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글쓰기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차윤진 옮김 / 북뱅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근래에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정말 많이 나왔다. 불과 10년 전 또는 20년 전만 하더라도 이 분야에 관한 책들이 이렇게 많이 나올 줄은 몰랐다. 전에는 어느 특정인 그러니까 대학에서 문학이나 창작을 가르치는 교수나 강사만 이런 책을 내는 줄 알았다. 그 옛날 소설가 지망생치고 휘트 버넷의 '소설작법' 한 권 안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는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창작을 가르치는 교수다. 하지만 이 책을 완독하기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렇게 창작을 가르친다는 건 전문인의 몫인 양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사정이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 이제 이 분야는 그런 가르치는 자의 몫이 아닌 것이다. 그건 오히려 그렇게 상아탑에 갇혀 이론만을 가르치는 자의 몫이 아니라 문학 현장에서 직접 뛰는 실무자의 것이란 말이다. 실무자라고 하니 다소 거창해 보이긴 하는데 말하자면 소설, 시, 에세이 등을 쓰는 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작가 또는 작가지망생들에게 있어 산맥과 같은 분야가 있으니 그것은 작가의 삶에 관한 책과 책 읽기에 관한 책과 글 쓰기에 관한 책은 아닌가 싶다. 특히 글 쓰기에 관한 책은 치명적인 중독성이 있어서 거의 얼마만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읽어줘야만 할 것 같다. 그러면 뭔가 영양주사를 맞은 것만 같고, 그래. 아무리 유명한 작가도 처음엔 다 어려움이 있었어. 그들이 겪었던 어려움들을 곱씹으며 나도 용기를 내서 다시 쓰리라 다짐도 해 본다. 이 책도 나에겐 그런 영양주사를 맞는 기분으로 펼쳐든 책은 아닌가 한다. 

  작가는 모름지기 엉덩이의 힘이라고 했다. 누가 더 오래 자신의 엉덩이를 책상 의자에 붙이고 있느냐에 따라 작가의 탄생과 소멸을 가늠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난 그 말에 일견은 동의 하지만 또 한편으론 동의하지 않는다. 나 같이 책상 의자에 오래 버티고 앉아 있을까? 물론 진짜 오래 붙어 앉아 있는 사람이 있으면 비웃겠지만 그래도 나도 한 엉덩이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도 효율이란 측면을 온전히 대변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엔 앉아서도 할 수 있는 일이 글 쓰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 작가치고 블로그 활동을 하지 않는 작가가 거의 없다. 그 블로그에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를 해 줘야 하고, 아는 블로거들이 무슨 글을 올리나 댓글은 안 달아도 글은 읽어줘야 한다. 신기라도 있어서 책상에 앉아 있기만 하면 일필휘지로 써대면 그나마 신이 날 텐데 그렇지도 못하다. 나도 요즘엔 매일 글을 쓰려고 연습 중인데(아, 이건 정말 너무 괴로운 연습이다. 몇 번을 실패하다 또 도전하고를 반복하고 있다) 쓸 때마다 외줄을 타는 기분이다. 이렇게 쓰는 게 맞나? 글을 쓰다가 길을 잃으면 어쩌나? 그런 불안과 함께 순간 순간 끼어드는 잡생각에, 그날 그날의 컨디션도 이런 나의 작업을 방해한다. 그러니 엉덩이로 오래버티기가 얼마나 효율성이 있다고 보는가?

  얼마 전 새롭게 안 사실이 있는데,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도 글을 쓰는 원고의 빈 공간에 자신의 재정상태를 낙서처럼 써놓기도 했다고 해서 새삼 웃음었다. 그러니까 그런 대문호도 글이 안 써지면 짬짬이 딴짓을 한다는 것이다. 도스토예스키가 자신의 놀음빚을 갚기 위해 글을 썼다는 건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매번 글 쓰기에 무너지는 나 자신을 보면서 나도 도스토옙스키처럼 무일푼이 되어 보아야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한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문학현실은 척박해서 글 써서 돈을 벌기 전에 아사할 확률이 높다. 온전히 글만 써서 돈을 버는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 보는가? 작가는 한마디로 명예직이나 사이드잡 정도지 목숨을 걸만한 직업은 못된다고 본다. 

  이 책에도 보면 저자가 자신의 첫 번째 소설을 쓸 때의 상황을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때 자신의 직업은 교사였으며 하루에 점심시간 35분을 할애에 매일 같이 글을 썼으며 방학 때는 아이들을 보모에게 맡기고 주 4일 동안 매일 세 시간씩 썼다. 뭐 대충 이런 이야기. 지금은 온전히 작가로서 글만 쓰고 있는 줄 아는데, 작가가 첫 소설을 쓸 때만해도 작가의 직업은 교사였다. 온전히 글만 써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거다. 이렇게 본업이 있으면서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에 35분이든, 일주일에 4일이든 글을 온전히 쓸 수 있는 것이다.

