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이 책을 먼저 읽을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운명이다 (반양장) - 노무현 자서전
노무현 지음, 유시민 정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돌베개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생각 보다 일찍 우리 곁에 온 자서전 

이 책은 자서전이라고는 하지만 좀 특별한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에서도 밝혔거니와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했다고는 하지만 자서전을 그리 빨리 쓸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것은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현역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자신의 자서전으로 인해 그 모든 이들에게 누가 될까 봐 극히 꺼려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분은 자서전을 언젠가는 낼 생각을 하고 계셨고, 그것을 위해 틈틈히 그 윤곽을 구상하고 조금조금씩 메모하듯이 글을 써 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유시민 씨가 그것을 모아 대신 썼기 대문에 사후 자서전이면서 동시에 대필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생각보다 훨씬 일찍 우리 곁에 온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분이 이 책에서도 밝혔다시피, 자서전이라고 하면 성공한 사람의 화려한 성공기가 되어야겠지만, 당신 스스로도 이것은 실패한 사람의 자서전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상처와 굴욕의 수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전자의 자서전이 얼마나 허울 좋은 겉치장에만 치중하고 있는지. 인간의 진실은 그런 것에 있지 않고 아픔과 상처 속에 있다는 것을. 그러므로 이 책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낮은 목소리를 담은 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서도 풀어내지 못했다면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우리 글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란 생각을 했었다. 사람 누구든 말 못할 진실은 다 가지고 있다. 그분은 일국의 대통령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슴에 묻어었야 했을까? 그것을 글로서도 풀어낼 수 없다면 그분의 한은 죽어서도 풀 수 없었을 것이고, 그분이 부엉이 바위에 자신을 던지기 바로 직전에 썼다는 유서 조차도 남기지 못했을 것이며, 그분의 애끊는 가슴을 우리가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과연 그분은 이 글을 쓰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더 슬프고 참담한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랬다고, 잠시 잠깐이나마 위로를 받아을까?  

너무나 부침이 많았던 대통령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곳곳에 그분은 낮은 목소리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국민에게 미안해 하셨고, 노동자들에게 미안해 하셨으며, 자신과 함께한 가족들과 참모들에게 미안해 했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줬던 사람들, 이를테면 형 건평 씨를 비롯해 친분이 있었던 기업인들에겐 미안함을 떠나서 일종의 죄책감까지 느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랬다. 보수에서 진보의 첫 대통령, 평화적 정권이양이란 상징적 인물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은 그의 재임 시절 사람들에게 늘 그렇게 나약한 대통령으로 비춰졌다. 나는 이런 대통령이 솔직히 싫었다. 더구나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말까지 그의 입에서 나왔다지 않은가?(그것은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이 책에도 언급되어지기도 했다) 물론 그 말이 반드시 무책임한 말은 아닐 것이다. 너무 힘들어서 했던 말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우리 국민 누구도 대통령에게서 이 말을 들어야 할 책임이나 권리는 없다. 그분을 직접적으로 응원하진 않았지만 힘들어도 맡은 바 대통령의 임무를 다해주길 바랐다. 보라. 세상에 어느 대통령도 스스로 하야한 대통령은 있었어도 지레 못해 먹겠다고 팽개쳐버리듯 하는 대통령이 있었는가?   

하지만 그분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었다. 그분의 지나온 발자취를 보면 너무나 부침이 많았었다. 세상은 그를 가만 놔 두지 않았다. 특히 그분은 임기 시작 때부터 언론이란 철창에 갇혀 옴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이 나라의 모든 언론이 그분을 일제히 비난할 수가 있을까? 그렇다면 둘 중의 하나는 가짜다. 노무현이 가짜거나 언론이 가짜거나.  

더구나 '탄핵'이라고 하는 이 치욕스럽고도 유치한 정치쇼는 정말 피해 갔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분을 탄핵 소추하는데 앞장 섰던 몇몇의 정치인들. 그들은 아예 그분의 하야를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명분이 마땅치 않았고, 그분을 탄핵 소추하면서 그것이 마치 국민 전체의 뜻을 대변하는 양 거들먹거렸다. 지금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분의 장례식 때 오기나 했을까? 

우리나라의 정치적인 악과 언론의 악에 대하여          

물론 그분은 정의의 사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분의 올곧은 성품으로 볼 때 불의에 대해서는 단호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그분은 이 나라가 정권이양은 했을지 모르나 정치인의 의식이 보수든 진보든 하나도 나을 것이 없는 것에 대해 개탄했고, 이 나라 언론에 대해선 단호했으며 그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 않았다. 특히 조선일보 신문을 나르던 소년에게서 촉발된 조선일보와의 끝나지 않은 싸움은 읽는 나 조차도 분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분의 언론에 대한 메스는 가차없어 보인다. 지난 시절 언론은 군부 독재에 꼭두각시 노릇만 하더니 독재 시대가 끝나고 민주화가 되면서 자생할 줄 모르고 힘있는 권력에 붙어 기생하더니 그 사이 힘을 키워 절대권력으로 군림하려 한다고 몰아 부쳤다. 그러면서 그분은 언론이 자신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것은 여지없이 맞아 떨어져 이명박 대통령을 지금도 갈구고, 위협하고 있다. 그렇다면 언론은 어느 항생제로도 듣지 않고 변신이 가능하며 한번 변신할 때마다 곱절로 그 크기를 늘려나가는 수퍼 바이러스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언론의 그런 고질적인 병폐를 알아서일까? 그분은 국정원에 대해선 중립적인 거리감을 유지 하셨다. 그것은 확실히 잘한 일이라고 보아진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살아생전 그분의 정적들은 또 어떠했는가? 누구에게든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정적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정적들 개인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따르는 권력에 철저하게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운명이었기에 그분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은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럴 수 있어도 눈을 가렸어야 했을 것이다.  그것은 정치적인 악인 동시에 필요악처럼도 보인다. 그만큼 정치는 비정한 것이다.

