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가 된 문장들
박범신 지음 / 열림원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작가에겐 좀 미안한 말이지만, 제목이 그다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작가도 알 텐데, 뭐든지 흔해지면 값어치가 떨어진다는 걸. 지난 몇 년 사이 이 '힐링'이란 단어가 얼마나 흔해졌던가? 그건 또 상업주의와 결탁을 해서 마치 자기네가 하는 것만이 힐링의 확실한 효과를 보장하는 양 선전을 하고 돈을 내라고 하지 않는가? 아무리 훌륭한 것도 상업주의와 결탁이 되면 사이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제목에서 이 단어만큼은 액면 그대로 사용하게 되길 원치 않았다.

 

하지만 왜 작가가 이 단어를 굳이 제목으로 하려고 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작가는 저항하고, 늙지 말아야 하며, 치유하는 사람이여야 한다. 나는 그것을 저자에게서 배웠다. 

 

지금도 생각이 난다. <은교>를 처음 읽었을 때를. 멋모르고 읽다 다리미에 데인 듯 했고, 결국 꺼풀뿐인 인간의 육체가 하도 덧없어 한줄기 눈물을 확 쏟아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작가가 말했던 '오욕칠정'이 과연 무엇인지 나 역시 두 눈 부릎뜨고 응시하고 싶었다. 그리고 한동안 작가 주위를 맴돌며(작가의 다른 책을 읽고, 강연회를 쫓아 다니며) 작가가 말하는 오욕칠정이 뭔지를 알고 싶었다. 

 

이 책이 고마웠다. 나도 대중에 묻혀 있는 한 사람으로서 아무리 애정하는 작가가 생겼다고 해도 세월 지나면 잊지는 않지만 조금은 저만치 밀쳐 두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렇게 불쑥 시도 아닌 것이, 에세이도 아닌 것이 나의 주위를 환기시켜주었다. 작가는 그냥 메모장에 낙서처럼 써 놓은 글들을 그러모아 책을 낸다고 했다. 겸손의 말이겠지만 역시 낙서에도 급이 다르구나 싶었다.

 

누군가는 꼭 생의 비밀을 알 것만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 같다. 나에겐 박범신 작가가 그랬다. 이 사람이라면 뭔가 생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을까? 그런데 한 가지 이런 사람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면 그 답을 은근히 피해 갈 우려가 있다. 그래서 간첩이 간첩질을 하듯 아주 은밀하게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알아 본 바에 의하면 그의 안에 늙지 않는 괴물이 산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열심히 쓰는 것도 이 괴물에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서 쓰는 것이란다.

 

그게 뭔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글이 쓰고 싶어 죽겠는데 막상 쓰지 못하는 병을 가진 사람에게는 자기 잘 난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겠지만, 그게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 어쩌면 불을 훔쳤다는 이유만으로 매일 독수리에게 심장을 뜯어 먹혔다던 프로메테우스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또한 문학은 그에게 있어서 목매달아 죽어도 좋을 나무라고 했다. 가히 충격적이기도 하다.

 

모름지기 작가는 시대에 저항할 줄 알아야 한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자본주의를 쫓는 글을 쓰는 것은 공해일 뿐이다. 내가 아는 박범신 작가는 자본주의의 세상에서 인간이 얼마나 병들어 가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자신의 고유의 문체로 문제를 제기해 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작가가 진짜 작가는 아닐지. 

 

책에서 작가는 매년 신을 만나러 히말라야에 오른다고 했다. 그런데 잊고 있었다. 그의 작가 정신이 청년이지 그의 육체가 청년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병원에 가 무릎에서 물을 뺀다고 했다. 말하자면 그는 노구에 다리가 아파도 히말라야에 오르는 것이다. 왜 난 그 생각을 못하고 있었을까? 

 

나는 다리가 아픈 이후로 장시간 걷는 것을 극히 경계했고 여행은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 이렇게 나를 사려서야 무슨 꿈인들 제대로 이루어 보겠는가? 그는 작가는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디든 생생한 '현장'을 봐두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 것을 보면 어딘가에 가는 것을, 걷는 것을, 쓰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겠다.

