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동인문학상] <中>
그 시대 청춘, 얼마나 순정했던가
감수성 예민한 소녀가 70년대 통과하며 겪은 가난과 사랑·죽음 엮어
최홍렬기자 hrcho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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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지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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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12살 소녀가 21살의 대학생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통과제의를 그린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주인공은 1971년 퇴역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청량리에서 전농동으로 빠지는 대로변에 위치한 기역자형 목조 기와집으로 이사 온다. 기와집 바깥채에 술집 논산옥이 세 드는 바람에 여자들의 유혹과 남자들의 욕망에 익숙해진 주인공은 이광수의 ‘무정’보다는 ‘선데이서울’이 보여주는 원색적 자극에 더 노출된다.
벌이는 사업마다 실패하지만 국회의원을 꿈꾸는 아버지, 네 아이를 키우느라 악다구니만 남은 어머니. 유신시절의 대학생활은 혼란스러웠지만, 주인공을 가장 괴롭힌 것은 자신에게 문학이란 숙제를 남긴 여동생의 죽음이었다. 암을 앓으면서도 말 없이 고통을 참아가는 여동생은 유작으로 쓴 소설을 신문사 신춘문예에 언니의 이름으로 낸다.
정치는 억압적이었지만, 사람들의 삶은 오히려 낭만적이었던 70년대라는 역사적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그 속에서 가난했지만 서로 사랑했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그 시절 청춘들의 학창시절과 그 시대 그 나이에서 받아들이는 사랑과 죽음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친다. 97년 등단한 작가의 첫 장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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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지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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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한 대목
‘현섭의 딱딱한 혀끝이 세모꼴의 창살 끝처럼 내 입속으로 찌르듯 들어오는 걸 나는 느꼈다. 날카롭고 공격적인 키스였다. 예상 밖의 기습을 당해 아직 눈도 감지 못한 상태에서도, 그 순간 나는 한용운의 시는 정확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래, 키스는 날카롭다.’(제2권 85쪽)
‘건조하게 굳은 발바닥은 갈라져 허옇게 살비듬을 쓰고 있었다. 그 발은, 십육년 7개월을 지상에서 혜선이의 삶을 받쳐주었던 그 발은, 이제 더 이상 이 지상에서는 쓸모가 없다. 하늘로 올라가려면 발 대신 이제는 날개가 필요하겠지. (중략) 나는 그 발을 만져보았다. 드디어 인간의 생이 얼마나 비루하고 남루한 것인지, 비수처럼 아프게 뇌리에 꽂혔다. 나는 그 발에 뜨거운 입술을 대고 입맞춤을 했다. 잘 가라, 흰 새야. 이 남루한 발을 잊고 아픈 다리도 잊고 이제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가거라.’(제2권 140쪽)
◆작가의 말
“작가가 되기 위해선 누구나 마음속에 평생 그리고 싶어하는 밑그림이 있게 마련이다. 이 소설은 그런 밑그림이자 그걸 통과하지 않고는 나는 제대로 된 소설을 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나의 통과제의인 셈이다. 한 여자 아이가 스스로 빛이 되어 미로 같은 세상 속을 밝히며 길이 되기도 하고, 타인들의 색유리 조각 같은 삶을 비추기도 하는 그런 소설을 그려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