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은 나의 힘 - 카프카의 위험한 고백 86
프란츠 카프카 지음, 가시라기 히로키 엮음, 박승애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읽는데 다소의 망설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프란츠 카프카라는데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그러나 문학을 좋아한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작가를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편견이겠지만, 나 같은 경우 카프카의 작품은 중학교 때 처음 접해보고 왠지 넘지 못할 산맥같아 읽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그 난해함과 우울함, 약간의 괴기스러움은 내 취향은 아니지 싶었다. 그리고 거기에 굳이 한 가지 이유를 더하자면, 작품의 분위기 못지 않게 그의 삶이 그리 유쾌한 삶은 아니었다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차라리 순탄치 못했다면 그를 이해했을 것 같다. 스스로를 유폐시켰던 삶이 뭐 그리 알고 싶고, 본받고 싶을까?     

사람은 어떤 사람을 사귀느냐에 따라 그 삶도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책도 그런 것 같다.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을 읽느냐에 따라 기분뿐만 아니라, 사고나 영혼까지도 좌우하기도 한다. 실제로 난 그런 경험을 하기도 했는데, 가령 에밀졸라의 <작품>이란 책을 읽다가 주인공의 불행한 삶이 가위에 눌리는 기분이어서 결국 그 책을 다 읽지도 못하고 덮어버렸던 적이 있다. 그후 난 에밀졸라의 책은 선택하기를 주저하게 됐다. 이처럼 책 한 권을 읽어도 사람의 기분을 좌우할 때가 많은데, 이책을 읽는다는 건  나에게 얼마만한 모험이 될런지 알 수 었는 일이었다. 오죽했으면, 이 책을 엮은 가시라기 히로키도 그를 가리켜 '실패의 달인'이라고 했을까?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이책은 그리 가위 눌릴만큼 기분이 안 좋아지는 책은 아니었다. 오히려 카프카를 더 알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고 할까? 그러리만큼 이책의 저자는 카프카를 아주 잘 소개해 놓았고, 카프카를 빌어 절망이 현대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아주 간결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해 놓았다. 솔직히 읽으면서도 저자가 이 정도로 쓸 정도라면 카프카에 대해 상당히 통달해 있지 싶은데 아니나 다를까, 저는 에필로그에서, 학창 시절 <카프카 전집>이 간행 되었을 때 한 권, 두 권 모으는 일이  작은 즐거움이었고, 현재하는 일도 카프카의 작품을 번역하고, 그에 대한 평론을 쓰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카프카는 어떤 사람이였나? 

 

이책을 읽어 본 바에 의하면, 카프카는 무척이나 소심한 사람 같다. 오죽했으면 그가 약혼자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에 "우유 컵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조차 두려워집니다. 그 컵이 눈앞에서 깨져서 파편이 얼굴로 튀어 오르지 말란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24p)"라고 했을까? 사실 이 정라면 거의 신경증 환자에 가깝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뿐인가? 그는 평생 부모로부터 작가의 꿈을 인정 받지 못했고, 아버지 앞에서는 기 한 번 제대로 펴 보지 못했다. 게다가 한 작가의 애인이라면 흔히 우리가 생각하듯 아름답고, 지적인 사람일 것 같지만 카프카는 사람을 볼 줄 몰랐던지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집에서 일해주는 하녀였다고 한다. 그런 여자와 결혼할 생각을 했던 건 단지 그녀가 카프카에 비해 큰 덩치를 가져서였는데 바로 그점이 왠지 자신을 보호해 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두 번의 청혼에도 불구하고 끝내 결혼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도 용기와 책임의식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너무나 나약한 사람이었기에 그도 쉽지는 않았으리라.  

 

또한, 사람이 너무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 해도 안 되지만, 과소평가해도 안 되는 법이다. 하지만, 카프카는 늘 자신이 글을 너무 못 쓴다고 학대에 가까우리만치 자책을 했다고 한다. 그것은 아마도 사람 저마다 잘 하고 싶은 일이 있을텐데 과도하리만치 잘 해야한다는 강박 때문에 오히려 못할 거란 생각에 그랬던 것 같다. 그러기에  그는 손대는 작품마다 끝을 본 작품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확실히 나에게 새삼 놀라운 부분이긴 했다. 미완성 작품도 작품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니. 물론 그런 작품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의 작가의 작품이라면 미완성은 미완성일뿐 그것을 작품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나름 그것도 작품이라고 인정해 주는 문단의 풍토가 약간은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카프카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이 오늘 날에도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을 보면 말이다.   

