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손양원 : 사랑과 용서
유현종 지음 / 홍성사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손양원 목사에 대해선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가 주기철 목사와 함께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있다는 것과, 순교하기 전, 두 아들을 잃었는데 바로 자신의 아들들을 죽인 자를 양아들로 삼은 일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기독교의 유명한 일화다.

솔직히 순교자야 워낙에 기독교 복음 선교가 척박한 우리나라의 시대적 상황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쳐도, 어떻게 자신의 아들들을 죽인 자를 양아들로 삼을 수 있을까?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한편 인간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신실하게 주님을 따르고, 사랑과 용서의 원리에 입각해서 더 이상 미워하지 않을 수는 있을 것도 같다. 그를 다시 보지 않는다면 말이다. 또한 그것만으로도 큰일을 해내는 것이라고 우리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타인으로 부터 위로 받기를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원수를 가슴으로 끌어안고 보듬는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그건 바보 아니면 성자. 둘 중의 하나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는 건, 물론 그런 식으로의 용서도 대단한 일이겠지만, 우린 또 그런 식으로 나 자신을 얼마나 많이 제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선을 거 왔던가를 돼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은 어느 때고 나 자신을 원하시되 100%를 원하지 않은 때가 없으셨다. 왜? 아들을 내어 주시돼 온전히 내어 주셨으니까. 나를 위해 십자가에 고난당하시고, 피 흘려 죽으셨다. 그러므로 나의 죄를 완전히 사해주셨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는 하나님께 나 자신을 온전히 내어 드린 적이 없다. 내가 뭔데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 드릴 수 없단 말인가? 사랑하는 관계는 100%가 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그게 진정한 사랑의 관계다. 누구는 온전히 100% 아니 그 이상을 내어 줬는데, 누구는 80%만 내어 준다면 그건 온전히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며 상대를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 혹자는 이렇게도 말한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 법이라고. 먼저 선의를 베풀면 뒤통수를 맞는 법이니 절대 사람을 믿지 말라며, 그것을 정당화하며 신념처럼 여기기도 한다. 물론 그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손양원 목사의 딸 동희 양이 두 오빠를 죽인 재선을 아들로 삼으려는 아버지 앞에서 울부짖었던 것에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손양원 목사는 그 부분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 드렸던 것 같다.

나는, 손양원 목사가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는 장면이 비교적 단순하게 묘사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름 그도 쉽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성경에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제물로 드렸던 사건과 오버랩이 되기도 한다. 우린 그저 단순하게 아무 생각 없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성경을 공부하다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아브라함도 아버지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을 때 나름의 고뇌가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본다. 더구나 하나도 아닌 둘이고, 그것도 확인 사살로 두 번 죽인 자이다. 어찌 보면 아비로서 비참했을 것이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넘어 모멸감까지 느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 것을 그저 단순히 하나님의 사랑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덥석 아들로 삼을 수 있을까? 그에 대한 괴로움이 생략이 되어 아쉬움은 남지만, 대신 그의 딸이 울부짖는 것으로 작가는 그 부분을 대신 했다고 보여 진다.

하지만 또 어쩌면 손양원 목사는 처음부터 원수를 원망할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것은 사람 자체가 악해서라기 보단, 시대 자체가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 알지도 못한 채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 미쳐 날뛰는 자를 무엇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그저 탓한다면 시대를 탓하는 수밖에. 후에 판도는 완전히 바뀌어서 공산당에 부역한 자들을 색출해서 처단해야 할 때, 여느 사람 같으면 나라가 대신 원수를 갚게 해 주는구나 약간의 위로는 됐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손양원 목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그런 결단을 하지 않았더라면 한 생명이 그 자리에서 죽음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를 일이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그는 단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알고 죽게 되길 바랐을 것이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암울하고, 짐승 같은 세대일수록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란 걸 하나님은 친히 손양원 목사로 하여금 증명케 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서 손양원 목사의 신앙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단순함’ 또는 ‘순전함’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단순하다는 말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말해도 믿지 않을 만큼, 인간은 단순하지가 못하다. 솔직히 단순해지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솔직히 나 자신 신앙생활을 하면서 순간순간 얼마나 의심이 많은지, 얼마나 회의가 많은지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신앙은 단순해지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순전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토 달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이유 갖다 붙이지 않고, 그저 단순히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을 손양원 목사는 끝까지 지키며 보여줬고, 어떤 결기마저 느끼게 해 줬다. 하지만 한편 드는 생각은 과연 이런 사람이 오늘 날에도 존재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오늘 날은 우리는 너무나 풍요롭고 편안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너도 나도 기득권을 얻기 위해 발 버둥대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목사들조차 할 수만 있으면 좋은 교회, 될 수 있으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경쟁을 하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과연 손양원 목사 같은 올곧은 분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가려져 쉬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님은 등불을 켜서 창문 아래 두지 않고 창가 위에 둔다고 하셨다. 그런 것처럼 착한 일, 옳은 일은 드러나게 되어 있으며 많은 사람의 본이 될 수 있도록 하신다.

지금 한국교회는 그 어느 때 보다 위기라고 말한다. 이런 때에 손양원 목사의 전기 소설을 읽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닫는 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상에게 절하는 것을 들어 신사참배를 거부한 손양원 목사는 물론 그의 부친 손종일 장로 같은 분이 계셨기에 우리나라는 일제통치에서 해방을 맞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나라의 국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일본의 신사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지만, 다른 우상에 무릎 꿇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신앙의 선배들의 결기를 생각하면서, 나의 신앙은 지금 어떤지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되돌아 봐야할 때라고 본다.  

글이 참 막힘없이 유려하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는 이미 역사 소설가로 잘 알려진 분의 글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기독인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볼 수 있어 좋은 독서 경험이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르헨 2011-10-31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양원 목사님...학교 다닐때 읽었는데...제 믿음의 얕음을 절실히 느꼈죠.
새로나온 책인가보네요.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stella.K 2011-10-31 17:46   좋아요 0 | URL
아, 메르헨님도 크리스찬이시군요.
작가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현종 작가라서
마음이 가더군요.
이번 기회에 손양원 목사님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는 개기가
되서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근대사와 그 역사 속에서 기독교인의 역할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페크pek0501 2011-11-04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자는 이렇게도 말한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 법이라고. 먼저 선의를 베풀면 뒤통수를 맞는 법이니 절대 사람을 믿지 말라며, 그것을 정당화하며 신념처럼 여기기도 한다" - 이렇게 생각한다면 세상살이가 너무 살벌해요. 선의를 베풀고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바라는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 대가가 없으면 실망하죠. 그냥 베푸는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 베푸는 그 자체도 즐거움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뒤통수를 맞는다?, 우리 뒤통수 치는 사람, 되지 맙시다. ^^ 남 가슴 아프게 하면 즐거운가요? 원래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자고, 때린 사람은 괴로워 못 자는 법이죠. ^^

stella.K 2011-11-05 11:15   좋아요 0 | URL
와우, 어제 저의 서재에 오셔서 아주 훑으셨군요.
고맙습니다. 저는 오래된 서재라 그런지 옛날에
알았던 서재인들과도 서로 왕래가 뜸해졌어요.
지금 한창 활동중인 분들은 또 비슷한 시기에 서재 활동을 하신 분들
끼리만 친한 것 같고.
새롭게 누굴 사귀자니 그렇고, 옛 사람과 통하자니 그렇고.
제가 성격이 그래서 그런가, 오래된 서재인의 고충이 이런 거더라구요.
그래도 이렇게 님의 예방을 받으니 정말 반갑고 좋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