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의 대결, 아문센과 스콧
라이너 K 랑너 지음/ 배진아 옮김/ 생각의나무
인류의 위대한 역사상 발견과 정복이 흔히 호적수 간의 경쟁으로 가속·성취되듯, 지구 남쪽 땅끝 역시 ‘노르웨이 선박회사 사장 아들’ 알 아문센(Amundsen·1872 ~1928)과 ‘대영제국 만년 해군 중위’ 로버트 팰컨 스콧(Scott·1868~1912)의 치열한 경보(競步) 끝에 마침내 인간의 발 아래 놓였다.
독일의 작가·기자·문학비평가인 저자 랑너(Langner·62)는 탐험 과정과 출신·성장과정·성격·리더십이 판이한 두 원정대장을 비교해 남극점이 최초 정복되기까지의 과정을 분석한다.
남극점을 향한 각국의 정복욕은 개인보다 국가(민족)의 영예를 앞세웠던 20세기 초 ‘민족주의 탐험 시대’의 정점에 있었다.
1909년 9월 6일 북극점이 로버트 피어리(Peary· 미국·1856~1920)에 의해 정복되자, 그 주변에 살면서 어려서부터 ‘망할 놈의 북극’을 동경했던 아문센은 목표를 수정한다.
“그 어떤 인간도 나처럼 소망과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목표를 성취한 이는 없을 것이다.” 1911년 12월 14일, 해상 1만5938마일을 건너 개썰매로 베이스 캠프를 출발한 지 55일 만에 남극점을 정복한 아문센이 남극점 정복 후 토로한 솔직한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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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피웃을 입은 아문센. 그는"다음 탐험 최종 목표는 북극지방 바다가 아니라, 남극대륙 얼음 황무지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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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은 아문센에 앞서 뉴질랜드에 도착해 남극 최초 정복을 위한 선수를 쳤다. 아문센이 극지방 탐험보고서를 숙독하고 항해사·선장 자격증을 따놓고 에스키모 생활방식을 체험하며 철저히 대비했던 반면, 눈(雪) 구경조차 한 적 없는 스콧은 허술한 방한복과 조랑말을 가져왔을 정도로 상대적으로 전략이 부실했다.
아문센은 숙련된 소수정예로 대원을 꾸리고 저장 진지(陣地)도 3곳을 둔 반면, 스콧은 통솔 곤란한 72명 대부대를 이끌며 진지도 1곳만 차렸다.
“의심할 여지 없이 아문센의 계획은 위협적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행동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며, 조국의 명예를 위해 최선을 다해 하던 일을 수행해야 한다.”
스콧의 남극탐험 일기장에는 평생 조우하지 못했던 아문센 원정대의 당시 진행상황을 보고받으며 표출한 위기의식과 함께 그의 신사적인 체취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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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한에 얼어붙은 옷을 입은 스콧. 그는 "남극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이는 오로지 영국인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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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도전을 순위나 값어치로 따지는 일은 덧없다. 하지만 남극점은 치밀하고 야심 많은 아문센의 발길을 먼저 허락했다.
스콧은 남극점에 유니언 잭(영국 국기)을 꽂으며, 그보다 35일 앞서 꽂아진 채 휘날리고 있는 노르웨이 국기에 실망했다.
아문센이 적도 휴양지에서 남극 탐험 회고록을 쓰고 있을 무렵인 1912년 11월 12일, 스콧은 귀로에서 동행자 4명과 함께 동사했고, 죽음 앞에서조차 당당했던 그에게 영국인은 깊은 경의를 표했다.
부하의 총기자살 사건을 야기할 만큼 위압적이었으나 전략을 짤 때 항상 대원과 함께했던 아문센, 군대식 위계·규정이 체화됐지만 부하를 세심하게 배려할 줄 알았던 스콧, 영원한 명예를 꿈꿨던 두 영웅의 리더십을 음미하는 묘미가 책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