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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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부리, 땜통, 두더지... 모두 재밌고, 한번쯤 불러 보고 싶은 별명이기도 하다.  소설가들은 소설을 쓸 때 등장인물의 이름을 정하는 것이 고민이라고 하는데, 한번쯤 사람 이름대신 이런 별명으로 써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대소설가 황석영은 이 소설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처음부터 이런 별명들이 등장하니 어느 한편 이름으로 기억되지 못하는 그들의 세상이 서글프기도 하지만, 소설 전반적인 느낌은 친근감 있어 좋았다.  

이 작품은 내가 그의 <바리데기>와 <강남몽>에 이어 세번째로 읽은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 세 작품에서 내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었다. 작가 김훈은 이미 자신의 소설은 마초가 아니라고 못 밖았지만(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그가 하는 말이 맞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마초는 '남성적'인 이미지를 표현할 때 쓰는 것을 볼 때 황석영의 작품이야말로 마초는 아닐까 싶다. 그렇게 볼 때 이 작품은 유독 그 이미지가 강하다.  특히 아수라 반장이 딱부리의 엄마를 차지할 때를 보라. 딱히 이렇다 할 과정 설명을 생략한 채 모든 것을 제압시킨다. 하다못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딱부리 조차도 조금의 거부감은 있었지만 그것에 대해 명확한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꽃섬' 이름만 들어서는 정말 섬 전체가 꽃밭일 것만 같은 그곳은 이성과 문화적인 것이 지배하는 하는 곳이 아니다. 그저 인간의 근저에 깔린 본성이 더 강하게 존재하는 곳이다.  그래서 땜통은 예언처럼 딱부리에게 말하지 않는가? "너네 엄마랑, 우리 아버지랑 붙어 먹을 거라"고.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그 말은 적중했다. 거기엔 어떤 설명이 필요없이 그냥 암컷과 수컷의 자연스러운 교미의 현장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그곳 아이들도 실제로  자신의 엄마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흔하게 있어왔던 것이기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러니 딱부리 역시 더 이상 뭐라고 할 것이 못되는 것이다. 그렇게 꽃섬은 원초적인 곳이라 할 수 있고, 그곳은 딱부리가 이제까지 있어왔던 곳과는 또 다른 곳이다.  그곳엔 그곳만의 법칙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작가는 어떠한 비평도 허락하지 않는다. 

작가 김훈이 자신의 문학이 마초가 아닌 것을 가부장의 예를 들어 설명한 적이 있다. 가부장이 오늘 날에 와서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보여지고 있는데, 가부장은 가정을 책임진다는 남자에게 부여된 전통적인 관념이고 문화적인 것이라고 볼 때, 이 작품에서는 가부장적 이미지는 없다. 아수라 반장을 보라. 그는 마초적 힘만 있을 뿐 아무리 내연으로 맺어졌다고는하나 한 가정 책임지려는 의식은 결여된 채 자기 좋을대로만 하지 않는가?  

황석영의 작품의 특징은, 그의 작품의 어떤 것을 펼쳐 읽어도 한편의 장대한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 작품 역시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참 묘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반에 인간적인 끈적끈적한 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본 <바리데기>나 <강남몽>보다 인간적이고 따뜻하다. 그래서 그럴까? 훨씬 읽기도 편했다. 

꽃섬은 어찌보면 개발되기 이전의 난지도 같은 곳이다. 하루에도 몇톤씩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를 분류 작업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섬을 이룬 곳이다. 어찌보면 작가는 버림 받은 그곳에도 인간성은 존재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원래 물질주의가 팽배한 곳에선 인간의 소외를 말하고, 쓰레기 같이 버림 받은 곳에선 인간적인 것을 역설적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딱부리 어떻게 그런 곳에 가서 살 수 있냐고 했을 때, 그의 엄마는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말했는가 보다.  하지만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란 엄밀히 말하면 그곳 역시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아귀다툼이 있는 말도 되고, 인간적 낭만이 있는 곳이란 말도 될 것이다. 그런 것처럼 딱부리의 시선으로도 보면 꽃섬은 그리 나쁜 곳마는 아니었다. '바리데기'는 처절하고, '강남몽'은 졸부에 대한 가차없는 시선이 존재하지만, 낯설지 않은 세상 꽃섬은 나름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약간은 동화같은 곳이기도 하다.  아마도 작가는 바로 이런 곳에서 인간의 삶의 풍경의 원형을 찾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쓰레기장이라는 장소의 특수성은 있지만, 이 작품은 또 어찌보면 시골의 어느 마을 보여주는 것도 같고, 멀지 않은 과거의 풍경을 보듯 낮설지가 않다. 우리의 7,80년대 풍경은 이러하지 않았는가?  딱부리를 비롯한 등장인물도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어 보인다. 어디서 본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황석영 작가는 '낯익은 세상'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황석영은 왜 이 새롭지 않은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으면서 때론 능청스럽게 들려주려 했던 걸까?  

