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 Old Partn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이충렬
주연 : 최원균, 이삼순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다큐 영화가 감동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다. 노인과 소가 나온다니 얼마나 지루할까?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이 영화를 본 것도 사실이다. 개봉 당시 아는 누가 이 영화는 필히 돈내고 개봉관에서 보라고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고백컨대, 난 그의 말에 동의는 하지만 솔직히 개봉관도 가지 않았으며, 따라서 돈 내고 보지도 않았다. 지금 보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때 일부러라도 돈 내고  봤더라면 이런 묵직하고도 유장한 다큐 영화 한 편 더 만드는데 기여하지 않았을까?   

이 영화는 한마디로 놀라다 젖어드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놀라운 것은, 어쩌면 노인과 소가 이토록이나 늙었을까 하는 것이다. 너무 늙어 쓰러지면 다시 못 일어날 것만 같다.  노인의 깊이 패인 주름에, 소의 느리디 느린 걸음에 피곤이 드글드글하게 매달려 있다. 이제는 둘 다 쉴만도 한데 쉬질 않는다. 노인은 다른 젊고 튼튼한 소가 있는데도 이 늙은 소에만 의지하여 일을 하고, 소는 주인이 쉬지 않으니 자신도 쉴수가 없다.   

소의 나이 40년. 인간의 나이로 쳤을 때 40이지, 소 본래의 나이로 치면 80도 더 넘었을 법도 하다. 수의사가 처음엔 좀 더 살거라고 했다. 하지만 고작해야 1년. 소에겐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겠지만, 노인에게 1년은 있으나 마나한 시간은 아니었을까? 말하자면 이 영화는 그렇게 자기 생명이 1년 밖에 남지않은 소와 노인의 마지막을 찍은 영화다.  

노인의 9남매가 올망졸망 어렸을 때 와서 힘들게 농사 지으며 9남매를 키워내기까지 적어도 3분의 1은 그 소의 공이었으리라.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은 노인의 소를 칭찬한다. 아들 못지 않은 효도를 한다고. 하지만 그 소는 알 것이다. 자신이 이만큼 살  수 있기까지 노인이 얼마나 고집스럽게 옛날 방식의 농법을 고집해 왔는지를. 영화 중간중간 할머니의 영감을 향한, 소를 향한 끊임없는 불만이 마치 내래이션처럼 흐른다. 남들 다 치는 농약 한 번 치지 않고 뭐 그렇게 어렵게 농사 짓느냐고 성화다.  하지만 그 소가 그렇게 오래 노인의 곁을 지키며 일할 수 있는 것이 노인의 공임을 할머니는 알까, 모를까? 때론 그런 할머니가 보는 나도 야박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다.

하긴, 이제 자식들도 다 장성해 부모를 떠나간 마당에 허리 한 번 제대로 피지 못하고 늙어버렸건만, 뭐 일할 것이 남아서 그 휘청거리는 몸으로 농사일을 한단 말인가? 이제 좀 자식들의 공양을 받으며 편히 살아도 되지 않는가? 깨어질 듯한 두통을 머리에 한 짐 얹고도, 그래서 이젠 좀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충고를 듣고도  노인은 차마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한다. 한마디로 소처럼 일하는 노인, 노인처럼 일하는 소. 혼연일체가 된 느낌도 든다. 

        

 하지만 역시 소는 서글픈 동물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뼈 빠지게 일해도 누가 알아주겠는가? 지금이나, 영화를 찍었던 2006년이나 또는 그 보다 더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도 소들이 평안을 누려 본 적은 없다. 당시는 FTA 때문에 우리 소 값의 하락을 우려했고, 광우병 때문에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토록이나 열심히 일하고도 인정 받지 못한 소에게 새삼 연민이 느껴졌다. 그것은 앞서 편하게 농약 써 가며 농사 짓자는 할머니의 자조 섞인 말과 뭔가 상통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동시에 노인과 소와 배치된 느낌이기도 하다.  

이제 늙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팔자는 말에 우시장에도 데리고 나오지만 노인은 끝내 소를 팔지 못한다. 그만한 가격이면 후하게 쳐 드리는 거라며 팔기를 종용하는 사람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몇 번이나  단호하게 "안 팔아!"를 팩팩 쏘아 붙여던 것은 돈이 적어서만도 아니었을 것이다.  노인의 중년부터 노년을 함께 했을 소를 어떻게 쓸모가 없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내칠 수 있는가 하는 인정이며 동시에, 늙은 부모 버리는 자식들에 대한 시위를 시사하는 대목인지도 모른다.    

 

 또 어찌보면 노인의 이런 고집스러운 삶의 태도가 감독으로 하여금 영화를 찍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노동은 인간이고, 인간은 노동이라는 이 평범한 진리. 인간이 자연과 동물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사는 것임을 감독은 간파했기에 그 느리디 느린 시간을 견디며 한 편의 다큐를 찍어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소가 죽던 그 해 12월의 추운 날의 한 장면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소가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흘렸던 한방울의 긴 눈물과 그 소를 땅에 묻고 울지도 못하고 허탈해 하는 노인 부부의 모습은, 어느 명배우의 명연기 보다 더 진한 감동을 보여줬다. 또한 툭하고 건드리면 쓰러질 것만 같은 노인과 소에게서 쓰러지지 않는 강하고도 질긴 생명력을 카메라에 담아낸 감독에게도 마음 속으로나마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뭐든지 빨리 빨리의 세풍 속에서도 느리면서도 유장한 한 편의 다큐를 완성하기까지 감독이 얼마나 많이 참고 인내하며 찍었을까 고스란히 느껴진다. 왜 스튜디오 이름이 '느림보'일지 알 것도 같다. 지금은 그로부터 5년 여의 시간이 지났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떻게 사실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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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1 23: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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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2 11: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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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2 10: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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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2 11: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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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2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22 13: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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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1-06-22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척이나 감동적인 영화였었죠.

이 영화를 보면서, 어릴 때 직접 소를 키우던 생각도 많이 나고, 소가 일할 때 풀을 뜯지 못하도록 입막음하는 장구도 몇십 년 만에 새로 보니 정말 옛 추억이 많이 떠오르더군요.

사람과 소가 저토록 한 식구처럼 서로 의지하고 살던 세월이 아마도 족히 수천년 세월은 지속되어 왔을 텐데, 이젠 더이상 '노인처럼 일하는 소'와 '소처럼 일하는 노인'은 물론이고, [노인과 소]처럼 서로 아끼고 돌봐주는 관계도 더 이상 찾기 어려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stella.K 2011-06-22 19:22   좋아요 0 | URL
정말 노인은 이런 다큐멘터리 영화에 나올 법해요.
노인처럼 신념있게 사는 사람이 그리운 세대여요.
그건 많이 배웠다고 되는 일은 아니죠.
존경스럽기까지 하더라구요.^^

2011-06-22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22 19: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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