 

그의 과소 평가는 그의 작업 태도에도 영향을 미쳐, 이미 방대한 양의 원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늘 작업 양이 부족하다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또한 자신은 늘 전업 작가가 되길 원했지만, 빵을 위한 직업에 불만을 가졌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그가 가난하게 살았던 것도 아니다. 실제로 그는 부잣집 아들이었다. 하긴, 아버지가 부자인 것과 자신과는 별개의 것이라는 걸 카프카는 일찌감치 깨달았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그가 원치않는 일을 한다고 업무 능력이 형편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능력을 인정 받아 출세가도를 달리기도 했단다. 그럼에도 그는 늘 행복하지 않았다면 그는 확실히 자아상에 적지않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인간관계는 원만했을까? 인간관계도 서툴고, 기피하여 자신의 작품을 의뢰할 줄도 몰랐다고  그래서 브로트라는 당대 유명한 대중작가 겸 그의 친구가 대신 출판을 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 왜 그는 그처럼 한사코 당당하고, 적극적인 자기 자신을 인정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걸까?         

 

절망의 카프카에서 공감의 카프카로...

 

사람이 이해가 가면 연민을 느끼는 걸까 아니면 연민이 느껴지면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카프카를 좋아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또 어느틈엔가 그를 공감하기도 하고,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특히 그는 학교에 절망하면서, 그는 자신이 받은 교육은 해로운 독에 지나지 않았다(106p)고 일기에 토로하곤 했는데, 나는 왠지 깊은 공감이 갔다. 나 역시 중학교 2학년 때를 제외하고, 어떤 시기에도 학교를 결코 좋아해 본적이 없었으니까. 그나마 중학교 2학년 때 잠깐 학교도 어쩌면 다녀 볼만한 곳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왜 그런지에 대해선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 시절에 알았던 친구들이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후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입시 한파에, 더욱 깊어지는 고질적인 사춘기 병(?)이 학교를 불신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또한 카프카는 친구 관계에 희망은 없다며, 그가 친구관계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한 것은, 그것은 허무한 도움닫기였다(178p)고 단편에서 고백하기도 했는데,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다. 솔직히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친구관계를 유지해 나간다는 게 쉽지 않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지난 번 만났을 때만 해도 까르르거리며 잘 지냈던 친구가 오늘 다시 연락을 해 보면 이유없이 화를내고, 으르렁 거리는 것이다. 내가 특별히 잘못한 것 같지도 않은데 그렇다면 이 친구는 그동안 나를 만나오면서 가졌던 불만을 참고 있다가 표출을 한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문제에 빠져 누가 건드리기만 폭발 일보직전의 찰라였는지, 그걸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그 후 이내 서로 연락을 하지 않고 있으며, 멀어져간 친구가 몇 명 된다. 그러면서 나는 친구에 너무 연연해하지 않으며, 새롭게 누구를 만나게 될지라도 현재 만나고 있는 것에 충실할 뿐 거기에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하긴, 그런 일이 없던, 있던 친구는 한때 친구일 뿐 한번 멀어지기 시작하면 좀처럼 다시 가까워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나마 지금도 오랜 세월을 두고 변함없이 만나는 친구가 두어 명 정도 있는데 그만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아닌가? 물론 그들도 언제 연락이 끊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카프카는 친구 관계를 허무한 도움닫기로 표현했는데, 그건 맞는 말 같다. 

카프카는 심약한 자신을 자책하곤 했다. 왜 그런지에 대해선 여러가지로 생각해 봐야겠지만, 아무래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부유한 환경에서 문학을 좋아고, 생각이 많은 사람의 하나 같은 공통점은 아니었을까? 또한 그는 당대 훌륭한 필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로 인정 받는 것. 작가가 돼 제대로 된 돈을 벌며 산다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자주 툴툴거렸다고 한다. 그건 그때나 이때나 작가라면 하나 같이 공감하는 바일 것이다. 또 많은 작가지망생들이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바로 작가의 길로 들어서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이겠지. 

 

그는 삶 모든 부분에서 다 절망을 했다. 미래에 대해서, 직업에 대해서, 결혼이나, 자식 또는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학교나 직업, 음식 등, 하다못해 꿈이나 진실에 대해서까지도 절저하게 절망했다. 과연 이런 사람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왜 그리도 절망함으로 자신을 철저히 짓밟았던 걸까? 그건 사랑을 받지 못한 것에 기인한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말했다시피, 그는 아버지에게 인정 받지 못했으며, 어머니나 다른 형제들에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했으니 그럴만도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카프카의 절망은 무엇이었을까?

