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정윤수 |
주연 : 엄정화, 한채영(2007년) |
사실, 정윤수 감독의 영화를 알게 된 건 이 영화가 먼저다. 하지만 그동안은 왠지 이 영화를 볼 마음이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감독의 <아내가 결혼했다>를 봤고, 영화가 의외로 꽤 괜찮다는 생각을 했고, 내친김에 이 영화를 연이어 보게 됐다. 정 감독의 필모그라피도 보면 이 영화가 <아내가 결혼했다>보다 먼저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선듯 볼 용기를 내지 못했던 건 역시 '스와핑' 때문이었다. 그것을 이 영화에선 '크로스 스캔들'이라고 좀 더 순화된 용어를 쓰더만, 그렇게 쓰니 조금은 낫다는 느낌이 든다. 솔직히 스와핑은 네 사람 서로의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다. 그냥 우연히 사랑에 물들었으니까(물론 그렇다고 스와핑이 아니라고도 말 못하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사랑은 눈이 멀다. 이런 사랑엔 이성이 아니면 조절이 가능하지 않은데, 문제는 인간의 이성 조차 감당하기 어렵거나 일부러 이성의 통제를 받지 않으려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폐일언하고, 중요한 건 이 영화는 스와핑에 관한 영화마는 아니라는 것이다. 정 감독의 후기작 <아내가 결혼했다>도 그렇고, 이 영화에도 그렇고 감독은 인간의 결혼 관계에 대해서 일관되게 묻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때론 도발적이고, 때론 엉뚱하게. 단지, 이 두 영화가 다른 것이 있다면 <아내가 결혼했다>는 결혼에 대한 여성의 불합리함을 유쾌하게 대변했다고 한다면, 이 영화는 그 초라함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영화적 공간이나, 등장하는 네 사람 정민재(박용우), 한소여(한채영), 박영준(이동건), 서유나(엄정화)의 직업은 하나 같이 세련되고, 고상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은 다소 밋밋하고, 긴장감이 없다. 한마디로 이들의 결혼은 권태롭다. 인간은 삶이 권태로울 때 일탈을 꿈꾸게 되어있다.
영화에선 엄정화와 박용우가 부부고, 이동건과 한채영이 부분데, 원래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걸까? 역시 이들 네 사람은 성격상 서로 크로스해서 더 잘 어울려도 보인다. 즉 매사에 차갑고 자기 주장이 강한 박영준(이동건)은 매사에 조용하고 차분한 한소여(한채영)보다는 늘 자신에게 자극을 주는 서유나(엄정화)가 더 흥미롭고 끌리는 반면, 뭔가 보호해 주고 감싸줘야만 할 것 같은 한소여에게는 푸근하고 젠틀한 정민재(박용우)가 더 잘 어울린다. 또한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서유나에게 정민재는 그다지 맞는 상대는 아니다. 특히 이것은 이들의 정사장면에서 잘 나타내 보여주고 있는데, 정민재와 한소여의 정사는 진지하고 꼼꼼한 반면, 박영준과 서유나의 정사는 정열적이다 못해 우리나라 씨름의 성대결을 연상케 해 오히려 유쾌하게 보인다.
이전에 본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에서도 말했지만, 정윤수 감독은 완급조절을 잘하는 감독이다. 이 영화에서 볼만한 대목은 그렇게 상대를 크로스해서 절정에 오르는 과정을 교차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정민재와 한소여는 차분하고 부드럽지만 강렬한 사랑을 보여주는데 반해, 박영준과 서유나는 뭔가 액티브하지만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부드러움이 약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역동적이라고 해서 방향을 잃는 것은 아니라는 상대적 개념을 영화속 네 사람은 충실하게 보여준다. 결국 이것은 힘의 안배라고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감독은 이것을 상당히 노련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나중에 이들 네 명의 심리적 일탈을 어떤 연출과 음악적 효과를 사용하고 있는가를 보면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 중년의 부부가 자신들의 한 많은 결혼생활을 토로하게 만드는 것은 통속적이지만, 확실히 절묘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또한 이들은 이렇게 불온하고 불안한 사랑은 동시에 그것은 자신들의 결혼생활을 되집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데, 특히 결혼 3년된 정민재가 아내 서유나에게, 당신은 아직도 나를 보면 가슴이 뛰냐고 묻는 것은 확실히 이들의 부부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말해 주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감독이 모든 면에서 뛰어난 역량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 부분에서 아쉬운 한계를 보여주지 않나 생각해 본다. 즉 인간의 사랑. 특히 남녀간의 사랑을 가슴이 뛰냐 안 뛰냐로만 상정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것 말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이들의 관계는 크로스가 가능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인간의 사랑을 한정적으로만 보여주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이들의 새로운 사랑은 외롭고 쓸쓸하며 불온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물론 그래서 여기에 영화적 상상력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여간해서 도덕적인 것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탈도덕을 말한다. 그러므로 도덕은 관객의 몫으로 돌린다.
영화의 말미에 가면, 이들의 크로스적 관계를 빼도 박도 못하게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은 서유나와 한소여가 실족해 물에 빠지는 장면이다. 그랬을 때 박영준과 정민재는 각각 누구했을까? 각자의 아내? 아니면 내연의 여인? 스포일러지만, 두 남자는 서로 약속이나 한듯 내연의 여인 즉 상대의 아내를 구한다. 내가 스포일러를 무릎 쓰고 이것을 밝히는 것은 이것은 결국 감독의 의지의 표명이기도 했을 텐데, 확실히 여자의 뇌와 남자의 뇌가 달라서 그런 연출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말하자면 내가 감독이라면 그 두 남자가 각자의 아내를 구하는 것으로 하지 않았을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후 이들은 그 사건으로인해 서로 갈라선 것으로 마무리가 되고 있는데, 그것으로 봐서 감독은 결혼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언젠가 나의 지인 중 한 사람은 배우자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바람은 언제라도 피워도 좋은데 내가 모르게 피우라고 했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결혼이라는 건 참 쓸쓸하고 초라한 것이겠구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지혜롭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결혼의 순결성은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바람은 그야말로 바람이다. 감기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36.5도의 정상적인 체온을 가진 남녀라면 있을 수 있는. 그것은 반드시 지나간다. 배우자가 바람 한번 피웠다고 칼바람을 일으키고 한 가정을 풍비박산내 끝내는 결혼까지 포기한다는 건 과연 온당한 처사일까? 이쯤되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건 역시 엄정화가 아니었을까 한다. 난 정말이지 이 배우가 너무 멋있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배역을 맡겨도 그녀는 그 배역에 최선을 다한다. 박용우는 배역에 값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한채영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그녀는 자체발광, 아름다운 면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가장 어정쩡한 연기를 보여줬던 배우는 이동건은 아니었나 싶다. 그 더벙한 머리라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왔더라면 보기는 좀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어느 장면을 봐도 어느 대기업 젊은 이사역을 맡기엔 좀 안 어울리는 배역이다. 그래도 영화는 그 자체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