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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하라 - 박노자, 처음으로 말 걸다
박노자.지승호 지음 / 꾸리에 / 2012년 4월
평점 :
최근 주진우 기자의 '정치정통활극 주기자'란 책을 읽어서일까? 내가 우리나라 상황을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자각과 함께 그런 류의 책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그래서 연이어 읽게된 책이 바로 이책이다. 박노자 씨야 워낙에 오래 전부터 유명한 사람이라 새삼 말이 필요없지만, 이번에 읽은 '좌파하라'는 주진우 기자의 책과 비교하기는 뭣하지만 더 강력하고 '급진'적이지 않나 싶다. 한마디로 앞의 책은 몰랐던 것을 깨우쳐 주면서도 특유의 인정과 감성이 묻어나는 느낌이 드는데, 이책은 그야말로 물기 쫙 빼고 건조하다 못해 좀 심하다 싶을 가혹한데가 있다.
이책은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씨가 박노자 씨를 인터뷰한 것을 책으로 옮긴 것이다. 작년 말 또는 올초부터 소위 말하는 우리나라 '야인'들의 대중적인 정치평론집(?)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그건 아무래도 올해가 정치의 계절이기에 그렇지 않은가 싶다.
이책을 읽다보면 박노자 씨는 연말 대선에 누가 대통령이 되던지 하등 관심이 없다는 말을 했다. 물론 그것이 알다시피 그가 (귀화한)외국인이기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읽다보면 그가 우리나라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많고 애정이 많은지 느껴진다. 그는 오히려 우리나라 국민이 대통령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런 말을 했던 것인데, 이것도 관심이 없으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만큼 그는 대화에 막힘이 없었고, 우리나라에 대해 진짜 우리나라 사람 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하긴, 어느 나라든 자국인 보다 외국인이 그 나라의 실정을 더 잘 아는 경우가 있다. 그만큼 외국인은 객관적일 수 있기 때문에 시각에 치우침이 없다. 그런데 비해 자국인은 일단 좌와 우가 나뉘어져 힘의 논리 때문에 보는 시야가 치우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중 박노자 씨가 초두에 지적한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주의를 주기도 한다. 그건 확실히 맞는 말이긴 하다. 워낙에 비운의 대통령이기에 그에 대한 연민 또한 큰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정서를 노무현의 남겨진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박노자 씨는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생전 잘못했던 것을 지적하므로(예를들면 우리 군의 이라크 파병 같은) 그에 대해 치우쳐 있는 감정을 바로할 것을 지적한다(나는 하루빨리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평가가 나와주길 바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노무현 대통령의 살아생전 강력한 오른팔이었던 유시민이나 문재인에 대해서도 경계할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그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신뢰할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솔직히 이 부분을 읽으면 조금은 혼돈스러웠다. 믿어야 하는 것인가, 믿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적어도 나는 주진우 기자의 책을 읽으면서 내친김에 아직 읽어보지 못한 문재인의 '운명'이란 책을 읽어 볼 참이었다. 그런데 내가 팔랑귀는 팔랑귀인가 보다. 그런 말을 들으니 슬그머니 그책에 대한 관심이 한풀 꺾였다(그래도 언젠가는 읽어봐야겠지ㅋ).
그밖에도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다. 처음엔 외국인이니까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에 대해 정통한 사람이다. 물론 다소의 견해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읽다보면 이만한 식견을 가지고 하는 말이라면 새겨들을 필요는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사실 그의 말을 다 알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야 워낙에 정치와는 무관하게 살아 온 사람이라 어떤 말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대충 파악만 하고 넘어가야 했던 것도 적지않았다(인터뷰의 한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것 같다. 그는 좌파 논객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좌파를 함부로 두둔하지 않는다. 아니 같은 좌파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좌파를 더 강도 높게 비판한다. 심지어 우리나라 좌파는 그저 우파에 대한 불온한(?) 좌파지 진짜 좌파는 아니라고까지 한다. 즉 그들은 진짜 뼛속까지 좌파는 아니라는 말이다.
솔직히 좌우파에 대한 논쟁은 우리나라로선 (아직)좀 불가능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예전에 이념의 시대엔 좌파와 우파는 오직 한 가지였다. '빨갱이'냐 아니냐는 식의. 하지만 탈이념화된 지금은 보다 복잡해졌다. 그러니 나름 좌파라는 사람조차도 자신이 무엇을 주장해야 하는지 우왕좌왕한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다. 더 좌파다워지는 것. 그래서 아마도 박노자의 말은 더 자극적이고 강경하게 들리는지도 모르겠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책을 읽으면서 악한 국가라도 없는 것 보단 있는 것이 나은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다. 자고로 보수 진영의 정치적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80년대부터 이어 온 좌파의 시끄러움을 폄하하거나 이해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금의 나라의 현실을 지켜볼 때 우리는 더 들끓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국가의 개인에 대한 폭력과 인권 탄압으로부터 개인을 지켜내는 것은 연대하여 들끓는 것 밖에는 없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좌파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박노자는 말하는 것이다. 한번쯤 그의 말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