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책과 램프사이] 口碑文學은 미래문학이다

한국인의 삶과 구비문학

구비문학은 모든 문학의 할머니요 손자다. 기록문학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서정과 서사를 전했다는 점에서 고전문학의 첫머리에 서야 하고, 기록문학의 위기가 논의되는 지금도 채팅과 게시판 댓글을 통해 구어(口語)를 닮은 기기묘묘한 문장들이 잉태된다는 점에서 현대문학의 끝머리에 놓인다.

얼마 전 48회 국어국문학대회 디지털 스토리 텔링 분과 회의에서 좌장을 맡은 적이 있다. 그때 게임을 즐기는 젊은 대학원생들을 제외하고 좌석을 꽉 채운 교수들은 구비문학 전공자였다. 신화부터 게임까지 그들의 관심은 깊고 넓었다.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무척 많은 사용자가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의 다국적 네트워킹을 이야기‘판’의 구조와 비교하고, 롤랑 바르트의 ‘현대의 신화’를 참고하여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스타 신화’와 ‘물신(物神) 신화’를 분석한 것도 바로 그들이다.

                            18명의 구비문학 전공자들이 참여한 ‘(서대석 외 지음·집문당)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전통의 보존과 계승, 전통의 현대적 변용, 현대와 미래의 구비문학. 총론을 쓴 서대석 교수에 따르면, “구비문학은 고전문학과 현대문학, 나아가 미래문학에 두루 걸쳐 있는 보편적이고도 기초적인 문학의 영역”이다. 설화가 소설이나 동화로 재탄생하는 장면이나 창작판소리의 탄생도 흥미롭지만, 현대인의 삶을 구비문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제3부가 가장 눈길을 끈다.

심우장이 분석한 ‘현대 유머의 존재양상과 미적 특성’을 보자. 유머는 인터넷 글쓰기의 근간이다. 풍자와 해학에서부터 말장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머가 탄생하고 옮겨 실리다가 소멸한다. 예전에는 유머를 전달하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야 했지만, 지금은 골방에 틀어박혀서도 쌍방향성이라는 디지털 매체의 장점에 기대어 세계인과 유머를 공유할 수 있다.

대중가요를 민요와 연결해서 분석한 장유정의 논의도 신선하다. ‘트로트’를 일본근대음악과 비교하던 기존 방식을 훌쩍 뛰어넘어, 가수 김용우나 이상은의 최근 작업에서 가요와 민요의 행복한 만남을 꿈꾼다. 시(詩)와 노래(歌)를 분리하지 않고 ‘시가(詩歌)’로 통합하여 바라보는 관점이 있기에, 대중가요까지 문학연구 대상으로 아우른 것이다.

▲ 김탁환·소설가
구비문학 전공자들은 또한 사이버 공간에 관심이 매우 많다. 미학적 완결성을 최우선으로 두는 연구자들에게 이 공간은 형편없는 이야기들이 득실대는 오물통이지만, 구비문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공간은 탐험을 기다리는 신천지이자 디지털로 몸단장한 이야기판이다. 무더운 여름날 시골 노인정을 돌며 수첩에 일일이 적고 사진을 찍고 모았던 이야기들이, 웹마다 그득그득 쌓여 있는 것이다.

이 재미난 고민거리를 구비문학 전공자들에게만 맡겨두지 말자. 지금이라도 당장 줄기세포 이야기, 월드컵 이야기를 찾아서 정리하고 따져보자. 여기 문학의 새로운 성운(星雲)이 있나니!

김탁환 소설가·KAIST 교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