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
최윤필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어제, 지난 2008년도에 방송한 가수 비(정지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말하자면, 그가 오늘 날 월드 스타가 되기까지의 그 이면을 보여줬던 프로그램이었다. 그걸 보면서 월드 스타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를 새삼 느꼈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의 자랑스러운 김연아 선수는 어떤가? 한번의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키기 까지 천번도 만번도 더 엉덩방아를 쪘을 그녀의 지난한 과정을 보면서 우린 김연아에 대해 무한한 사랑과 찬탄을 보내지 않는가? 그들은 모두 1등이고, 세계 제일이다. 뭐 그래서 나쁠 것은 없다. 아무리,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라고 외쳐도 그들은 1등을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것도 알려지는 과정에서 아무래도 자본주의 논리 또는 적자생존의 원리를 비껴가지는 못한다. 그러니 비나 김연아 같은 주목 받는 사람의 이야기는 이책의 제목대로 따지자면, '어느 날 나는 안으로 나갔다'쯤이 되는 것은 아닐까? 사실 그들이 1등이 되기까지는 수 많은 2등과 3등이 있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는데, 우린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 살기에 2등과 3등이 어떻게 2등과 3등이 될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책 제목이 아이러니 하면서도 묘하게 끌린다. 저자는 어떻게 이런 제목을 달 생각을 했을까? 저자의 약간의 비딱한 시선이 느껴진다. 모르긴 해도 저자는 기자로서 이 세상에 가리워지고, 숨겨진 것 들 그러면서도 홀로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 길을 나설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기자 정신에도 부합되는 태도처럼도 보인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1등은 1등이어서 좋다고 해도 그 1등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이 가리워져서는 안되지 않는가? 1등이어서 아름다울 수 있지만, 꼭 1등이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등식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1등은 1등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박태환의 훈련 파트너라고 알려진 배준모 선수도 아름다운 것이고, 군무 벨레리나 안지원도 아름답다. 그들이라고 부모님의 사랑을 덜 받았겠나? 그들이라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보다는 자신을 찾아 나가는 것. 자신의 위치에 서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저자와의 인터뷰 과정이 없이 나 같은 벽안의 독자가 어찌 알겠는가? 어디 그뿐인가? 아름다운 넘버3로 남은 산악계의 휴머니스트 한왕용씨 는 또 어떠한가? 그 사람이라고 1인자가 되고 싶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가족을 위해 그 길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고독한 1인자로 남기 보다 여러 사람의 곁에 넘버3로 남았다.고 누가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 그라고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없었을까? 명예롭고 싶지 않았을까? 그러나 무엇이 남자의 길이고 명예를 위한 길인가에 대한 답은 특별히 정해져 있지는 않다. 그것은 그야말로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답이 나올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저자는 바깥으로의 길을 찾는 것을 꼭 사람에게만 국한하지 않았다. 동물이나 사물에로도 눈을 돌렸다. 퇴역마 다이와 아라지의 이야기는 묘한 감동을 선사한다. 다소는 도도하고 자존심 강한 말과 사람과의 교감. 그리고 퇴역을 위한 마지막 경주. 과연 다이와 아라지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리고 녀석은 퇴역을 한 지금도 잘 지내고 있을까? 동물을 좀 좋아하는 나는 곁에 있었다면 한번쯤 쓰다듬어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무엇보다 가슴 찡한 건 절판된 책의 운명을 다룬 잘 가게, 40원어치 폐지로 남은 인연들이란 쳅터다. 책에도 사람의 혼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책 한 권을 쓰기 위한 저자의 노력과 글자 한 자 한 자 찍어내기 위한 노력을 생각하면 우린 책을 너무 싸게 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곤 한다. 물론 인쇄술의 발달로 우린 이렇게 이런 호사를 누리지만. 그런데 그것도 부족해서 독자들이 찾지 않은 책으로 끝내 전락해버리면 몇 개의 단계를 거쳐 결국 40원어치 폐지 밖엔 안 된다는 것이다. 한때는 그렇게 화려한 장정으로 위용을 자랑하던 그책이 휴지 보다도 못한 폐지로 남아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나름 책을 좋아한다는 나도 이 부분을 읽고나면, 나는 그저 책에 아주 조금 관심이 있다는 것뿐 정말로 아낄 줄은 모르는구나 싶기도 하다.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은 한정되어 있고, 그 사이 죽어 가는 책은 셀 수도 없이 많으니 감히 어디 가서 책 좋아한다는 말을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또한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 DMZ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도 참 뭐라 쉽게 말할 수 없는 착잡함을 안겨 주기도 한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마이너리티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는 줄 알았더니, 아날로그에 대한 추억에도 관심이 많아 보였다. 하긴, 그 또한 386세대인 것을 보면 잊혀져 가는 것에 대한 남다른 아쉬움과 애정이 각별할 것 같다. 그래서 우표도 취재를 했고, 70년대 통기타 가수 대열에 섰던 '이사 가던 날'을 불렀던 가수 주정이씨도 취재를 했을 것이다. 읽는 나도 새삼 감회가 새롭다.  

글쓰는 사람으로서 크게 비전향장기수나 외국인 노동자를 다루는 것은 이제 이채롭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의 이념의 문제나 인권의 문제는 변하지 않는다.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얀마 난민 조모아씨老프롤레타리아 이일재씨 를 직업혁명가로 취재한 것은 참으로 적절한 취재란 생각이 든다.  

지면상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저자는 이렇게 26 분야의 사람들과 풍경과 사물을 만나 취채하고 그것을 꼼꼼히 기록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읽다보면 나름 다 특별해 보이면서도 사람 냄새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1등은 못해도 1등에게 박수를 쳐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이 알아주건 말건 묵묵히 일하는 사람 보면 가서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지 않은가? 알고보면 당신네들이 있어 우리가 웃고 사는 거라고 하면서 말이다. 왜 세상은 1등이 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는 사람도 가치 있는 인생인 것을.  

책을 다 읽고 나서 이런 전달의 가치를 높여준 저자가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이 생겼다. 책 사이 사이에 보여지는 흑백으로 찍은 사진도 저자의 마이너리티하면서도 아날로그한 취향를 더욱 높여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