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리틀 레드북 - 100명의 솔직한 초경 이야기 '여자는 누구나 그날을 기억한다'
레이첼 카우더 네일버프 엮음, 박수연 옮김 / 부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프롤로그 

이야기 발상부터가 깜찍하다.  

이 책의 엮은이는 13살 때 처음 초경을 경험하게 되는데, 하필 외할아버지 댁에서 수상스키를 타다 그렇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또 그때 따라 탐폰도 생리대로 없어 휴지로 대충 처리를 했는데, 이를 눈치 챈 외할아버지는 생리대를 산다는 것이, 요실금 기저귀를 사다 준다. 그도 그럴 것이 외할아버지가 사는 동네는 젊은 여자는 없고 할머니들만 득실대는 곳이라 생리대는 팔지 않았던 것. 얼마나 창피하고 당황스러웠을까? 그런데, 엄마와 이모들은 그런 그녀를 위로하기 보다 그 일을 두고두고 우스개 이야기거리로 삼았다고 한다. 옛적 당신들의 경험을 추억 삼아.  지은이는 바로 이 점에 착안을 해 초경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했고, 그것은 의외로 많은 이야기거리를 낳았다. 그리고 이렇게 빨간색 책으로 탄생한 것이다. 정중앙에 팬티 그림이 앙징맞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있으려니, 뭔가 나의 이야기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지는 이 글 마지막에 이르면 밝혀지리라. 자, 그럼 내 이야기를 해 볼까? 

나도 하게 될 거야

하도 오래된 일이라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아주 어렸을 적, 그러니까 10살이 되기 이전이었던 것 같다. 이모들이 집에 놀러왔는데, 갑자기 언니와 오빠를 놀려주겠다고 숨자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집엔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방 하나가 있었는데, 그 방엔 잡동사니를 넣어 놓는 다락이 있었다. 거긴 출입구가 워낙 작고 높아 잘 가지 않는 곳인데, 그곳에 숨게 되었다. 그때  언니와 오빠가 우리를 찾아낼 때까지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었는데, 어쩌다가 이모들과 엄마가 생리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순간 나만 소외되는 것도 같고, 나를 너무 어리게만 보는 것이 싫어 불쑥, "나도 하게 될 거야."라고 말 해 버렸다. 그러자 막내 이모는 의혹의 눈빛으로 "뭘?" 하는데, 갑자기 말문이 막혀 버렸다. 방금 신나게 떠들어 놓고 뭐라니? 그러자 이모는 "뭘 하는데?"하며 재차 물었다. 나는 속으로, '그 얘기 하는 거 아니었나? 그런데 왜 시치미를 떼지? 난 다 알고 있는데.' 그런데 문제는 그걸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는 거다.  척하면, 착하고 알아 들어야 하는데 우리 이모는 그런 센스가 부족했다. 아, 그때 내가 '월경'이나 '멘스'란 단어를 알았어도 꿀 먹은 벙어리는 면했던 건데. 그러니까 엄마의 자매들은 말중에 그 말을 사용하지 않았거나, 사용했더라도 난 아직 그런 단어를 구사하기엔 언어능력이 달렸던 거다. 하지만 무엇보다 당신들이 나를 너무 어리게 보는게 여간 섭섭한 게 아니었다.  

'이래뵈도 저 알건 다 안다니깐요. 흥!'    

뻘(빨)갱이가 쳐들어 왔어!