 

고백컨대, 나는 이 책을 읽기를 잘 했지만, 동시에 이 책을 읽기를 또한 잘못했다는 생각을 한다. 잘한 것은, 이 책으로 인해 그동안 외면만했던 카프카에 대해 다소나마 관심이 생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책의 작가의 의도처럼 과연 카프카가 절망만 했던 사람이었을까에 의문을 가져본다. 그것은 저자가 테마를 그렇게 잡았기 때문에 그런 스펙트럼에서 보자면 카프카는 실패의 달인이고, 절망의 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르긴 해도, 저자는 요즘 너무 팽배해 있는 하면 된다는 식의 지나친 낙관주의나, 반대로 염세주의를 경계하기 위해 이책을 썼던 건 아닌가 싶다. 뭐든 지나치면 모자란만 못하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카프카가 절망만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절망을 했다면 왜 절망할 수 밖에 없는지도 알아야 하고, 힘이라고 얘기했던 것처럼 그는 이 절망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는 거의 모든 것에 절망했지만 한 가지 절망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문학이었고, 자신이 작가라는 사실을 늘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작가는 어떤 족속이냐는 것이다. 만일 정말 우리가 유토피아에 살고 있다면 그 세계에서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할 직업은 바로 작가일지도 모른다. 불만이 없는 완벽한 세계. 여기에 불만 많은 작가가 필요할까? 역대로부터 작가들은 끊임없이 인간과 세계의 불일치에 대해 그 불만을 끊임없이 들춰냈던 족속들이다. 거기에 카프카도 존재해 있었다. 누구는 불만이 나의 힘이라고 했다. 작가는 바로 이 불만과 불일치를 글로 쓰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세상의 변혁을 가져온다고 믿는 것이다. 인간이 불만을 토로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안에 이상적인 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불만을 갖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작가는 혁명가가 아니다. 다만 끊임없이 불만을 토로하며 문제제기만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카프카의 절망이란 건 그 나름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어떤 사람 보기엔 절망하는 것처럼 보여졌던 건 아닐까? 

 

더불어 그가 절망하지 않고 불만으로 삶지 않았던 유일한 삶의 분야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아이러니 하게도 죽음이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였냐면, 살면서 그는 늘 불면중에 시달렸는데, 죽음을 생각하자 마음에 편안을 느끼며 비로소 잠을 잤다고 했다. 사람이 너무 염세주의에 빠져 죽음만을 생각하는 것도 문제긴 하겠지만, 오늘 날의 세대는 건강 염려주의의 세대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것이냐에만 온통 관심이 가 있지 죽음에 대해선 통 관심이 없다. 거기에 죽음을 오히려 기대했다던 카프카는 오히려 기이하기까지 하다. 그가 너무 이른 나이에 죽어서 그렇지 죽음에 대해서도 좀 기대하며 사는 것도 살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은 아닐까? 아무튼 그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이내 결핵으로 절명하고 만다. 아마도 그제서야 그의 이 세상에 대한 불만과 절망이 끝나지 않았을까? 아니면 저 세상에서도 그가 타고난대로 절망을 했을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작가에게 문학은 구원이다 

 

나는, 카프카가 다른 모든 것을 배신했지만(난 왠지 그의 절망이 세상에 대한 등돌림 곧 배신처럼 느껴졌다), 끝까지 자신이 작가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든다. 그 절망을 문학으로 승화시킬 줄 알았던 카프카는 진정한 작가고, 작가에게 있어 문학이 구원이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그래서 난 이 책을 읽고나서야 비로소 카프카를 알고 싶어졌다. 그래도 기왕이면 그를 알고자 원했다면 순수하게 그의 작품으로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내가 너무 게을렀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에서만은 절망하지 않고 희망했던 카프카. 이제 그를 만나러 가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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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1-29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수는 높은데, 댓글은 없네요. ㅋㅋ
이 책 벌써 읽으셨군요. 이 책의 어떤 구절에서 글감을 얻어서
글을 쓸 예정이었어요.
절망 속에서 사는 사람도 성공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 같아서
책 제목이 맘에 듭니다. ^^

작가들은 희망보다는 절망을, 낙관보다는 비관을 향한 사람들 같아요.
그렇게 어두운 색채를 띤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쓰는 경향이 있고요.
그래서 밝음을 가진 사람들은 소설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게 되어요.
어두우면 사색적, 철학적이 되어서일까요?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

stella.K 2013-01-29 18:03   좋아요 0 | URL
오, 아니어요. 이렇게 와서 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정말 이책은 할 말이 많은 책 같았어요.
그보단 카프카 자체가 할 말이 많은 작가인 것 같습니다.
맞아요. 절망속에 산다고 성공하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 같더라구요.
하지만 행복하지는 못한 것 같아요. 그걸 또 구분해야 하다니...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