가끔 어린 손자가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졸라 옛날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하면 매번 비슷비슷한 내용인데도 재밌게 듣는다. 그것은 어린 아이의 듣는 능력이 남다르기 때문일수도 있다. 똑같은 이야기더라도 지난번엔 이게 좀 더 흥미롭게 들려왔다면, 오늘은 저게 새롭게 들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 우리가 찾으려 했던 건 이야기의 원형은 아니었을까? 그것을 확대하고, 발전시키고, 새롭게 변형시켜왔던 것이 화자의(소설가의) 임무일 것이다. 또한 그 속에서 말하려 했던 건 인간성이었을 것이다. 황석영 작가는 인간의 이념과(바리데기) 향락주의와 물질주의(강남몽)의 도전 속에서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었을까를 찾는 모험을 주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또 이 작품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세 작품을 놓고 보니 우리나라의 지형도를 묘하게 아우르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오늘 날의 대부분의 작가가 인간 자아의 문제, 욕망의 문제를 다루고 있을 때 황석영은 이념의 문제, 사회 계층간의 문제를 다룬다. 이것을 말하는 작가가 이제 몇이나 되겠는가 ?  

우리는 이제 좋으나 싫으나 2018년 동계올림픽을 치르게 되었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에 명암이 있듯 모든 사람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반기지마는 않는다. 물론 이익이 되는 측면도 있겠지만, 걱정과 우려를 표명하는 단체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그것은 세계화의 한 이면이라고 볼 때 이것은 있는 사람, 가진 자의 잔치일뿐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배려하지는 않는다는 건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그랬을 때 동계올림픽이란 이름이 갖는 후광 때문에 그들은 더 그늘지고 소외될 것이다. 한번의 행사를 치르고 버려지고 잔해들은 또 얼마인가?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라도 이런 세계화에 기꺼이 몸을 던지는 건 나름의 이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업주의가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우리가 기억해야할  '낯익은 세상'은  여기 있다고 작가는 말하는 것 같다. 2018년에도 기억되는 소설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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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7-15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제가 읽었던 책에 대한 다른 분의 감상을 본다는 것은 참 좋은거 같아요.^^
스텔라님은 소설 속에 흐르고 있는 인간적인 면을 보셨군요.
저도 동계올림픽 확정 소식을 듣게 되면서 기쁜 마음도 있었지만 항상 큰 국제적
행사가 있는 지역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주민들이 더 손해를 보게 될까봐
걱정되기도 해요,

stella.K 2011-07-16 10:10   좋아요 0 | URL
저는 늘 무플이 될지도 모르는 저의 페이퍼에 댓글을 달아주시는
시루스님께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요.ㅎ~
저는 기쁜 줄은 모르겠더라구요.
그냥 바라던게되서 다행이다 정도랄까?
아무래도 동계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것이 문제인 것 같아요.
그나저나 우린 그런 국제적인 행사에 명만을 생각하지
암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한번의 행사가 약발이 언제까지 갈는지 그것도 그렇고.
내실을 다지는 대한민국이었으면 좋겠는데
너무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만 집중되있는 것 같아 걱정되요.ㅜ

stella.K 2011-07-16 10:12   좋아요 0 | URL
참, 이거 리뷰대회 한다고 해서
읽은 건데 전 그냥 마음을 비우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황석영은 너무 매끄러워서...
그래도 전에 강남몽으로 겨우 턱걸이는 했었는데 말이죠.ㅋ

cyrus 2011-07-18 20:54   좋아요 0 | URL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래요 ^^

stella.K 2011-07-19 10:34   좋아요 0 | URL
ㅎㅎ 읎어요.
기대도 안해요. 아무래도 리뷰 방향을 잘 못 잡은 것 같다능.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