사실 '월경'이란 말 보다 '멘스'란 말을 먼저 들은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건 당시 우리집 입주 가사도우미, 그러니까 식모 언니에게서 처음 들었는데, 엄마가 다른 것은 다 맡겨도, 생리 때면 써왔던 천 기저귀를 그 언니에게 맡기지 않은 것이다. 그것마는 당신 손으로 직접 빨았는데,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던 말이 '멘스'였고, 그것을 그 언니가 나에게 옮긴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월경을 멘스라고 한다니? 훨씬 멋있고, 매력적인 단어라고 생각했다. 하긴, 그 나이 때 어떤 영어 단어, 외래어가 멋있지 않은겠는가? 더구나 당시는 외래어 사용 금지, 국어 순화 운동이 그 어느 때 보다 치열했던 때다. 왜 하지 말라면 더 한다고 하지 않는가? 아무튼 '멘스'는 너무 매력적인 단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월경 때면 '멘스' 말 보다는 이걸두고 하는 은어가 있는데, "뻘갱이 가 쳐들어 왔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알이 들을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 듣는다. 빨갱이도 아니다. 뻘갱이다. 엄마는 항상 그랬다. 반공시절, 북한 괴뢰군을 지칭할 때도 뻘갱이였고, 월경을 지칭할 때도 뻘갱이다. 뻘갱이는 사투리였음직도 한데, 빨갱이 보다 더 강렬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 후 나도 본격적으로 월경이 시작이 되고, 엄마가 몰라주면 흉내낼 겸 가끔 그것을 따라하곤 했다.  

생리대의 역사                          

내가 어렸을 때의 생리대는 지금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언니가 생리를 시작했는데, 월경 때면 입는 월경 팬티에 위 아래 가로로 두 줄의 끈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생리대는 접착식이 아니라 부직포 같은 것이 한겹 더 씌워져 위 아래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말하자면 패드가 마치 사탕껍질 모양으로 한겹 더 쌓여있는 있는 모양이랄까? 그것을 그 끈이 고정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때 너무 어려 '이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했었다.  생리대를 알지 못했던 나는, 마치 깨끗한 휴지가 여러겹 쌓여서 예쁘게 부직포 로 포장이 되어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호기심에 그 껍질을 벗겨보고 싶었는데 도무지 어디에도 쉽게 벗겨낼 수가 없었다.  그게 나름 신비로웠다.  

그러다 접착식 생리대가 나왔고, 나는 그것부터 사용했던 것 같다. 이것이야 말로 가히 생리대의 혁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 얼마 뒤엔 '방취식 생리대'가 눈길을 끌었는데, 말하자면 생리할 때 냄새를 잡아주는 것이라고 하는데 다른 냄새로 전환시키기 위해 짙은 향수 냄새를 풍겼다. 그리고 그건 오히려 남자들의 표적이 된다고 해서 잠시 나왔다 사라졌지만, 지금은 좀더 친환경적인 소재의 방취식 생리대가 다시 나오고 있다.  

그래도 뭐니뭐니 해도 나는 그 옛날 우리 엄마가 썼던 천 기저귀가 시쳇말로,  짱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건 못 쓸 것 같은데, 생리대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새는 생리를 완벽하게 차단시켜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기저귀만큼 좋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난 한번도 엄마가 생리 때 잠을 자다가 옆으로나, 뒤로 샜다는 말을 들어 본적이 없으니까. 지금의 오버나이트가 나오기 전까지 나의 초기 생리 땐 넘쳐나는 생리를 주체할 수가 없어 아예 첫날밤은 요를 깔지 못하고 맨바닥에서 이불만 덥고 잔 적도 있다. 그런 다음 날이면 몸이 베겨서 잠을 잤는지, 뭐에 두들겨 맞았는지 모를 정도로 몸이 안 좋았다. 그렇지 않더라도 판매되는 생리대는 알고보면 화학 처리가 불가피 해 피부에 자극을 준다고 한때 천 생리대를 사용하자는 운동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래도 생리대의 눈부신 발전은 90년대 들면서 본격화 됐는데, 그것의 필두가 '위스퍼'였던 것으로 안다. 그때 그것을 처음 사용해 보고, 역시 생리대는 할 수만 있으면 좋은 것을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깨달았다. 그것은 다른 기존의 제품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비쌌는데, 그렇게 비싸더라도 꼭 좋은 것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갖도록 해준 게 바로 그 생리대였던 것이다. 

