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작가들이 결딴낸 우리말 보라”

‘우리말 지킴이’ 권오운 시인, 50여명 글 실수 꼬집어

‘장비의 수급을 베어든 범강과 장달은…’(황석영 ‘삼국지’)

“전쟁에서 베어 얻은 적군의 머리가 수급(首級)이다. 그런데 ‘수급’을 베어드는가?”

문단에서 ‘우리말 지킴이’로 통하는 권오운 시인이 황석영 ‘삼국지’에서 집어낸 오류 한 대목이다. 권 시인은 이문열 ‘삼국지’에도 돋보기를 들이댔다. ‘집에 돌아와 급히 말에 안장을 매면서도 유비는 크게 불안해하지 않았다’는 문장에서 ‘안장을 매다’ 보다는 ‘안장을 메우다’가 더 안성맞춤이라는 것. ‘메우다’는 ‘말이나 소의 목에 멍에를 얹어서 매다’라는 뜻이다. 장정일 ‘삼국지’도 권 시인의 감시망을 벗어나지 못했다. ‘조조의 대군이 들이닥치는 마을은 사람들이 모두 집을 버리고 산속으로 피난 가는 바람에…’에서 ‘피난’은 ‘피란’으로 고쳐야 한다는 것. ‘피난’은 홍수 따위의 재난을 피하여 멀리 옮겨 감이고, ‘피란’은 난리를 피하여 옮겨 감이기 때문이다.

권 시인이 유명 소설가 50여 명의 글 실수를 집어내 지청구를 늘어놓은 책 ‘작가들이 결딴낸 우리말’(문학수첩)을 이번 주 출간한다. ‘몸집이 비대한 이 국장은 모 심다 나온 사람마냥 양복바지마저 둥개둥개 걷어붙인 모습이었다’(권지예)에서 ‘둥개둥개’는 ‘아이를 안거나 쳐들고 어를 때 내는 소리’를 잘못 쓴 경우. ‘큰 물건이 여러 겹으로 둥글게 말리는 모양’을 뜻하는 ‘둘둘’을 써야 했다는 것. ‘남자 밑에 깔려 색을 쓰면서도 카르멘인가 뭔가 그따위 고상을 떨어야 하는 여자’(김별아)에서 ‘고상 떤다’는 왜 오문일까. ‘언행이 고상(高尙)하다’라고 쓸 수는 있지만, ‘고상’은 떨 수도, 부릴 수도, 거릴 수도 없는 말이라는 것이다.

‘장사하는 일로 일생을 늙어와서 잔푼돈의 셈에 민감한 그런 사람들’(배수아)에서 ‘잔푼돈’은 ‘잔돈푼’(얼마 안 되는 돈)의 잘못이다.

권 시인이 보기에 젊은 작가들이 자주 범하는 실수는 ‘목덜미’를 ‘뒷목덜미’ 혹은 ‘뒷목’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목덜미’에는 앞뒤가 없는 데도 ‘뒷목덜미’란 엉터리 조어가 성행하고, ‘뒷목’이란 방언이 표준어처럼 유행한다는 것.

그러나 날카로운 권 시인의 지적이라고 해서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구둣발을 들고 힘차게 토꼈다’(성석제)는 문장에 대해 권 시인은 “구두를 신은 발이 구둣발인데 그것을(그것도 두 짝 다)들고 어떻게 뛴단 말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소설가 성석제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발을 든다고 하듯이, 구두를 신은 발을 들었다는 의미에서 쓴 것”이라며 뭐가 틀렸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해현기자 h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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