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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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처음 접하는 위화의 소설이다. 

일단 다 읽고난 후 이 소설의 인상을 말하라면 책 표지 그림만큼이나 쓸쓸하고, 허무하며 동시에 기괴하다. 죽으면 한 줌의 흙이되고, 저 세상으로 가면 이 세상에서의 일들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인데, 뭐 때문에 사는 동안 그토록이나 악다구니를 쓰면서 살아야 하는 것인지, 왜 그렇게 미워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인지, 왜 그렇게 사랑 받지 못하여, 사랑할 수 없어서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 소설을 읽어보면, 작가가 나름 죽음의 세계를 자신의 상상력을 총동원해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그것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작가는 죽음을 통해 인간 삶의 부조리한 면들을 말하고자 했던 의도가 더 강해 보인다.

 

작가가 책에서 사룬 중국 사회의 문제는 비단 중국 사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가 책에서 다뤘던 자살의 문제, 영아 납치 살해의 문제, 여러 가지 일어날 수 있는 그러나 온갖 사건과 사고의 문제는 익히 보아 온 우리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거기에 얼키고 설킨 인간 애증의 문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다만 작가의 다른 점이 있다면, 메멘토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랬다고, 이런 인간의 문제를 죽음의 관점에서 보았다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인간은 왜 죽음을 기억해야 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인간 사회의 문제를 윤리나 철학의 관점이 아닌 죽음의 관점에서 보면 뭔가 명확해 보이는 것들이 있다. 요즘엔 모든 것을 절대적 관점이 아닌 상대적 관점에서 보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지 않은가? 그래서 이성과 논리는 엄청 날카로워졌는지 몰라도 답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졌다. 그러나 죽음은 절대적이다. 누구도 죽음을 피해가지 않는다. 인간은 인간의 문제를 안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죽음을 통과해 버리면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더 이상 인간의 문제를 안고 저 세상에서 까지 씨름할 필요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설정한 '빈의관'이라는 곳은 마치 이승에서 저승을 넘어가기 위한 일종의 국경 또는 정류장 같은 곳으로 생각되어 진다.

 

그곳에서 죽은 영혼들은 뭐하다, 어떻게 해서 이곳에 왔냐고 서로 물어본다. 과연 그럴 것도 같다. 가족 중 누군가가 죽으면 살아있는 사람은 그가 왜 죽었는지, 뭐하다 죽었는지 묻는 사람마다 답변하기에 바쁘다. 죽은 망자도 이 세상에서 살다가 저 세상으로 간건데 망자끼리라도 그런 통과의례는 있지 않을까?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고, 고통 없고 이유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없으니 저승에서 치뤄지는 그 통과의례는 유쾌하지마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망자끼리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고 감싸 주려고 애를 쓰는 것은 아닐까?

 

작가는 죽음을 다룸에 있어서 '자살' 또한 간과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인공 양페이의 전 부인이었던 리칭과 슈메이의 죽음이다. 둘은 다 자살로 생애를 마쳤다. 태어나는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어도 자살은 의지고 선택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그것을 합리화시키고 고무 찬양하기도 한다. 그런데 역시 일단 죽음을 통과해 보면 자살처럼 초라하고 불합리한 것은 없다는 걸 두 사람이 잘 보여주지 않나 싶기도 하다. 

 

사실 우리가 직접 죽어보지 않는 이상 사후 세계에 대해서 명확히 얘기할 수 없는 것 같다. 물론 역대로부터 사후 세계에 대해서 끊임없이 논의가 되긴 하지만 누구 하나 명확하게 밝혀 놓은 이론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한 가지 아는 건, 죽고나서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전제다. 그리고 이 천국과 지옥은 누가 가느냐를 놓고도 의견은 분분해 보인다. 무신론이면서 이것을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살 때 착하게 살았는가 나쁘게 살았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갈린다고 본다. 그에 비해 기독교인 것은 경우엔 하나님을 믿고, 안 믿고의 믿음의 문제로 그것을 판단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것으로 인간의 삶을 판단하며 인간에게 겁을 준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물론 그것에 대해 비판할 생각은 없지만 그것은 어쩌면 죽음을 생각하기 싫어하는 인간의 유보의식이 그렇게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천국을 생각해 보라. 인간이 사후에 갈 곳이 없고, 죽으면 끝이라면 이 세상 사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힘들고, 괴로운 것이 되어버리겠는가. 우리가 이 세상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도 죽으면 천국을 소망하기에 죽음 조차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얼마 전,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 세상을 떠났다. 물론 슬프다. 그러나 우린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며 떠나 보내줬고 그렇게 떠나갔다. 우리가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어느 때가 되면 천국에서 다 같이 모여 살 날을 소망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간의 온갖 이성과 논리로 부정하는 철학을 펼친다면 무엇이 이로울까?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조차 막는 어리석은 자에 불과하지 않을까? 물론 이 책은 그것을 말하고자 했던 책은 아니다. 그러나 작가가 인간의 죽음을 다룬만큼 그런 생각이 들게도 만든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소설가가 쓴 하나의 소설일 뿐이다. 대부분의 소설가들이 그렇듯 소설은 인간의 삶에 대해 말할 뿐이다. 거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사후 세계의 일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나름 설득력을 지녔다. 하지만 나 개인적으론 작가의 생각에 완전 동의하진 못하겠다. 한 작가의 문학관은 그 자신의 세계관을 말하며, 인생관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저 작가는 사후 세계의 일면을 보여주므로 소설에서의 운영의 묘를 잘 살렸다고도 보여진다.  

 

결국 소설은 휴머니즘을 말해야 하고, 소설가는 휴머니스트가 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이 점이 충실해 보인다. 이야기도 잘 엮었다. 정말 이야기'꾼'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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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9-16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화의 에세이는 읽었는데, 이건 소설이군요.
사후 세계가 궁금해요.
그래서 위화 작가의 상상력으론 사후 세계를 어떻게 그려냈는지 궁금합니다.
꽤 잘 쓰는 작가로 봅니다.^^

stella.K 2013-09-17 16:28   좋아요 0 | URL
중국 작가들이 한 글 하잖아요. ㅎㅎ
저 개인적으론 아주 감동적으로 썼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참 그럴 듯하게 썼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사후 세계는 늘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