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영희 교수
대학 동창 진숙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오후 연구실로 들른다는 약속을 취소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이유인즉슨, 아들 때문에 속이 상해서 몸져 누워 있다는 것이었다. 아들이 여름에 유학을 가는데 변호사 아버지가 소개하는 아름다운 법대 여학생을 마다하고 동아리 선배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다는 것이었다.

“2년 연상인 데다가 정말 볼품없게 생기고 집안도 안 좋고, 정말 하나도 살 만한 게 없는데 그 녀석이 환장을 했지.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지만 정말 이해 못해.” 진숙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지만 마구잡이로 갖다대는 객관적 논리가 적용되지 않고 그렇게 ‘환장’할 수 있어서 아름다운 게 바로 사랑이 아닌가. 이 세상에 단 한 가지, 약삭빠른 머리가 아무리 요리조리 계산해도 속수무책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게 마음이고, 사랑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부작가 카슨 매컬러스의 최대 걸작으로 알려진 ‘슬픈 카페의 노래’(1951)는 바로 이렇게 객관적으로 볼 때 ‘이상한’ 또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아버지가 경영하던 큰 사료가게를 물려받아 운영하는 미스 아밀리아는 육 척 장신에 사팔뜨기이고 남자보다 더 힘세고 건장한 여자다. 그녀는 인색하고 야비하며 돈을 벌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의 가게로 흘러 들어온 꼽추 라이먼을 사랑하게 되고, 그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아밀리아는 변한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는 라이먼을 위해 사료가게를 카페로 만들고, 그리고 이 카페는 노동에 지친 마을사람들에게 휴식과 위안의 장소가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아밀리아로부터 쫓겨난 그녀의 전 남편 마빈 메이시가 찾아온다. 메이시를 보자마자 꼽추 라이먼은 광적으로 메이시를 사랑하게 된다.

메이시는 한때 아밀리아를 사랑했고, 아밀리아는 라이먼을 사랑하고 라이먼은 메이시를 사랑하고…. 이렇게 ‘이상한’ 사랑의 연결고리에 대해 언급하면서 매컬러스는 유명한 사랑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우선 사랑이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이다. 그러나 여기서 공동 경험이라 함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속에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자라온 사랑을 일깨운다… 아주 이상하고 기이한 사람도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불지를 수 있다… 증조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20년 전 어느 날 오후 거리에서 문득 스쳤던 한 낯선 소녀를 가슴에 간직한 채 여전히 그녀만을 사랑할 수도 있다… 사랑받는 사람은 배신자일 수도 있고 머리에 기름이 잔뜩 끼거나 고약한 버릇을 갖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랑을 주는 사람도 분명히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은 그의 사랑이 점점 커져 가는 데에 추호도 영향을 주지 못한다. 어디로 보나 보잘것없는 사람도 늪지에 핀 독백합처럼 격렬하고 무모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선한 사람이 폭력적이면서도 천한 사랑을 자극할 수도 있고, 의미 없는 말만 지껄이는 미치광이도 누군가의 영혼 속에 부드럽고 순수한 목가를 깨울지 모른다. 그래서 어떤 사랑이든지 그 가치나 질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

소위 객관적인 잣대로 잴 때 ‘이상한’ 사랑도, 사랑을 하는 당사자가 아니면 그 누구도, 설사 부모라 할지라도 감히 그 사랑의 가치를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삶 자체가 도대체 이해할 수 없고 이상하기 짝이 없는데, 그렇다면 마음이 좇는 ‘이상한’ 사랑만이 가장 정상적인 사랑인지도 모른다.

(장영희·서강대 영문과 교수·조선일보 Books 서평위원)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갈대 2004-05-24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