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콤상큼 '레몬김치'

 

 

김치맛에 중독된 미국 스타요리사 '앨런 수서'



▲ 미국의 스타요리사, 앨런 수서
“동양에선 머리카락 노랗고 눈 파란 서양인을 ‘야만인’이라고 불렀죠. 그런데 ‘문명세계’의 음식인 김치 맛을 江?된 야만인 한 명이 여기 있다고 칩시다. 그래서 죄송하지만… 미친 야만인처럼 김치를 먹는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하! 좋죠. 재밌겠네요. 어떻게 하면 되나요?”

“김치를 포기째 손에 쥐고 치켜들어 주세요. 김치 끄트머리를 입에 물어보시겠어요? 네, 그렇게요. 그대로 움직이지 마세요.”

앨런 수서(Allen Susser·48)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자기 이름을 건 레스토랑 ‘셰프 앨런스(Chef Allen’s)’를 가진 요리사다. 까다로운 미식가들은 레몬·망고·오렌지 등 감귤류를 이용한 그의 신선하면서도 독창적인 음식에 흡족해 한다. 뉴욕타임스·마이애미헤럴드 같은 유력 신문과, 미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본다는 NBC방송 아침 프로그램 ‘투데이(Today)’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그런데 이 스타 요리사가 한국음식 하나에 미쳐 있다. 김치, 그것도 고춧가루 팍팍 뿌리고 마늘 듬뿍 넣어 제대로 삭힌 김치다. 수서씨는 그 솥뚜껑 같은 손으로 직접 김치를 담가 먹는다.

뉴욕으로 이민온 루마니아 가정에서 태어나 정통 프랑스 요리사로 훈련받은 수서씨가 김치에 빠진 건 20여년 전 마이애미로 이주하면서. 새로운 음식 재료를 찾기 위해 한인 수퍼마켓에 들렀던 그는 시뻘건 배추 조각을 눌러 담은 유리병을 발견했다. 가게 주인은 이 희한한 음식의 정체가 “한국 김치”라고 알려줬다.

요리사다운 호기심이 발동했다. 김치 한 병을 사들고 집으로 왔다. 뚜껑을 열자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입은 불이 붙은 듯 매웠다. 그런데 묘한 매력이 있었다. 차츰 사이다 같은 청량감이 느껴졌다.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맛도 좋았다.

자꾸 입에 당겼다. 김치 한 병을 하루 만에 다 먹어치웠다. 김치는 중독성이 강한 음식이었다. 그래서 그는 집에서도 김치를 먹는다. ‘별미’ 차원이 아니라, 한국사람처럼 밑반찬으로! 김치가 암세포를 죽이고 식중독도 막아주는 효능이 있다는 건 김치를 연구하다가 알게 됐다.

연구 끝에 자신만의 김치를 개발하기도 했다. ‘레몬김치’다. 레몬 속살은 물론 껍질까지 소금에 절여 배추와 함께 익힌다. 그는 “레몬을 쓰면 맛이 색다르면서 소금을 덜 넣어도 충분히 맛이 나기 때문에 더 건강에 좋다”고 한다.

레몬으로 담근 김치라. 이걸 김치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은 김치라고 하면 당연히 고춧가루가 들어간 빨간 김치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고추는 17세기에야 한국에 소개됐습니다. 300여년 전만 해도 김치는 소금에 절인 배추뿐이란 거죠. 음식은 새로운 재료와 요리법이 추가되며 발전하는 겁니다.” 이 남자, 김치를 꽤 연구했다더니 별걸 다 알고 있다.

수서씨는 자기 레스토랑에서도 김치를 낸다. 레스토랑 냉장고에는 김치가 떨어지는 날이 없다. 레몬김치는 주로 생선요리에 곁들여 낸다. “김치가 기름기를 걷어내 입안을 상쾌하게 한다”고 했다. 손님들로부터 반응도 괜찮다. 새콤달콤한 열대과일 구아버와 잘게 다진 김치를 섞고 그 위에 석쇠에 구운 새우를 얹은 요리는 손님들이 꾸준히 주문하는 인기 메뉴다.

그런 김치요리사가 한국에 왔다. 서울 신사동 ‘라 퀴진’ 요리학원에서 ‘셰프 앨런 수서의 선키스트 레몬 레슨’이 열린 지난달 26일을 앞뒤로 1주일간 머물렀다. ‘김치 종주국’에서 별의별 김치를 맛보느라 하루 세 끼가 모자랐다. “점심·저녁은 물론이고 아침에도 김치를 먹다니! 종류도, 먹는 법도 이렇게 다양할 줄은 몰랐어요. 물김치와 백김치는 정말 별미였어요. 생선요리와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새로운 요리를 창조하는 데 필요한 영감을 잔뜩 얻어갑니다.”


