내 소풍이나 운동회를 포기했던 일, 딸의 결혼은 꿈도 못 꾸던 부모님이 “너는 커서 엄마·아빠랑 살자”고 하는 말에 상처 받았던 일, 장애인인 현재의 남편과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던 일, 4개월 된 갓난 아기를 안고 걸을 수도 업을 수도 없어 두문불출하던 일…. 장애 여성으로 그가 살아온 40여 년 세월은 늘 자신과의 싸움인 동시에 세상에 대한 도전이었다.

“지체부자유 학생이 있는 반을 무조건 1층 교실에 배정하는 것은 차별이다. 경사로를 만들면 같은 학년 친구들과 같은 층을 쓸 수 있다.” “장애인 맞선 행사는 왜 평일에 열리나. 장애인은 모두 직장도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린 것 아닌가.” 그의 주장은 바로 자신이 겪어낸 일들에서 비롯한다.

그는 이제 장애인 정책이 ‘시혜’가 아니라 기본권 보장과 행복추구권 확보라는 점에서 ‘환경 개선’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와 함께, 장애여성 운동을 벌여나갈 힘을 모으겠다는 생각이다. “영화나 TV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에서 장애여성이 어떻게 재현되는지 지켜보고 문제제기를 할 생각입니다. 휠체어에 앉은 가련한 비극의 주인공으로 못 박히는 것을 거부할 겁니다.” 그는 뇌성마비 여성과 부랑아 남성의 ‘사랑’을 그렸다는 영화 ‘오아시스’를 장애여성에 대한 왜곡의 한 예로 들었다. 명백한 성폭행을 사랑으로 합리화한 것이나 장애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밑바닥’으로 고정했다는 점 등이다.

김씨는 이제 장애여성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하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바느질 교육이 아니라 운전 교육이 절실합니다. 아이 낳아 키우는 장애인 엄마들을 위한 육아·가사 도우미 지원도 필요합니다. 사회 변화만큼이나 장애 여성들도 변하고 있습니다.”

글=박선이 선임기자 sunnyp@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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