  뭐 그런 삶도 나쁘진 않아 보인다. 글 쓰는 일도 언젠간 슬럼프를 겪게 될 수도 있는데 그 슬럼프로 일을 놔버리면 먹고 사는 문제를 어디서 해결할 수 있겠는가? 예전에야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했다지만 지금은 취미가 일이고, 일을 취미인 세상이고 보면 글 쓰는 일에 순정을 바치는 건 확실히 지혜롭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작가가 명예롭기는 해도 경제적으로 대우 받는 직업은 아니라는 건 우리를 서글프게 만든다. 

  보통은 슬럼프는 일하는 사람에게만 오는 것 같지만 꿈꾸는 중에도 온다는 것을 아는가? 꿈꾸는 사람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매진하느라 그런 건 그 단계에선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글 쓰기는 주도면밀한 사고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글을 쓰면서도 끊임없이 나를 괴롭게 만드는 작업이다. 작가들 중엔 자기 얘기를 그대로 쓰거나 변주해서 쓰기도 하는데 그 글을 쓰는 과정에서 참 여러 가지 감정일 수 있다. 이를테면 밝은 느낌의 이야기를 쓰면 작가도 행복한 느낌이지만, 대개의 소설은 인간의 어둡고 음습한 면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되면 작가도 괴로워 몇 번이고 글을 놔버리고 싶을 때가 많고 실제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이럴 때 나는 역시 작가는 될 수 없는 걸까? 자책하고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꿈을 이루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지속 가능한 꿈이요, 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처음 글 쓰기를 배웠을 때 나의 글 쓰기 사부는 자기 점검부터 시켰다. 자기 안에 분노가 있는가? 그리고 글을 다 쓴 후 그 다음에도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후자는 이해가 가겠는데 첫 번째 질문 왜 분노를 얘기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나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말하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다. 거기에 작가는 이야기꾼이니 같은 얘기를 해도 어떻게하면 듣는 사람의 혼을 쏙 빼버릴만큼 잘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이 의지와 감각이 있는 사람이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 얘기는 차마 너무 아파서 말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면 그건 작가가 될 팔자가 아닐 수도 있겠다. 자기 얘기를 잘 할 수 없는 사람이 남의 얘기는 얼마나 잘 할 수 있다고 보는가? 진실을 통찰할 수 없으면 작가가 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니 글 쓰기는 어느 정도 치유의 효과는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딱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좋다고 본다. 글 쓰기가 고통스럽다면 그 고통과 맞서 싸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내려놓은 것도 방법은 아닐까? 사람이 우선 살고 봐야지 어떤 의무감이나 사명감 때문에 자신의 영혼을 다치게 하면서까지 글을 쓸 필요는 있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도 글 쓰기는 버리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글 쓰기는 여러 과정을 겪게 만드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요물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 고통뒤에 기쁨과 희열을 맞볼 수도 있고, 그러다 권태가 올 수도 있다. 이렇게 글 쓰기에도 파도타기는 필수인만큼 그것을 잘 타는 사람이 글 쓰기를 오래 할 수 있지 않을까? 매도 자꾸 맞으면 매집이 좋아진다고, 글 쓸 때의 갈등과 고통에 자꾸 나 자신을 갖다 대면 거기서도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리라고 본다.  
 
  나는 대충 이 단계까지는 온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이 험난해 보인다. 무엇보다 고독을 견디는 일. 무관심을 견디는 일이 쉽지가 않다. 이것을 견딜 수 있어야 진정한 작가가 될 수 있는 건 아닐까? 내가 그렇게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떠들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다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럴 때도 나는 지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을까? 시끄럽다고 비난 받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같은 소리를 내며 나의 의지를 관철 시킬 수 있을까? 다 자신 없어 보이긴 하다. 하지만 이제 겨우 한 가지 깨닫는 건 간혹 가다 내 글이 좋은 평을 받지 못해도 그것 때문에 글 쓰기를 포기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듣고 싶어하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글은 쓰면 쓸수록는다.  

  작가의 책이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다. 작가의 이전작도 대체로 좋은 반응이긴 했지만 간혹 혹평을 했던 독자도 있었다. 나는 굳이 이 책에 혹평을 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좋았던 것도 아니다(솔직히 내가 글 쓰기에 관한 책을 많이 읽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읽어 본 중엔 가장 지루한 책이 아닌가 한다). 내가 작가에게 바란다면 그냥 글 쓰기에 관해서는 이 정도로 하고 원래 본업인 소설 쓰기에 치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꼭 저자의 책이라서가 아니라, 솔직히 이런 책 많이 읽는 것도 그다지 좋을 건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보통은 글 쓰기가 자신 없는 사람이 차선으로 이런 책을 읽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글 쓰기를 정말 잘하고 싶다는 것과 동시에 두려움이 교차해서 이런 글 쓰기에 관한 책을 선택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맞서야 할 것을 맞서지 않고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 된다. 이 분야의 책을 왠만큼 읽었다면 저자가 하는 말은 다른 사람도 어디선가 했다. 단지 그 방법과 배경과 경험이 조금 달를 뿐이다. 맞서야 할 것이라면 빨리 맞서 승부를 보는 것이 낫다. 즉 한 자라도 더 써서 빨리 두려움을 정복하고 경험을 쌓으라는 말이다. 물론 초두에 말했던 것처럼 머리도 식힐겸 읽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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