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 도시의 시인들 - 삶의 진부함에 맞서는 15개의 다른 시선, 다른 태도
김도언 지음, 이흥렬 사진 / 로고폴리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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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읽은 책이긴 하다. 흔히 작가하면 소설가를 떠올리겠지만, 이 책은 시인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밝힐 것이 있다. 내가 평소 시를 좋아하고, 시에 대한 순수한 관심 때문에 읽은 책은 아니라는 것. 특정 몇몇 시인의 이름이 실려 있어 호기심에 볼 생각을 했다. 그들은 김정환과 류근, 김경주 시인 때문이다.

 

김정환 시인은 오래 전, 한국문학학교란 일종의 창작 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 거기 교장으로 계셔 안면을 튼 적이 있다. 그땐 그분이 그렇게 유명한 시인인 줄은 몰랐다. 시인이라면 그저 김소월이나 박목월 정도 밖에 알지 못하던 내가 그분을 알리 만무했다. 난 그저 창작을 가르쳐 주는 전문 학원도 있다는 게 놀라웠을 뿐이고, 소설을 공부했기 때문에 이 분에 대해선 더 더욱 알지 못했다. 비교적 작은 키에 다부진 체구를 지닌 시인은 사람과 어울리는데 스스럼이 없었고, 사람 이름을 기억하는데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계셨다.

 

일단 학원에 들어서면 늘 클래식 음악이 흘렀다. 당시에도 음악에 관한 책을 저술 중에 계셨던 것으로 안다. 한 번 정도 그분의 특강을 들었던 것 같고(그것도 담당 선생님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 땜빵으로), 거기서 그분의 지난한 삶의 이야기를 띄엄띄엄 들을 수 있었다. 호기심에 다녔던 곳을 수강료를 한 번 더 내고 더 다녀보려고 했는데, 결국 성실히 다니지도 못했다. 그러자 시인은 나에게 전화해 왜 안 나오느냐며 이제라도 열심히 다니라고 격려 겸 선도 부장의 직임을 자처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대답만하고 끝까지 그곳을 다니지 않았다. (역시 나는 학교란 말이 붙으면 못 견디는 체질인가 보다. 믿거나 말거나) 아무튼 그런 인연이 있어 이 분에 대한 근황이 궁금했다.

 

류근 시인이야 김광석의 노래 작사가로 유명하고, 지금도 TV에서 열렬하게 나오고 있으니 궁금한 거야 당연하고, 김경주 시인은 작년,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로 그의 존재감을 인식한 나는, 그가 펼치고 있다던 시극에 관한 이야기를 더 알아 볼 수 있을까 해서 관심이 갔다.

 

그렇다고 이 관심 있어 하는 시인부터 읽었던 것은 아니다. 부러 실린 순서대로 깔끔하게 읽었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그런데 읽으면서, 이제 나는 시 앞에서는 더 이상 문외한인 것을 자랑하듯 떠벌릴 수 없을 것 같았다. 하긴 그게 무슨 벼슬이라고. 오히려, 나는 시인을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없으며, 소설가만큼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애써 관심 밖의 영역으로 미뤄뒀던 것을 후회해야 했다. 언젠가 함민복 시인이 시 한 편에 원고료가 얼마인지를 얘기한 시를 읽어 본 적이 있는데, 시인이 이렇게도 별 볼 일 없는데 시는 왜 쓰는가 그랬던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시인들이 알면 꽤나 섭섭하다 못해 상처를 입었을 것 같다. 누구의 말처럼 자본주의 상흔을 치료할 수 있는 건 문학이고, 작가란 말에 동의했던 내가 정작 돈 벌이가 안 된다는 이유만으로 시를 애써 외면하다니.

 