나의 초경 

얘기를 하다보니 생리 중의 이야기를 먼저하게 됐다. 나의 초경은, 초등학교 6학년 여름에 시작이 되었다.  이미 학교에서 또는 나의 엄마나 언니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던 거라, 나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라는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초경이 있기 얼마 전부터 어느 때가 되면 갑자기 몸에서 뭔가가 한 방울 흘러 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럴 때가 되면 곧 초경이 얼마 안 남은 거라고 당황하지 말라고, 당시의 담임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 책의 엮은이를 비롯해 여기에 나온 대부분의 여자들이 황당하게 초경을 맞는 걸 볼 수가 있는데, 나 역시도 그런 선생님의 가르침과 몸의 신호에도 불구하고 지금 생각해도 좀 멍청하게 초경을 맞이했다 싶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또래에 비해 비교적 일찍 초경이 시작된 셈인데, 다들 그 무렵 겨울이나 중학교 들어와서 시작되는 것을, 나는 여름도 다 보내기 전에 시작됐으니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슨 오긴지 아니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발견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팬티만 갈아 입었을 뿐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엄마와 언니가 걱정을 하고 나올 정도였다. 그래도 난 "아냐. 그럴리 없어. 내가 벌써? 말도 안돼." 팬티는 금방 피로 억룩져 다리를 타고 흘러 나올 지경인데도 난 이렇게 쉬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언니가 킥킥대고 웃으며, "빨리 대책세워."하며, 너도 별 수 없는 여자라는 걸 인정하라는 눈치였다. 나도 더 이상 버틸 수마는 없었던지라 언니의 말이 떨어지자 바로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그때의 황당함과 허망함이란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나의 어린 시절은 영영 가버린 건가? 그리고 이대로 여자가 되어버리는 건가? 나의 유년 시절이 새삼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망있는 가문에서는 생리가 시작되면 포도주도 따고, 축하를 해 준다는데 우리 엄마는 그런 것도 안 해 주고, 오직 언니의 야릇하고도 묘한 웃음만 째려 보는 것 밖에 없었다. 언니라고 하나 있는 것이 엄마 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하긴, 엄마가 그러는데 언니라고 낫겠는가? 그런 걸 바라는 내가 잘못이지.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건, 초경을 축하해 준다는 것에 대해 굳이 인위적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것을 해 줌으로 밝은 느낌으로 월경을 맞이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초경 이후에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인식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사실 여자들이 월경에 갖는 느낌이나 인식이 그렇게 밝지마는 않다는 느낌이다.  

스티븐 킹, 당신 실수한 거야! 

물론, 이 잘난 작가를 헐뜯을 생각은 없다. 그런데 내가 초경을 할 그 즈음, 이 영화가 상륙했다. 아직 어린 나이라 영화관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고, 이런 공포 영화는 접할 기회가 없어 영화는 못 봤지만, 당시 영화와 함께 책이 번역 출간 되었다. 그때 난 학교에 읽을만한 책을 들고 다녔는데, 마침 스티븐 킹 동명소설을 들고 다녔다. 그땐 스티븐 킹이 얼마나 유명간 소설간지 잘 몰랐다. 단지 이 책을 읽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남자 아이들은 그닥 그렇지 않은데, 여자 아이들이 얼굴을 찡그리며 치우라고 눈치를 주는 것이었다. 왜 그런가 했더니,  무서운 소설이라 그랬던 것이 아니라, 그 소설 속 주인공 캐리가 초경을 경험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해서 눈치를 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스티븐 킹이 다른 소설을 잘 썼을지 몰라도, 이것 하나만큼은 신사답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여자의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을 이렇게 기괴한 이미지에 써 먹을 생각을 했을까? 물론 해석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조소 당하는 느낌이어서 기분이 좋지는 않다. 그것을 영화에 그대로 써 먹은 제작진도 그렇고. 

이렇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월경을 자랑스럽지 못한 것으로 인식해 온 것도 사실이다. 아니, 책을 치우랬다고 해서, 생리를 할 운명에 봉착한 계집 아이들이 생리를 안하는 것이 되는 건가? 지금은 그런 의식이 많이 흐려진 것 같긴 하지만, 우리 한창 때는 남자가 카운터를 지키는 슈퍼나 약방에서 생리대를 살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반드시 여자가 주인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생리대를 사곤 했다. 하긴, 작년이던가? 편의점에서 생리대를 사는데, 새파란 젊은 남자가 카운터에 서 있다. 내가 생리대를 내밀었더니 묘한 분위기와 손놀림으로 그것을 계산하고 봉지에 담는 것이다. 속으로, '이런 촌놈!' 했다.  

