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겸손함과 미소로 천하를 거머쥐었다

임국웅 옮김/ 들녘
박승준 중국전문기자 sjpark@chosun.com
 


 

21세기 세계 질서에서 새로운 용으로 떠오른 중국.

13억 인구의 새 지도자로 등장한 후진타오를 알아야 중국과 세계의 미래가 보인다.

‘Who’s Hu?’ 2002년 4월 미국의 시사주간 ‘타임’지가 커버스토리에 달아놓은 제목이다. “미국 방문을 앞둔 후진타오(胡錦濤)가 대체 누구냐”는 것이다.

후는 당시 이미 13억 중국의 사실상의 2인자인 국가 부주석 겸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었다.

뿐만 아니라 최고 권력자 장쩌민(江澤民)의 후계자로 내정된 걸로 중국 안팎에 공인돼 있었다. 그런 후가 도대체 어떤 인물이냐고 의문부호를 단 것이다.

후는 이제는 중국의 하늘 위에 뜬 가장 큰 별이 됐다. 지난 9월 장쩌민으로부터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넘겨받았고, 이에 앞서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직도 물려받았다.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 중국의 1인자가 됐다. 그런데도 “Who’s Hu?”란 물음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잘 생긴 얼굴에 늘 사람 좋은 웃음을 띠고 있지만, 웃음 뒤에 감추어진 진정한 얼굴을 아직도 후가 잘 드러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무엇이, 또 누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의 그를 만들었는지 풀리지 않는 문제로 여전히 남아 있다.

런즈추(任知初)·원쓰융(文思詠)의 ‘대륙을 질주하는 말 후진타오’는 후의 불분명한 출생지 문제부터 세밀하게 파고든다.

후는 도대체 안후이성(安徽省) 사람인가, 장쑤성(江蘇省) 사람인가? 그는 분명히 장쑤성 타이저우(泰州)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왜 중국 공산당의 공식 기록이 ‘안후이성 지시(績溪) 사람’이라고 발표하도록 내버려두는가. 출생지보다 원적(原籍)을 중시한다는 건가, 아니면 다른 정치적인 의도라도 있는 것일까.

런즈추와 원쓰융은 “장쩌민을 필두로 한 상하이(上海) 출신들이 득세했던 세상에서 살아오면서 굳이 자신이 상하이에 가까운 타이저우 출신이라는 점을 밝히는 것보다는 이전에 알려진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낫겠다는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인가”라는 의문문을 남긴다.

지역감정이 정치에 큰 부담이 되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후진타오가 출생지 문제에 우물쭈물하는 점이 이해가 갈 듯도 하다.

중국과 미국을 오가며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런·원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디테일들을 꼼꼼하게 따져가며 그 다음으로 규명한 것은 가난한 시골 찻잎가게집 아들이었던 후가 어떻게 권력으로 통하는 길로 들어설 수 있었던가 하는 점이다.


▲ 2002년 11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공산당 총서기에 오른 후진타오(오른쪽)가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과 함께 서있다. 조선일보 DB사진

대답으로는 ‘칭화대(淸華大)를 다녔기 때문’이라는 네포티즘(nepotism·족벌주의)적 분석을 해놓았다. ‘수력발전 전문가가 되고 싶어하던’ 시골 소년 후가 선택한 칭화대는 권력으로 통하는 인맥(人脈)과 만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후 자신이 ‘나의 대리인’이라고 즐겨 부르는 부인 류융칭(劉永淸)을 만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류융칭을 통해 그녀의 외삼촌으로, 중국 공산당 이론지 광명일보(光明日報) 주간인 창즈칭(常芝靑)을 만난 것도 세상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고도 했다.

분명히 후진타오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것으로 판단되는 저자들도 후를 중국의 최고 권력자의 자리로 끌어올린 힘은 네포티즘보다는 비범함을 평범 뒤로 감추는 비범함과 끝없는 겸손, 그리고 온화한 웃음을 띨 줄 아는 인간성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를 표하고 있다.

“후진타오에게는 강렬한 정치공명심 같은 것은 없었다. …그는 기억력이 좋았으며,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친절함과 성실함을 느끼게 하는 감화력이 있었다. …당 중앙에 입주해 있을 때도 동창생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는 꼭 직접 받았고, 앞으로 어려움이 있으면 자기를 찾거나 융칭(부인)을 찾으라고 말하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한마디로 평범함으로, 자신의 몸을 끝없이 낮춤으로써 천하를 거머쥐었다는 것이다.

후진타오가 동년배의 선두주자는 아니었다. 동년배의 선두주자는 하얼빈공대 출신의 왕자오궈(王兆國·현 정치국원 겸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였다.

왕은 중국 제2세대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미래의 지도자로 직접 고른 인물이었으며, 덩의 오른팔 후야오방(胡耀邦)이 늘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치던 인물이었다.

후진타오는 중국공산당의 권력의 계단을 오르면서 초반에 늘 왕자오궈의 뒤에 처져 있었다. 후가 왕을 따돌린 것도 결국은 끝없는 몸 낮춤이었다. ‘목소리가 컸던’ 왕은 잘 나가다가 1996년 후야오방 당시 총서기가 원로들의 미움을 사 실각하면서 후의 뒤로 밀려났다.

후진타오에게 천하를 쥐어준, 겸손과 비범을 평범 뒤에 감추는 습성은 칭화대를 떠나 서북지방의 간쑤성(甘肅省)의 류자샤(劉家峽) 댐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따뜻한 남쪽 출신이 건조하고 차가운 공기에 삭막하기 짝이 없는 서북지방의 댐 건설현장에서 일류대학 출신의 기술자로서가 아니라 흙 파고 벽돌 쌓는 막노동꾼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이 큰 깨우침을 준 것이다. 후진타오는 지금도 “그때는 정말로 생활이 말이 아니었지…”라고 표현한다.

결국 후진타오는 사회 초년병 시절에 배운 평범과 겸손과 과묵함과 따뜻한 웃음으로 아무런 잡음을 남기지 않고 전임자 장쩌민으로부터 중국의 당·정·군(黨·政·軍) 최고 권력을 넘겨받았다. “Who’s Hu?”의 답은 비범함을 감출 줄 아는 겸손과 따뜻한 웃음이었다는 것이 런즈추와 원쓰융의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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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4-10-19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화大를 떠나 댐에 가서 건설노동을 한 이력이 이 분의 정치에 생명력을 불어넣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실명을 들어 죄송하지만 김영삼 전직 대통령의 경우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 어려운 사람들의 실상을 추체험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새로운 중국 지도자에 대한 서평을 보며 하는 생각입니다. 좋은 서평 소개해주시는 스텔라님 감사합니다.

stella.K 2004-10-19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지금의 대통령은 우리 서민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임에도 그 빛을 발하지 못하는 건 뭐 때문일까요? 정말 정치를 잘 못하는 건지? 아님, 말씀하신 대통령처럼 어느만치의 백그라운드가 있으면서 낮은데로 임하는 그런 아우라가 있어야 하는데 이도 저도 아니어서 살망하는 건지?암튼 지금의 대통령 참 운도 없다는 생각 많이 합니다.

2004-10-19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4-10-19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예. 긴글 감사합니다. 역시 안타까운 일이네요.

니르바나 2004-10-19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민된 도리로 좋은 나라 만들기에 힘써 주시길 학수고대합니다.
부디 좋은 대통령이 되어주시길 , 함께 훌륭한 국민이 되어야겠죠.
좋은 시민이 훌륭한 대통령을 만들듯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