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은 참으로 추웠습니다.
춥다 보니 연로한 저의 어머니가 며칠째 목욕을 하지 못하고 계셨습니다. 다행히도 어제부터 날씨가 풀렸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 냉기가 가신 상태가 아니라 어머니가 선뜻 목욕을 하실 엄두를 못 내시더군요. 그렇다고 난로가 있어 목욕탕 안에 들여다 놓고 할 수도 없고.
  그러고 보니 문득 옛날 기억이 나더군요. 어릴 때 우리 집은 정말 한 겨울에 목욕을 하려면 목욕탕에 석유난로를 들여다 놓고 했습니다. 지금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집안에 화장실과 욕실이 함께 있지만, 옛날의 기와집은 모든 것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형태가 많았지요. 그래서 화장실은 저만치 떨어져 있어 그야말로 변소였고, 욕실도 몇 발짝이긴 하지만 여하튼 마당을 가로질러 가야 했습니다. 그러니 다른 때는 몰라도 한 겨울에 세수나 목욕을 한다는 건 꽤나 번거로운 일이 없었죠.
  날씨가 너무 추워 자주 목욕을 할 수 없으니 엄마는 얼마 만에 한 번씩 그렇게 목욕탕에 난로를 들여다 놓고 우리 가족이 목욕을 할 수 있도록 하셨던 거죠.  
  그러자 엄마 역시 옛 생각이 나는지,
  "난로 하면 떠오르는 너희 할머니하고의 기억이 하나 있지."
  늘 그렇듯 엄마와 나의 친할머니와는 만만치 않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였기에 엄마의 기억 속엔 어느 때고 할머니에 관한 좋은 기억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저는 엄마가 무슨 말을 하려나 기다리고 있는데,
  "한 번은 한 겨울에 늬할머니가 왔는데, 그날이 또 목욕하는 날이라 할머니를 혼자 방에 계시게 하고, 난 난로를 목욕탕에 들여다 놓고 늬들 목욕시키고 나도 목욕하고 그랬던 거야. 
  그런데 이 노인네가 내동 가만있다 아버지가 퇴근해 들어오니까 갑자기 화를 내면서,  시어머니가 왔는데 방에 혼자 있게 하고, 애들하고 난로 끼고 목욕탕에 들어가 나올 줄 모른다고. 그게 시어머니 꼴보기 싫으니까 그런 거 아니냐고 그러는 거야." 
  나는 순간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어머머, 정말?"
  "그래 얘. 그러면 아버지가 코대답이나 하는 줄 아니? 알은척하면 싸움 날 테니까 못 들은 척하지."
  "며느리가 보기 싫으면 발뒤꿈치도 보기 싫다더니 엄마가 할머니한테 미운 털이 박혀도 단단히 박혔네. 하하하."
  "그러게 말이야."
  지금이나 되니까 웃으며 말할 수 있지 만일 할머니가 지금도 살아계셨다면 지난 일이었어도 그 일은 꺼지지 않는 불화의 불쏘시개 감이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문득 그 한 가지 사건에도 무수히 많은 관계의 역학이 숨어 있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우선 사람이 싫으면 무엇이든지 왜곡하는 건 인간의 심성은 기본이고, 그런 식으로라도 당신이 우월한 존재란 걸 알리고 싶어 하셨을 겁니다. 또한 사람은 외롭거나 소외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겁니다. 게다가 그 순간 방에 있어야 할 난로가 목욕탕에 가 있으니 썰렁해진 방에 짜증이 난 것도 한몫했겠죠.  
  또 그게 아니라면, 어느 때고 내가 너의 남편을 낳아 준 어머니라는 걸 과시하고 싶으셨던 거겠죠.  
   아무튼 어떻게 생각하든, 인간이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건 나를 좀 알아 달라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일 텐데 이런 속내를 알면 인간관계가 조금은 나아질 것도 같지만 실제로 그러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난로를 두고도 따뜻해질 줄 모르는 인간  관계가 있다는 게 서글프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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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1-28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학교 건물 안에는 히터가 있지만, 제가 초등학생 6학년 때까지는 난로가 작동되었어요. 교탁 옆에 난로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조그만 난로 하나로 교실 전체가 따뜻했어요. ^^

stella.K 2016-01-28 13:08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야. 나 초등학교 때만해도 석탄이나 나무 때는 난로가 있었어.
거기에 도시락 얹어놓고, 큰 주전자도 올려놓고 그랬는데...
그런데 너 때도 그랬구나. 지금도 그러는 초등학교가 있을까?
불편하긴 해도 나름의 운치가 낭만이 있었어. 그지?ㅋ

cyrus 2016-01-28 13:14   좋아요 0 | URL
제가 봤던 난로는 가스난로였어요. 석탄을 넣는 난로는 아니었어요. ^^

stella.K 2016-01-28 13:46   좋아요 0 | URL
ㅎㅎ 내가 너무 앞질러 갔군.
우리 땐 그랬다는 거지. 그것도 딱 초등학교 때까지만이야.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