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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파잡기 - 개성 한량이 만난 평양 기생 66인의 풍류와 사랑
한재락 지음, 이가원.허경진 옮김 / 김영사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19세기 명문가 출신인 한재락이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한량으로 개성을 떠 돌면서 그가 만났던 기생들에 관해 짤막하게 기록해 놓은 말 그대로 잡기다. 현재는 2종의 필사본만이 남아 있다고 하니 가히 역사가 꽤 있는 서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대의 기생이라고 하면 천기나 다름없는데 그는 짧지만 나름 애정을 가지고 기록해 놓고 있다. 그는 기생이 좋아 훗날에라도 잊지 않을 요량으로 이렇게 썼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오늘 날에도 전해져 읽혀지고 있을 줄 상상이나 했을까?
이 책은 200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비교적 얉은 책이다. 그래서 어찌보면 빨리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66명이라고 해도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기술이 워낙에 짧고 평이하게 씌여져 있어서 (쓰는 사람이야 좋아서 썼다지만)과연 이것을 읽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언제부턴가 모르게 (막연하긴 하지만)기생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중에 발견하게 된 책이라 나름 기쁘기도 했고, 기생에 관한 이런 평이한 기술이 오히려 낮선 체험으로 와 닿았다. 이 책은 기생을 알기위해 역사적으로 고찰한 학술 서적이 아니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솔직하며 인격적이기까지 하다.
사실 기생들이야 하룻밤 웃음을 팔고 놀이개감으로만 생각하지, 뉘라서 이렇게 기록을 해 놓는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한량이라는 것도 급수가 있고 할 일이 있다 싶기도 하다. 한재락 그가 기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그들은 아무 것도 아니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기록이란 게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을 마주하고 새삼 또 한번 깨닫게 된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 책을 읽는다는 건 낮설다. 이 책 앞뒤로 <녹파잡기>에 대한 해설을 읽지 않고 중간부분을 차지하는 기생에 대한 인간적인 느낌만 가지고는 이 책이 그닥 와 닿지 않을 것이고, 기생을 우리식으로 알고자 한다면 더 실망하지 않을까 우려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름 역사적 자료로서는 품위가 있는 책이기에 소장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이 책을 읽으니 기록에 대해 좀 더 충실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하찮은 기록일지라도 내가 쓴 기록이 훗날 어떠한 대접을 받을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