그런데 시를 외면한 건 나만이 아니었다. 김요일이란 시인은, 시란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 중에 가장 쓸모없는 것이며. 맹장 같은 거라고 했다. 시인도 이럴진대 속된 나는 어떠하겠는가? 하지만 이 책을 엮었던 저자 김도언은 이런 말을 한다. 시인은 실패하는 데 성공한 사람이라고. 그리고 이건 시인에게 요구되는 핵심적인 요건일 거라고. 모든 시인이 시를 써서 성공만을 지향한다면, 시는 빛나는 목소리를 잃고 하수구에 쳐 박힐 거라고 했다. 왜냐하면 타락한 시대의 성공만큼 비루한 것이 없기 때문에. 따라서 오늘날 우리의 시는, 가장 실패한 방식으로 타락한 시대를 증거하면서 자기 회복과 갱신의 가능성을 실험해야 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과연 저자의 말이 폐부를 찌른다. 우린 왜 모든지 성공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것도 성공을 위한 성공을. 그 성공을 위한 성공이 훗날에도 성공으로 남을 수 있을지, 현재의 실패가 언제까지나 실패로만 남아 있을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실패를 위한 성공이 훗날 어떠한 길을 도모하며 발전해 갈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므로 실패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시인에 대한 이중의 잣대가 있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시인은 낭만적일 것이라는 것과 가난하다는 것. 이런 시인을 사랑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가. 특히 시인의 나이가 젊으면 젊을수록 그들을 보는 눈은 가혹할 정도다. 권혁웅 시인은 인터뷰에서, 문학을 기술로 생각해서 문창과가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개탄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문창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몰라 하는 소리다. 글을 써서 성공하겠다는 세속적 욕망이 있다면 여기에 있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문창과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글을 안 쓰면 죽을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곳은 단순히 직업 훈련소나 소개소가 아니며, 그는 그런 그들에게 삶과 사회, 역사를 정확하고 날카롭게 볼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했다. 그는 현재 한 대학의 문창과 교수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마땅히 격려 받아야 하고, 인정받아야 한다. 왜 사람들을 자신의 잣대로만 보려하고 규정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시인들의 세계도 인간 세계여서 독야청청하고, 신선의 세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세계도 권력이 존재하기도 하고, 나태와 태만이 존재하기도 한다. 어느 시인은 청탁을 받을 때만 쓴다고 하는데, 시인이 그렇게 항상 목적이 있을 때만 시를 써서 되겠냐고 류근 시인은 질책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안 쓰면 죽을 것 같은 사람들이라며 그렇게 청탁이 있을 때만 시를 쓰려 한다면, 그들이 실패에 성공하지 않고 성공에 성공하려고 하는 사람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래서 그런 것과 상관없이 아웃사이더로 시를 쓰는 시인도 있다는 걸 나는 이 책에서 발견하고 눈이 번쩍하기도 했다(그가 누군지는 직접 읽어보고 확인해 보시라). 그런 건강한 아웃사이더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앞서, 김요일 시인은 그렇게 시는 가장 쓸모없고, 맹장 같음에도 불구하고 시인들이 시를 쓰는 건 병이라고 했다. 아주 고약한 병. , 왜 그리도 자학에 가까운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도 어느 부분에선 맞는 얘기다. 미치지 않고 서야 미칠 수 있겠냐고 하는 것처럼, 시인은 시로서 이 세상을 말해야 한다. 또한 권혁웅 시인의 말처럼, 삶과 사회, 역사를 정확하고 날카롭게 볼 수 있어야 한다. 누구보다도 건강한 자아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김이듬 시인도 그렇게 말했다. 시인은 똑같이 보통 사람의 삶을 사는 건강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그렇다고 누굴 밟아 세속적인 지위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밥을 위해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시인은 그런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되도록 계속 노력하는 사람이다.

 

뭐가 됐든 인간의 하는 일은 쉬운 것은 없다. 시인의 시 쓰는 일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시인들 역시 누가 뭐라고 하던 시를 열심히 써서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다. 새삼 드는 생각은 내가 시인들을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 하는 거였는데, 또 생각해 보면 시인들이 뭐 연예인도 아니고 일반인들에게 어디 쉽게 드러나는 사람이던가 싶기도 하다. 이런 인터뷰집이나 만들 때야 비로소 시인들의 삶과 고뇌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뿐. 이야기는 조금씩 달라도 뭔가 공통적인 목소리가 있었던 것 같다. 문학이나 시의 위상에 관한 이야기는 비슷한 공통분모가 있었다. 더불어 인터뷰이들을 통해 단편적이나마 우리나라 시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어 좋았다. 이 책 안 읽는 시대에 끊임없이 시를 쓰고, 그 시를 또 끊임없이 출판하는 출판사들이 새삼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 좀 읽어야겠다.

 

조금 아쉬운 점을 지적하자면, 전체적으로 난 이 책이 나쁘진 않았는데, 저자의 생각을 최대한 절제하거나 온전히 인터뷰 내용만 실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저자의 생각이나 해석이 인터뷰 중간 중간에 끼어들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좀 방해가 된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다고 저자의 문체가 쉬웠던 것도 아니다. 가끔 어려운 용어도 나오던데 그걸 우리말로 순화하거나, 뜻풀이를 해줘더라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불친절하다는 느낌이었다.(그런데 저자의 사진을 보니 꽤 미남이다. 이런 저자를 두고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해야하는 나는 어디 가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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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1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02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6-06-02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도언 저자의 책을 두 권 읽었는데 이런 책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소설가지만 시를 쓰기도 하는 작가라서 이런 책을 낼 수 있었던 것 같군요.

시에 반했던 시절이 있었어요. 30편쯤 시를 외우기도 했어요.
지금도 시의 매력은 알지만 이젠 시집을 읽게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사 놓고 보지 않은 시집을 봐야겠어요. 시 공부 좀 해야겠어요...

stella.K 2016-06-02 18:57   좋아요 0 | URL
김도언의 책 어떻던가요?
작가가 잘 생겼더군요. 배우 김주혁 같더라구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