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간증집을 읽게되는 경우가 있다. 뭐 그런 책이 어떤 건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가를 밝혀 놓은 책이 그것이다. 물론 그런 책을 읽으면 나름 은혜가 되고 감동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간증집이 워낙에 많이 나오고, 교회를 다니게 되면 직간접으로 듣게 되는 것들이 또한 간증이라 굳이 그런 책을 일부러 사 보게 되지는 않는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출간 때부터 나의 관심을 끌었던 책이다. 저자가 남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전 문화부장관이면서 교수인 이어령 교수가 기독교에 귀의하고 그 느낌, 체험, 사색, 간증을 쓴 책이니 어찌 관심을 안 가질 수 있을까?       

책을 좀 읽는 사람이라면 이어령 교수가 쓴 책 한권쯤은 독파를 했으리라. 나 역시도 한때는 이분의 책이 좋아 몇권 사 모았다. 사실 다른 사람도 그렇겠지만, 이분의 책이나 강연을 들으면 이분이 쏟아내는 지식의 양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가 있다. 그의 지식의 스펙은 국문과 교수라고는 하지만 국문학 한가지에만 국한 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분이 세상에 알려지기는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비교한 일련의 작업들로 더 유명하긴 하지만 실제론 기호학이나 문학평론,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런 분이 신앙 간증집을 냈으니 그 향취는 어떠할까? 자못 궁금해졌다. 

이런 분을 두고 이런 말하기는 뭐하지만,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자기 전공분야 안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 나는 같은 간증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간증을 좋아한다. 자기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간증. 이를테면 자기 삶 따로, 신앙 따로의 간증은 때로 역겨울 때가 있는 것이다. 마치 하나님이 자기만 사랑하는 양. 또는 간증을 못해 안달 난 암고양이 마냥 빤히 들어나 보이는 간증은 금방 그 바닥을 들어내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읽어 본 간증집 중에 나름 좋아하는 책이 있다면 오래 전에 읽은 카피라이터 이만재씨가 쓴 <막쪄낸 찐빵>이다. 이책은, 누가 글쟁이 아니랄까봐 신앙에 문외한인 사람이더라도 읽으면 킥킥대고 웃음이 나올만큼 재미도 있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정말 자기 전공분야 밑바닥에서 우러나는 좋은 간증집이다. 사실 그에 비하면 이책은 다소 묵직하고 어려운 책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왜 그런지에 대해선 굳이 말하지 않겠다. 

이어령 교수는 한때 무신론자로서 기독교와 배치된 글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듯이, 인간의 허다한 많은 지식이 하나님께 눈을 뜨기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그는 흡사 바울을 많이 닮은 듯도 하다. 하지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했지 못 들어간다고 하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지식인 역시 천국에 못 들어 가는 것은 아니다.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부자나 지식인이나 안 믿던 사람이 신앙에 귀의해서 180도 달라진 삶을 산다면 그건 또 얼마나 강력한 것일까?  

내가 이책을 읽으면서 감탄했던 건 저자의 지식으로 하나님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지식이 때로 하나님을 부정하는데 쓰일수도 있는데 그 지식이 오히려 하나님을 증거하는데 쓰이는 것이다. 그것을 이름하여 이어령 교수는 '지성에서 영성으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안 믿는 사람의 편에서 얘기한다면(어차피 간증이라는 것도 안 믿는 사람을 믿게끔 만드는 것이기도 한만큼) 모든 지성 중의 최고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만큼 그것이 바로 영성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어령 교수는 재대로된 수순을 밟고 결국 영성에로의 방점을 멋있게 찍은 분은 아닐까 한다. 그래서 리더십에서도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고, 기호학으로도, 문화에서도 하나님의 원리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읽다보면 하나님을 학문적으로 증거한 학문이라는 변증학의 대가 겸 20세기 최고의 지성 중의 한 사람이라던 C.S 루이스가 생각이 난다. 말하자면 이어령 교수는 한국의 C.S 루이스라는 생각을 하게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학자로서만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면 나름 권위만 지녔다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의 삶이 하나님을 다 증거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의 글에선 부성애가 느껴진다. 그는 특히 따님인 민아 씨의 전도로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데, 사실 이어령 교수 그 자체로는 그다지 신앙에 귀의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당대 우리나라를 대표할만한 최고의 지성인이요, 문화부장관이란 명예까지 누린 사람이 무엇이 아쉬워 예수님을 믿었겠는가? 그러나 그의 따님인 민아씨의 고통스러운 삶을 보면서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만다. 즉 민아씨의 많은 어려움 중 정점을 찍었던 건 그녀의 망막파열로 실명이 될거라고 했을 때 아버지로써 결국 하나님께 무릎꿇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찌보면 이땅의 부모들은 자식들 앞에 가장 강한 척하는 약한 자인지도 모른다. 그때야 비로소 그는 딸의 병을 고쳐주시면 예수님을 위해 평생 헌신하는 삶을 살기로 서원을 했다고 한다.   

결국 그것은 그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을 터. 이책에 수록된 글들은 딸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며 산 그의 발자취를 기록해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한마디로 지성이 무엇이고 영성이 무엇인지를 그 특유의 화법으로 잘 전달해 주고 있다. 그래서 그럴까? 그는 자주 자주 딸 민아씨의 얘기를 하곤 한다. 그리고 한 평생 책만보고 연구만 하느라 아버지 노릇은 잘 하지 못했다는 자책도 하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그의 부성이 곳곳에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작고한 수필가 피천득 선생이 딸에 대한 부성을 그의 수필집에 기록한 것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세상의 어느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책은 저자에겐 참회록이라할지 모르지만 나 같은 독자에겐 인문학적 향취가 가득한 저자의 영성에 대한 기록같아 읽는 내내 즐거웠고 뿌듯했다. 믿는 사람 뿐만아니라 안 믿는 사람에게도 읽으면 좋을 책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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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a,moderna 2010-07-0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일까 궁금했는데.
그런 책이군요.
얼마전부터 알라딘 서재에 가입하고 서재글을 보고 있었고, 님의 서재를 즐겨찾는 서재에 등록하고 읽고 있었는데(순전히 운명이다 때문에요), 님이 여자라는 것은 오늘에야 알게 되었네요.
오늘 읽은 싸움의 기술은 좀 무서웠습니다.^^

stella.K 2010-07-01 11:42   좋아요 0 | URL
정말요? 뭘 그 정도 가지고...ㅋ
암튼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