노무현과 전태일 

이 글은 정말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읽어낼 수 없었던 책이었다. 그렇다고 이 책은 신파는 아니다. 오히려 그분은 가급적 감정을 절제하고, 자신이 보고 느끼고 체험한 것에 충실히 썼다고 봐진다. 그래서 오히려 더 슬펐다. 읽으면서 내내 내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치를 몰라요." 내지는 "정치에 관심없어요."라고 말하는 건 결코 자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러고 있는 사이 우린 나라의 대통령을 비명에 보내야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더 정확히는, 정치는 몰라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사람의 외침과 그 사람의 영혼에 대해서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전태일을 생각했다. 노동자와 노동현실의 개선을 위해 기꺼이 그의 몸과 영혼을 불살랐다던 전태일과 부엉이 바위에 몸을 날렸던 노무현.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그토록 애쓰셨던 분이 그렇게 비명에 가셨다는 것에서 뭔가 모르게 전태일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어 보였다. 그분 역시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고 진정한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지 않았던가? 

그런 점에서 그분은 죽지 말았어야 했고, 동시에 죽어야만 했었다고 생각한다. 죽지 않고서야 그분의 결백과 자신으로 인해 고초를 당했던 많은 사람은 어찌 구할 수 있겠으며,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민주화를 무엇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한 일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검찰과 언론이 그분을 압박해 올 때 오죽했으면 그분은 인터넷을 통해 국민들에게 자신을 버려달라고 호소했을까?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관하여 

그분이 탄핵에서 풀려났을 때 노사모 많은 회원들은 그를 환영했다고 했다. 그것에 대해 영부인 권양숙 여사는 흥분했지만 그분은 두려워 했다고 했다. 자신을 보고 환호하는 저 무리들. 저들이 또 무엇을 달라고 할지 몰라서. 원했다면 무엇을 원했을까?  

책 말미에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예방을 받던 날, 그는 전 대통령의 예우 문화를 확실히 세우겠노라고 약속했다고 했다. 그것은 그분을 당황스럽게 만들긴 했지만 본인이 그렇게 말했으니 그것을 지켜주길 속으로 바랬다고 한다.  

그분은 당황했을지 몰라도 나는 그 부분에선 당시 대통령 당선자로서의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생각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을 보라. 그들의 화려한 재임과 굴욕적인 퇴임 이후는 극명하게 갈린다. 왜 나라를 위해 일해놓고 후에 가서 그처럼 굴욕을 당해야 하는지? 물론 그들 중엔 반드시 심판 받아 마땅한 독재의 주역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바라는 대통령에 대한 예우란 이를테면 그런 것이다. 퇴임 후에도 국민들로 부터 인정 받고 사랑 받는 대통령.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동안 그것에 근접해 가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분이 재임 시절 단 한 시도 편한 적이 있었는가? 이제 퇴임을 했으니 그분는 이후에 평화로운 노후를 꿈 꿨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대통령도 인간일진데 잘한 것이 있으면 못한 것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 잘못한 것이 나라를 말아먹는 잘못이 아닌 다음에야 차기 대통령이 잘해 주길 바라면서 덥어 갔어야 했다. 전 대통령의 예우를 약속했던 이명박 대통령과 그분의 여전한 적인 언론과 검찰이 결탁을 해서 하지만 검찰과 언론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밖았다.   

모르긴 해도 그 예우를 스스로 깬 건 이명박 대통령이었으니 그의 퇴임 후도 그다지 안정적여 보이지 않느다. 그리고 우린 또 한 번 대통령의 불명예를 지켜봐야 할 것도 같다. 

별이 된 대통령       

알고보면 노무현 대통령만큼 똑똑한 대통령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박식하기로야 노무현 대통령도 인정했던 고 김대중 대통령을 꼽지 않을 수야 없겠지만, 노무현 대통령만큼 저술을 많이 남긴 대통령이 또 있을까? 물론 거기엔 타의에 의해 씌어진 책들도 있긴 하지만 그만큼 그는 미디어를 이용할 줄 알았고(TV를 통한 검찰과의 대화도 시도를 했다. 비록 이렇다할 성과는 없었지만) 그만큼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분은 재임 시절이나 퇴임 후에도 할 일이 정말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모든 것을 뒤로한채 운명을 달리했다. 그리고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 들였다. 그래서 전설이 되었다면 너무 과한 표현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분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한다고 해도 나 개인적으론 자살만큼은 용납하기 어려우니까. 그렇다면 그냥 저 어두운 밤하늘의 한 점 별이 되었다고 하자. 사실 이 책은 개인 자서전인이고 또 여러 가지 특수한 배경 때문에 온전히 감정을 배제하고 읽어 내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만큼 이제 앞으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든 자리는 표가 안 나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더니 그 분의 빈 자리에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그래도 모르긴 해도 앞으로 한 20년 안에 노무현 같은 사람이 대통령으로 나오지 않겠는가? 바라건데 그때가 되면 정치적 상황이 지금 보다는 훨씬 나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또 한 번 한 한 대통령을 비운에 보내는 그런 불행한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이 지면을 빌어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고 노무현 대통령께 사죄를 드리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을 몰라 뵈서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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