또, 내가 20대 젊은 날, 교회 아는 또래 남자애들이랑 섞여서 이야기를 하다가 누가 휴지를 찾기에 내가 얼른 휴지를 내준다는 게 하필 가방에서 잡힌 물건이 생리대였다. 나는 번개같은 손놀림으로 즉시 생리대를 집어 넣고 재빨리 휴지를 꺼냈는데, 그 0.0001초를 참아내지 못하고, 여자 아이들은 민망해 고개를 전부 아래로 숙이고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다. 실수한 사람 무안하게 그렇게까지 할 건 또 뭐가 있는가? 휴지와 생리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다 위생을 위한 필수품 아니던가? 마치 생리도 안하고 사는 고고한 한 마리 학인 양 하는 게 더 우습지 않은가?  

기억하는지 모르겠는데, 지금으로부터 한 10년 전이었나? 여성의 생리대 값을 나라에서 지원해 주자는 법안을 놓고 말이 많았다.  앞서도 말했지만 정말 여자는 좋은 걸 쓸 권리와 의무가 있다. '위스퍼'를 필두로 생리대의 고급화가 이루어지니 그 비싼 생리대가 어느새 평준화가 되어버렸다. 이런 건 정말 나라에서 지원을 해서 좀 싼 가격에 쓸 수 있도록 해 줘야 하는데 그게 통과를 하지 못한 것이다. 그 이유가 어느 남자 국회의원이 여자의 생리대 값을 지원해 줄 것 같으면, 똑같이 남자의 면도에 드는 비용을 나라에서 지원을 해 줘야한다나 뭐라나. 순간 누군지 모으지만 쪼잔하기 한량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견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니가 여자의 생리를 알아?' 콱 주어박아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좋다. 그런 거 법안 통과 안 시켜도 좋으니 민생이나 책임져라!  

하지만 한 나라의 여성의 생리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국민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들은 여자들이 죄가 많아 한 달에 한번씩 생리를 하며 속죄를 하는 거라는 생각을 신앙처럼 믿고 살아왔다. 그렇다면 남자는 뭐 죄가 많아서 밖에 나가 뼈 빠지게 일하는 것인가? 연출가 오태석 씨가 여성의 생리를 두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차오르고 나면 기우는 달처럼 자신의 몸에서 달의 주기를 체험하는 위대한 분들, 어떻게 이런 분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있나."(8p) 정말 여성의 생리를 이렇게까지 존중해 주는 남자가 있다면 어찌 그를 흠모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건 가히 스티븐 킹의 소설 <캐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신비스런 수사다. 

폐경 즈음에 월경을 되돌아 보다                           

물론 난 아직 폐경은 아니다. 아직까지는 오태석 씨가 말한 달의 주기를 꼬박꼬박 체험하는 위대한 사람 중 한 사람이다. 하지만 앞으로 이 달의 주기를 얼마나 더 체험할 수 있을까? 손꼽아 볼 나이가 되었다. 월경을 일찍 시작한 사람은 내 나이 정도에 폐경을 맞이한 사람도 없지는 않으리라. 이쯤되니 이맘도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폐경이 됐을 때 나는 엄마를 꽤 부러워했다. 여름 한철 월경을 시작해 보라. 이때 만큼은 정말 어느 북극에라도 다녀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건 정말 아는 사람만 안다. 그런 걱정을 안 해도 되니 엄마는 얼마나 좋을까? 부러웠다.   