 

이 책엔 특이하게도 작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짧은 단상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특히 내가 읽었던 <은교>에 대한 단상을 보면 그 작품은 삶의 유한성에 맞춘 존재론적 소설이라고 했다. 나도 그것에 동감한다. 그러면서 난 얼마 전 읽었던 한 소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떻게 생각해도 아쉬운 소설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소설이 갖추고 있는 형식에 대해 생각해 본다. 너무 드라마적이지 않는가? 그걸 영화적 소설(쓰기)이라고 한다지. 그래서 현대 소설가들은 시나리오 작법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난 영화와 소설이 샴쌍둥이가 되가는 것에 대해 어떤 때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다가도 어떤 땐 영 못 마땅해진다. 이러다 내용은 없고 형식만을 쫓아가는 것은 아닐지? 출판사의 마케팅 수법에 빠져 허우적대는 독자로 전락하는 건 아닐지? 도대체 드라마와 소설이 다른 것이 무엇이며, 뭐 때문에 소설 읽기의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드라마나 영화 보기가 소설 읽기 보다 몇 배 더 재밌고, 쉽지 않은가? 그러니 뭐 때문에 소설을 보겠는가? 그래도 분명 소설은 그것만이 가고 있는 고유한 사명이 있을 것 같은데 어디서 찾아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이 책에서 <은교>에 대한 단상을 발견한 것이다. 존재론! 그렇다 소설은 그래야만 한다. 그러므로 형식 보단 내용이 더 먼저여야 하는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SNS에 열심히 부응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고 여기는 문학지망생이 더러 있다. SNS는 문자문화가 아니다. 본격적인 작가수업을 하려면 오히려 멀리하는 게 좋다. 구술문화는 우리를 움직이게 할 뿐 생각하게 하지 않는다. 트위터 등 SNS의 보편화로 문자문화는 오히려 실종됐다. 머물러 생각하는 일이 실종된 것이다. 턱밑까지 위험한 문명이 치고 들어와 똬리 틀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생각하지 않으면 현상 너머의 이면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신문맹시대'이다(331p).  

 

작가는 확실히 기계적인 것, 자본적인 것을 거부하는 아날로그인이다. 하긴 원래 문자라는 게 아날로그가 아닌가?

 

저자는 천상 작가다. 무엇을 말해도 결국 작가에 대해서 말하고, 글쓰기에 대해 귀착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젊을 때 두 가지 약속을 했단다. 하나는 작가로 죽겠다는 것과 아내 곁에서 죽겠다는 것. 아직 그걸 지키고 사니 더 바랄 게 없다(326p)고 했다. 그러면 됐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박범신 식 '힐링'은 내가 아는 방식의 힐링과는 조금은 달라 보인다. 그것은 무한 긍정 에너지다. 그가 하는 말이 좋고 옳아서 고개를 끄덕에게 만든다. 가식이 없고, 이 말 한 마디 더해 어떻게 하면 부와 명예를 더 쌓을까 그런 것이 없어 보인다. 그의 문체 하나 하나는 자본주의를 떠나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또 크게 뭉뚱그려 보면 현실을 떠나 있지 않는다. 왜 그런가를 생각해 보면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끊임없이 반성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쓰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의 모든 아폴리즘 중 가장 압권은 역시 작가 자신의 문학 단상을 쓴 제일 마지막 대단원인 '열정은 사랑이다'인 것 같다. 그는 말했다. 

작가는 밀실에 존재하고 

작가의 사회적 자아는 광장에 존재한다.

밀실과 광장을 오락가락하는 게 작가의 삶이다.

소설은 광장을 지향하되 밀실에서 쓰니까(343p)       

이 말로 내가 왜 그렇게 느끼는지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우리도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돈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면 그것이 더 이상의 의미가 되지 못했을 때 지지대가 없어 무너지는 삶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봐오지 않았던가? 힐링은 중요하지만 '누가 힐링을 하는가?'도 중요한 것 같다. 그건 의사일수도 있고, 상담사일 수도 있고, 작가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지지않는 마음. 이것이 진짜 치유자는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박범신 작가가 위로하고 격려하는 소리를 한 번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이다. 사진과 함께 글이 듬성듬성 여백의 미를 느끼며 생각할 여유를 갖게 해 나 개인적으론 아주 만족스런 독서였다. 이 책을 읽을 독자들도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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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04-03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폴리즘을 좋아해요.
제 취미가 좋은 문장을 반복해 읽는 것이라서요.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수필과 소설을 쓰시는 선배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이젠 나이가 많으니까 다독을 하기보다 좋은 책 몇 권을 정독하고 싶다고요. 그리고 두꺼운 책보다 얇은 게 좋다고요.
저도 나이가 들어서 반복해 읽을 책을 하나씩 '목록 작성'을 해 놔야겠어요.
그럴려면 지금 열심히 다독해야 할 것 같아요.
SNS는 멀리 하란 말은 명심하고 말이죠.^^

stella.K 2014-04-03 14:02   좋아요 0 | URL
이 책 좋아하실 거예요.
전 아직 글씨가 듬성듬성한 책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 책은 꽤 만족스러웠어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고, 음미해 볼 만한 글도 많고, 여백이 많지만 두껍고.ㅋ
언니에게 수필과 소설을 쓰시는 선배님이 계시다니 부럽네요.
누군지 살짝 알켜주시면 안 되요?ㅎㅎ

2014-04-05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05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