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폭풍이 지날 때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4
캐런 헤스 지음, 부희령 옮김 / 생각과느낌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좀 부끄러운 얘긴지 모르겠는데,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산문시라는 걸 접해 보지 못했다. 사춘기 시절을 제외해 놓고 나는 그다지 시를 읽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작가에 의해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산문시라는 형태로 씌여질 수도 있다는 걸 이 책을 접하면서 비로소 처음 알았다. 그것은 내에게 색다른 체험이었고 동시에 좋은 경험이었다. 만일 자서전이나 평전을 이렇게만 쓸 수 있다면 그렇게 주저리 주저리 많은 수식어를 붙여가면 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간결해서 좋았다.

처음엔 이 책을 괜히 읽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떻게 운이 좋아 서평단에 당첨이 되어 놓고 다른 읽을 책도 많은데 나의 책 욕심을 괜한 마음에 꾸짖으며 후회하려고도 했다. 첫 페이지를 넘겼을 때, 이거 혹 예전에 봤던 '초원의 집' 같은 거 아닌가 생각도 해 보았다. 그 영화는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했던만큼 이 책도 그런 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하기사 언제나 그렇듯 낮선 책을 대하는 것은 비슷하게는 맞출 수 있어도 정확히는 못 맞춘다. 이 책은 나의 예상을 좀 많이 빗나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이 살았던 1930년 대 오클라호마를 비롯한 캔자스, 네브라스카,  미네소타, 위스콘신은 토양이 안 좋아 풀 이외에는 다른 식물이 자라기엔 힘든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땅을 개간해 밀을 심었다고 한다. 그 땅에 풀이 사라지자 긴 가뭄이 찾아왔고 결국 모래 폭풍이 시작되었고 그것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설상가상으로 주인공 빌리 조의 엄마는 뜻하지 않는 화재로 화상을 입고 며칠만에 새로 태어난 빌리 조의 동생과 함께 죽고만다.

빌리 조도 화재로 인해 손에 심한 화상을 입고 좋아하던 피아노도 치기 어렵게 되었다. 정말 사춘기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자상하고 사랑이 많던 아버지도 일순간 변해 술에 절어 산다. 그런 가운데 모래 폭풍은 여전히 계속되고 폐에 모래가 차서 사람도 가축도 죽어나간다.

빌리 조는 이 모든 현실이 괴로워 집을 나가버리지만 결국 다시 돌아와 현실을 받아드리고 아버지와도 화해를 한다. 또한 다행히도 의사가 빌리 조의 손등을 치료해 주고 아버지 역시도 새롭게 여자를 만나 재혼을 하고 안정을 되찾는다.

이야기는 어찌보면 단순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산문시인만큼 작가의 감정이 잘 녹아있고 상황도 함축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사실 항상 느끼는거지만 인간은 어느 순간 한없이 약해 보이지만 동시에 강하기도 하다. 모래 폭풍이란 악조건과 어느 날 하루 아침에 어머니와 눈도 재대로 못 마주쳤을 동생의 죽음을 목도해야만 했으니 얼마나 충격적이 었을까? 누구보다 사랑으로 감싸 줘야할 아버지도 삶을 포기한 듯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람은 어떤 슬픔과 악조건 속에서도 삶을 쉽게 놓아버릴 수 없는 뭔가의 끈을 가지고 있는가 보다. 그것은 빌리 조에겐 피아노였고 결국엔 자신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정말 자신을 사랑해 주는 어떤 존재가 만들어 주지 않으면 평생 갖지 못할 마음일 수도 있다. 그만큼 부모의 사랑을 재대로 받아 본 사람은 쉽게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한 인간은 주어진 상황과 환경을 이길 수도 있다. 그처럼 한번 모래 폭풍이 일기 시작하면 눈이고 코고, 귀속이고, 입 속에까지 모래가 들어가 나중엔 폐에까지 모래로 가득차 죽을 것만 같아도 인간은 그렇게 많은 모래 폭풍의 나날 속에서도 한 양동이의 희망을 퍼 올릴 수가 있다. 이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은 강하고 아름다운 것 같다. 자기 자신의 삶을 비관하고 걸핏하면 못 살겠다고 세상을 원망하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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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0-19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쓰셨네요. 너무 늦게 올려 못봐서 그래요^^;;;

mong 2005-10-19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숍님 리뷰에 이어 읽어 볼참이었어요
반응이 시큰둥한건 아니었어요 ;;;

stella.K 2005-10-20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켈님/거 괜찮습니다.^^
물만두님, 몽님/고마워요. 그래도 추천은 달랑 한개. 누가 하셨을까요? 흐흐.

2005-10-20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5-10-20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그렇군요. 땡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