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연극팀에 나가니 팀원 중 이번에 대학 졸업하는 여자 아이 하나가 모임을 파하고 나오는데 선물을 돌린다.
"저 있잖아요, 제가 시집을 여러분께 선물하려고 가지고 나왔는데요, 제가 정말로 존경하는 시인의 시집이에요. 다 드리기는 뭐하구요, 정말로 읽고 싶으신 분께만 드릴게요."
그 와중에 누가 나는 시집 안 좋아해서 안 읽어도 돼.라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주면 좋지. 잘 읽을 게."해서 한권씩 받아들고 좋아라 입이 헤 벌어져서 다음 모임을 약속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그 아이에겐 좀 미안한 말이지만, 어제 늦게 들어와 샤워하고, 꼭 봐야하는 TV 프로가 있어 녀석의 선물을 풀어보지도 못하고 그냥 잠을 잤다. 그리고 조금 아까 비로소 조금 읽어보았더니 참 좋은 시집 같다. 시 한 편 소개해 보면,
<그리운 얼굴>
산을 지나다 들을 지나다
문득 문득 스치는 그리움
어려움 속에서도 따스한 사람
남이라는 이유가 멀어진 이유인가
오늘, 더 없이 그 얼굴 그리워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
그도 가끔 내 생각을 할까
다정했던 사람
산너머 물건너 내 소식 혹여 듣거든
주저하지 마시고 나도 알게하소서
아, 소식마저 알길 없는 그리운 사람
얼마 전 연극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웃겨놓고 "저는 사람을 못 웃기는 사람일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저의 연기에서 웃는 것을 볼 때 아, 나도 웃길 수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죠. 그게 참 놀랍고 좋았어요."했던 아이.
사람을 웃길 수 없다고 해서 꼭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난 그 아이가 남을 웃겼던 걸 본적은 없지만 심성 착한 좋은 아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녀석은 남을 웃긴다는 게 천성인 줄 알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