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평]배고픔은 ‘나’를 규정짓는 최고의 정체성

조용희·재불 번역문학가

 

▲ 배고픔의 자서전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어서 가을은 결실의 계절, 풍요의 계절, 먹는 계절, 그래서 배 부른 계절이다. 이렇게 여유 있고 넉넉한 계절에 프랑스 서점가의 맨 앞자리를 장식하고 있는 책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아멜리 노통의 소설 ‘배고픔의 자서전(Biographie de la faim)’이다. 이 작가는 1992년부터 매해 가을 학기 시작과 더불어 1년에 한 권씩 신작을 발표하고 있고, 이번에 벌써 13번째 작품을 선보였다. 음식에 대한 그녀의 남다른 ‘육체적 관계’는 이미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번에 나온 ‘배고픔의 자서전’은 기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벨기에 귀족 가문 출신의 외교관인 아버지를 둔 작가 아멜리 노통은 자전적인 이 소설에서 뜻밖에 20세까지 겪은 배고픔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채워지지 않는 배고픔은 단순히 위장을 채우지 못하는 육체적 결핍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배고픔은 그녀의 삶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 단것에 대한 허기증, 술에 대한 갈증, 지리와 책, 영화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허기증, 배고픔에 대한 배고픔, 결국 세상 모든 것에 대해 그녀는 강렬한 식욕을 억누를 수가 없다. 그녀는 모든 것에 허기져 있다. 단어에 굶주린 나머지 백과 사전을 A부터 Z까지 송두리째 머릿속에 삼켜 버린다. 그리고 그중 소화되지 못하고 그녀에게 혐오감을 유발시키는 세 단어를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때마다 경기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렇듯 배고픈 사람은 무언가를 찾게 된다. 수동적이지 않다. 배고픔 속에는 자신의 상태를 수용하지 않는 역동성이 있다. 인간은 바로 이 결핍으로부터 자신의 존재 양식을 만들어간다. “배고픔은 바로 나 자신이다”라고 노통은 단언한다. 배고픔은 이 소설의 주인공이며, 따라서 배고픔 자체인 작가가 바로 작품의 주제이다.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 이주했던 일본, 중국, 미국, 방글라데시, 미얀마, 라오스는 새로운 나라 또는 새로운 문화의 발견 너머 때로는 강렬한 예시의 가능성으로, 때로는 운명적 통찰로, 때로는 공포나 고통, 아니면 사랑이나 명철함으로 그녀에게 발현된다. 새로운 장소들은 주인공의 허기증에 대한 지리적 표현일 뿐이다.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자전적 소설 속에서도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아이로니컬하고, 빈정대는 듯한 그녀 특유의 문체를 발견할 수 있다. 슬프면서도 매우 기이한, 그래서 비현실적이다. 비정상적인 것, 과장된 것, 기형의 것에 대한 그녀의 편애 또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배고픔에 대한 예리하고 세련된 분석은 인류사회학적 통찰력을 보여준다. 소설 전반부에 소개되는 대서양 연안의 1년 내내 배고프지 않은 바누아투 주민들의 평화적이고 나른한 눈길, 반대로 배가 고팠던 중국인들이 먹을 수 없는 것들을 먹기 위하여 고안하고 시도해본 결과 최고의 음식문화를 만들어 낸 사실 등을 통해 배고픔은 존재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요구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배고픔이야말로 한 민족을 규정지을 수 있는 최고의 정체성인 것이다.

글쓰기에도 허기진 그녀는 1년이면 평균 3~7권 정도의 책을 구상해서 ‘잉태’해 내는 다산모(多産母)이다. 조국인 벨기에에서 처음으로 살기 시작했던 17세부터 시작한 글쓰기는 공기처럼 그녀의 삶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됐고, 그때부터 새벽 서너 시쯤 시작하여 매일 네 시간씩을 글 쓰는 작업에 할애한다. 공책에 볼펜으로 쓴 소설이 지금까지 44권에 이르며, 이미 출간된 13권을 뺀 나머지는 고스란히 서랍 속에 보관되어 있다. 그것들이 언제 빛을 보게 될지는 작가 자신도 알 수 없단다. 출간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던 그녀는 상복도 많아 첫 소설부터 르네 발레와 알렝 프르니에 상(‘살인자의 건강법’·1992), 파리 푸르미에 상(‘카틸리나 공격 연설’·1995), 프랑스 한림원 대상(‘두려움과 떨림’·1999) 등을 수상했다. 방년 37세의 작가 아멜리 노통은 이번 소설 ‘배고픔의 자서전’을 통해서 매우 개인적인 소설이 또한 매우 보편적인 소설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이번 가을에 몸매 관리 걱정 없이 삼켜버릴 만한 책이다.

* 이 책 빨리 번역되서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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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95 2004-09-11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멜리 노통의 신작이 또 나왔군요.. 그녀의 책을 언제나 다 읽을 수 있을까요?

stella.K 2004-09-12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만간 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