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 테너의 역사는 유럽 음악사와 전통 아랍 음악의 종교적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 전서 14장 34절에서 "...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 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어 볼 찌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라고 한것에 의해서 중세의 교회에서는 여자들의 교회 안에서의 활동이 금지되어 있었다.

모하메드도 어느 날 한 남자가 노래하는 것을 듣고 젊은 여자들을 현혹시킬 위험이 있으니 크게 노래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이러한 여러 상황이 남성이 남성들 앞에서 혹은 여성이 여성들 앞에서 노래하는 경우를 제하고는 지금까지도 일부에서는 성별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연주를 제한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아마도 8세기경부터 가성(Falsetto)의 사용이 일반화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연주상에서 남녀의 구별을 뛰어 넘는 유일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서기 822년 술탄(회교도의 군주를 칭하는 말) 하룬 아르 라쉬드 시대에 당시의 유명한 가수 Ziryab이 당시 술탄의 지배하에 있었던 코로바도 (현 스페인 도시)에 와서 그 유명한 가성발성을 전하였고 이 기술은 트르바도르(당시의 방랑시인들)에 의해 다시 널리 퍼져 급기야는 로마 교황청에 근무하는 성악가들에게도 전해졌다.

당시 여성들의 교회 내의 음악활동을 금했던 상황에서는 이 발성법으로 인해 교회 내에서도 양질의 변화있는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후 1600년 까지 가성이 거의 모든 성악 부문에서 압도적인 추세를 이루다가 사회의 구조와 상황의 변화에 의하여 그 역할은 카스트라토(Castrator, 남성 호르몬을 억제시켜 변성기 전의 소리를 낼 수 있도록 거세된 가수)에 넘겨졌다.

Farinelli가 이에 속한 대표적인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적 훈련을 받아 음악이 영글은 데다 아름다운 목소리가 남성의 신체적 특징(넓은 가슴, 단단한 성대등)에 힘입어 여자들이 흉내내기 힘든 예술의 경지에 이른 그들의 발성법은 그 이후 오페라 혹은 오라토리오에서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였다.

카스트라토가 비인간적인 방법에 만들어 진다는것 때문에 그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19세기에는 거의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유럽의 일부 성당 합창단과 궁중에서는 옛날 가성 발성을 남자 어린이에거 가르치고 그들로 하여금 교회 음악에 필요한 높은 성부를 담당하게 되었다.

1922년 마지막 카스트라토였던 알레산드로 모레스키(Alessandro Moreschi)가 죽자 성인 남자 가수가 여성과 비슷한 소리를 내는 그 어떠한 발성법도 그와 함께 사라진 것으로 여겨 졌으나 1940년대에 알프레드 델러(Alfred Deller)와 80년대의 아리스 크리스토 펠리스(Aris christofellis)등에 의해 가성 발성은 다시 그 아름다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독일 등의 유럽 각국에서 일어난 바로크 오페라의 부흥은 이들 새로운 기성 가수들인 카운터 테너들에 의해 그 깊이를 더해갔다.

내용출처 : [인터넷] http://my.netian.com/~bjaehoon/second.htm, 재훈이의 classic park, 카운트테너와 카스트라토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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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7-23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운터테너를 좋아하시나보군요. 저도요. 누굴 제일 좋아하세요?

stella.K 2004-07-23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세훈, 글구 임주혁(?)이던가? 그 정도 밖에 몰라요. 근데 제가 글을 쓰는데 필요할 것 같아 올려 본 거예요.^^
음악 하나 들었으면 좋겠는데, 누가 링크 좀 안 걸어주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