이놈의 월경은 해도 문제고, 안 해도 문제며, 너무 많이해도 문제고, 적게 해도 문제다. 내가 초경을 했을 때 나는 공공연하게 같은 또래 여자 아이들에게 "하니?", "시작됐어?"라고 묻고 다니곤 했다. 그런 것처럼 이제 난 또 가끔 묻는다. "아직도 하니(해요)?"라고.  초경을 다소 초조하게 기다렸던 내가, 지금은  그것이 서서히 그림자를 보이며 사라져 가려고 하고 있다. 그 기분은 어떤 것일까?  정말 홀가분하고, 더 이상 아랫도리에 촉수를 예민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마냥 좋아할 수 있을까? 그런데 왠지 초경을 시작했을 때만큼이나 서글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더 이상 젊지 않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고. 그래서 가끔 엄마를 폐경을 맞이한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볼 때가 있다. 얼마나 당당한가? 얼마나 자유로운가? 나도 그렇게 당당하게 폐경을 맞이해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본다. 

이 책에 대해서    

이 책은 막상 읽으면 비슷한 내용이 계속 반복되는 것 같아 약간은 지루할수도 있다. 하지만 또 읽다보면 의외로 웃음짓게 만드는 부분도 많다. 그건 '아, 저건 내 얘기야.', '어머, 나만 그러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잖아?' 또는 '그래, 그럴수도 있어'라고 고개를 끄덕이게도 된다. 그럼에도 이 책에 별점을 매기라면 나는 다섯 개를 줘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완벽한 작품성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사람의 체험이란 거, 자신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건 다 귀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동질감을 느끼며 말의 축제를 벌일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나도 이 책이 아니었으면 나의 그런 이야기를 할 생각을 했을까?  

자,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할 차례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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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5-29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男이라서 잘 모르겠지만,, 초경을 하게 되면 어른이 된다는 막연한 불안감의
정서를 가지지 않나요? 그걸 스티븐 킹은 초자연적인 소설의 모티브로 따온거 같아요.
캐리가 주위 동급생들로부터의 왕타에다가 갑작스런 초경을 경험하게 되면서
사춘기 시절 특유의 불안감이 증폭되어서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이 생길 수 있었잖아요.

하지만, 스텔라님 글을 읽고나니 스티븐 킹의 설정은 기발한거 같은데,,
우리나라 작가가 그렇게 썼다면 독자들의 이해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가 쉽지 않았을거
같아요, 게다가 미국처럼 월경에 대해서 쉽게 꺼낼 수 있는 사회도 아니니까요. 오히려 월경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질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보네요.

이 책,, 남자들도 읽어보면 좋을거 같아요,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되어서
딸이 생기면 초경을 겪는 딸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게 중요하다고 봐요.

stella.K 2011-05-29 14:12   좋아요 0 | URL
그럴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캐리가 우리나라에 상륙한 게 78년도 거든요.
그땐 시루스님만큼이나 영화를 깊이 볼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냥 공포스럽다는 것과, 몇몇 인상적인 장면 가지고 얘기하는 정도지.

당연하죠. 지금은 여성의 월경에 대해 자연스럽게 얘기하지만,
저때만해도 쉬쉬했거든요.

맞아요. 그런데 문제는 이 책이 시루스님 장가 갈 때까지도
계속 팔릴지 의문이어요. 혹시 절판되지 않을까요?
제가 볼 땐 단명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 책 사실은 서평단에서 받은 건데, 실제로 여자들만 신청했지
남자는 한 분이 관심을 보였을 뿐이었어요.
솔직히 여자 보단 남자가 더 읽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혹시 필요하시면 말씀 하세요. 보내 줄 수도 있어요.^^

cyrus 2011-05-30 11:36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이 은근히 권하시니(?) 읽어보고 싶은데요 ^^
게다가 친분이 있는 분의 블로그에서도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봤는데,,
재미있을거 같아요. 그 분도 이 책을 호의적으로 보시더군요.

stella.K 2011-05-30 11:49   좋아요 0 | URL
어떤 분은 이 책 킥킥대며 읽었다는데,
저는 좀 시크해서 그럴까? 그냥 나쁘지 않다는 정도였어요.
그러고 보면 사람들 저마다 느낌이 다르긴 해요.
시루스님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한데요?
급할 거 없으면 가지고 있다 천천히 보내드릴게요.
그래도 되죠? 제가 워낙에 나무늘보띠라...ㅋㅋ
암튼 시루스님, 찜!!

안인용 2011-05-31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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