[세콤상큼 '레몬김치']

‘셰프 앨런 수서의 선키스트 레몬레슨’에서 수서씨가 알려준 레몬김치 담그는 법. 처음엔 쓰기만 하던 레몬이 숙성과정을 거치며 깊이가 있는 상큼한 맛으로 변했다. 레몬레슨에 참가해 레몬김치를 만든 김지영(28)씨는 “요즘 인기 있는 동남아음식 같기도 하고, 샐러드처럼 가볍게 다른 음식과 곁들여 먹기 좋겠다”고 했다.

◆재료

양배추, 배추, 레몬, 마늘, 생강, 설탕, 생선액젓, 고춧가루, 피망 가루(파프리카 가루라고도 불린다), 라임, 굵은소금

◆만들기

  1. 마늘과 생강을 각각 반 컵씩 다진다. 라임(레몬과 비슷한 초록색 감귤류 과일) 3개를 짜 즙을 낸다. 설탕 1/4컵(1컵=200㏄·맥주잔 하나 정도), 생선액젓 반 컵, 고춧가루 3큰술, 피망가루 3큰술을 더해 잘 섞는다.

  2. 양배추 2통, 배추 1통을 한변이 5㎝ 길이의 정사각형으로 자른다. 파도 같은 크기로 썰어 1컵 분량을 준비한다. 레몬은 4개를 가능한 한 얇게, 동그란 모양이 되도록 가로로 썬다.

  3. 양배추와 배추, 레몬을 큰 양푼에 담고 굵은 소금 3컵을 뿌려 절인다. 2시간 후 찬물로 소금기를 씻어내고 물기는 꼭 짜낸다.

  4. 절인 양배추와 배추, 레몬을 미리 준비해둔 양념(1), 파와 함께 잘 버무린다.

  5. 투명한 1ℓ들이 용기 2개를 준비한다. 병이 3/4쯤 차도록 김치를 담고 뚜껑을 꼭 닫는다. 국물이 골고루 배어들도록 하루 서너 번 용기를 뒤집어주면서 이틀쯤 실온에서 익힌다. 냉장고에 보관하면 세 달쯤 두고 먹을 수 있다.

◆맛&멋 포인트

- 라임을 구할 수 없으면 레몬즙이나 식초로 대신해도 좋다.

- 파프리카 가루를 구하기 힘들면 넣지 않아도 된다.

- 양배추나 일반 배추 한 종류만으로 담가도 상관없다. 수서씨는 “개인적으로 배추 종류를 섞어 써야 다양한 씹는맛을 즐길 수 있어서 더 좋다”고 한다.
 


[레몬지를 곁들인 도미구이]

◆재료

도미, 레몬지(소금에 절인 레몬), 밀가루, 파프리카 가루, 타임, 소금, 우유, 땅콩유, 캐슈넛(가운데가 구부러진 견과류), 넛맥(향신료의 일종), 소금, 레몬즙, 실란트로(고수 잎), 버터

◆만들기

  1. 밀가루 반 컵, 파프리카 가루 2찻숟갈, 타임 1/4찻숟갈, 소금 반 찻숟갈을 섞는다.

  2. 비늘을 벗기고 뼈를 발라낸 도미살 4장을 넙적한 그릇에 담은 우유 반 컵에 담갔다 꺼낸다. 도미살 양면에 1을 고루 묻힌다.

  3. 캐슈넛 1/3컵, 넛맥 1/4찻숟갈을 굵게 다진다. 소금 1/2찻숟갈과 함께 작은 프라이팬에 버터를 조금 두르고 갈색이 될 때까지 볶는다. 레몬지 1숟갈과 레몬즙 2숟갈, 다진 실란트로 2숟갈을 더해 섞는다.

  4. 땅콩유를 두른 프라이팬에 도미살을 앞뒤로 노릇해 질 때까지 굽는다.

◆맛&멋 포인트

- 캐슈넛은 땅콩, 아몬드 등 다른 견과류로 대체해도 된다.

- 넛맥이나 실란트로가 없으면 넣지 않아도 된다.

- 땅콩유가 없으면 아무 식용유나 써도 된다.

- 레몬지가 없으면 그냥 레몬을 써도 된다. 레몬지는 레몬을 소금에 절인 북아프리카식 저장음식. 만드는 법은 간단하지만 시간이 좀 걸린다. 레몬 아래 위 꼭지를 잘라낸 뒤, 가운데 길게 칼집을 내 그 사이에 굵은 소금을 채운다. 소금을 채운 레몬을 유리병과 같은 용기에 담고 돌처럼 무거운 것으로 눌러 3일쯤 둔다. 레몬에서 스며나온 레몬즙과 올리브유 반 컵을 레몬 표면에 고루 묻혀 3주 더 숙성시킨다. 레몬 12개에 굵은 소금 700g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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