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들지 않는다는 것 - 하종강의 중년일기
하종강 지음 / 철수와영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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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어디서 많이 들어왔던 이름이었더랬다. 그런데 그가 누군지는 정확히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인간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가 관심있어 하는 분야나 사람이 아니면 그 나머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으니,  그러고 보면 나도 어지간한 외눈박이란 생각이 든다. 그는 노동상담가란다. 아하! 그랬구나. 그리고 자신이 50대라고 밝히고 있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짤막짤막한 글이 별반 어떠한 느낌도 받질 못했다. 노동상담가라면 노동현장에 있으면서 느꼈던 체험들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피 끊는 듯한 글은 없고 그냥 저자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단백한 필치로 담아내고 있었다. 그러니 오히려 밋밋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점점 읽어 갈수록 글이 위트가 있고, 사람됨의 면면이 느껴져서 이내 편안한 마음으로 읽었다.

읽다보면 어딘가 모르게 그에 대해 천진난만함이 느껴진다. 나이 먹을수록 음악 듣는 것도 멀어지던데 하물며 팝송은 더하지 않는가? 그래도 하종강 그는 딥퍼플을 좋아해 아들과 함께 고생해가며 공연에 갖다 온 것을 자랑처럼 얘기한다. 그가 얼마나 천진난만하면 어디 가면 정신연령이 낮다고 코코아나 대접 받는다. 하지만 그가 꼭 다 천진난만함으로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섬세함도 있다. 어느 날 교통사고로 꼼짝없이 방에 누워있어야 할 때 그때야 비로소 박안의 벽지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았다고 했다. 또한 한동안 정신병원에 입원에 있는 사람과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고통 당하는 사람을 위로하기는 차라리 쉽다 하지만 그와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토로하고, 사무실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김지연씨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그 슬픔을 글로 적은 부분에서 그의 따뜻한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하종강, 이 분 철이 없긴 없는 사람인가 보다. 1년 간 한겨례 신문 논설위원으로 일하다가 계약이 만료가 되어 다시 계약갱신할 때 저쪽에서 그만두라는 말을 완곡어법으로 말한 것을 그는 계속 더 일해달라는 뜻으로 알고 마음을 쓸어내리며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는 부분에선 정말 웃음이 나왔다. 우리나라 말은 왜 그리 어려운 것인지? 그건 나라도 직설로 받아 들이겠다. ㅎ 그는 386세대가 너무 일찍 철들어 버린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386세대가 아직 50에 진입하지 않았으니 그의 아쉬움이 더욱 절절해 보인다. 하지만 나라마다 한 시대를 아파해야 하는 굴곡은 있게 마련인 것 같고, 거기에 직격탄을 맞은 사람이 386이라고 하지만 그 역사에 온몸을 던져 불 살랐던 세대가 있었으니 그것으로 제 할 본분은 다 하지 않았겠는가? 단지 언젠간 잊혀짐이 아쉬울 뿐이지.

나이 들수록 입에 붙는 말이 있다. 나이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 보면 "도대체 나이가 몇이야?"란 말이 절로 나오는 때가 너무 많아졌다.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을 '철딱서니'라고도 한다. 이 책을 읽으니 우리 시대는 너무 철들기를 강요하는 세대는 아닌가를 생각해 본다. 본래 철이 든다면 성숙해져야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래서 함께 나누고, 양보하고, 다 같이 잘 사는 삶의 태도를 지향하고 등등. 하지만 우린 철들면 어떻게 하면 손해 안 보고, 영악해지고, 남을 짓 밟고라도 내가 잘 살까를 궁리하게 된다. 이젠 좀 꿈 꾸는 사람이 대접 받고, 작은 것에도 강동 받을 줄 아는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인정 받는 그런 때가 와야하지 않을까?

하종강. 그는 그 바쁜 중에도 아마추어 무선사이기도 하다. 나는 무선에 대해선 문외한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선사들은 가끔 자신이 보낸 전파를 다른 안테나에 보내지 못하면 자신이 고스란히 되돌려 받아 그 전파를 감당하지 못해 나중에는 무전기가 고장이나고 만단다. 그것을 SWR 또는 '정제파비'라고도 한단다. 그것에 대해 그는,

   
 

...사람도 그렇다. 자신의 넘치는 감정을 다른 사람이 받아 주지 않아서, 자신이 고스란히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가슴 가득 넘치는 그리움을 아무도 받아 주는 이가 없어서 혼자 되새김질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지금 다른 이에게 끊임없이 전파를 보내고 있는 많은 안테나들에 둘러싸인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거나, 또는 모르거나.

 
   

 라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철이 든다면 감성이나 감정적인 부분은 줄어들고 이상이나 현실감각이 극대화 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얼마나 삭막해질까? 그래서 하정강 그는 철들기를 거부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도 자신이 쏘아올린 천진난만하고도 가슴 따뜻한 전파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 누구에게 어떠한 전파를 보내며 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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