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을 통해서 새삼 깨닫게 되는 사람과 세상
  • [검색어로 본 오늘의 문학] 10. 음식남녀
  • 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  



    • ‘나는 스스로를 서른이 다 되도록 정신 못 차리는 년이나 사랑의 의미도 모르는 이기적인 여자라 말하는 대신 ‘같이 밥 먹어주는 여자’라고 소개한다. 왜? 같이 밥 먹어주는 일로 돈을 벌고 생활을 연명하니까.’

      새내기 여성작가 하재영(28)이 단편 ‘같이 밥 먹을래요?’로 주목 받고 있다. 올해 계간 ‘실천문학’ 봄호에 발표된 ‘같이 밥 먹을래요?’는 최근 나온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 재수록돼 문단 샛별 하재영의 위상을 높였다. ‘모든 욕망은 하나로 귀결돼요. 바로 타인의 시선. 사람들은 남의 눈에 어떻게 비치나 전전긍긍하는 속물근성을 보편적인 욕망으로 포장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마치, 혼자 밥을 먹을 때 혼자가 아닌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운 것처럼.’





    • ▲ 미식가들을 겨냥해‘생 트러플 버섯’요리를 내놓는 서울의 한 호텔 레스토랑. 음식을 소재로 웰빙 시대의 세태와 입맛을 그리는 현상이 2000년대 한국 문학에서 두드러진다. /조선일보 DB


    • 혼자 밥 먹는 사람의 고독을 달래는 이 소설에 대해 “왜 식사는 정치적인가 하는 문제가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난다”고 평가한 평론가 이광호(서울예대 교수)는 “혼자 밥 먹는 사람에 대한 배타와 차별을 생산하는 온갖 집단주의는 어디에나 언제나 있다”고 풀이했다.

      대만 영화 ‘음식남녀’(94년 아태영화제 작품상)가 요리를 통해 개인과 가족, 사회, 문명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듯이, 오늘의 한국문학에서 음식문화는 실존적이면서 사회적 차원의 의미를 지닌다. 은희경의 소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비만에 대한 현대 사회의 집단적 냉대를 바탕에 깔고 있다. ‘빙하기 원시인은 늘 굶주렸기 때문에 어쩌다 음식을 접하면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고 한 이 소설은 묄렌도르프의 비너스와 보티첼리의 비너스를 대비시키면서 비만해소를 위해 땀 흘리는 현대문명의 아이러니를 묘파했다. 뚱뚱한 사생아인 남자 주인공이 탄수화물 섭취를 금하는 다이어트 과정을 그린 이 소설에 깊이 공감한 한 독자 블로그에 들어가봤다. ‘탄수화물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강한 내가 보기에는 남의 얘기지만 참으로 고통스러웠다…그런데 (아버지 빈소에서) 이 남자는 국밥을 폭식하고야 만다. 그 장면에서 난 ‘으아아아악~~~안돼’ 외쳐버렸다.’ 근자에 소설과 독자가 이토록 큰 공명(共鳴)을 빚은 경우가 또 있을까.

      오늘의 작가들은 맛집 안내서와는 다른 차원의 음식 산문집을 통해 ‘글맛’을 보여준다. ‘어머니가 급히 지져낸 장떡은 사실은 고추장떡이었다…평안도와 황해도에서는 된장을 주로 쓰는데…’라는 ‘황석영의 맛있는 세상’은 미식가들이 범람하는 풍요의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맛에 대한 추억을 펼친다. 맛있는 음식에는 ‘가장 중요하게는 궁핍과 모자람이라는 조건이 들어 있으며, 그것이 맛의 기억을 최상으로 만든다’라고 황석영은 역설했다.

      소설가 윤대녕의 산문집 ‘어머니의 수저’는 탐미적이고 구도적인 음식 명상집이다. ‘장아찌는 밥상의 조연이면서 없으면 서운한 일등공신이다…장아찌는 ‘마땅히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금강경) 할 때의 그 말씀에 값하는 음식이다.’

      소설가 성석제의 음식기행집 ‘소풍’은 환희와 유희로 가득하다. “음식에서 깨달음을 찾고 먹는 데서 구원을 갈구하는 무리들이 걷는 길은 식도(食道)요, 그 무리는 식도(食徒)라 하겠다”고 한 성석제는 “음식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되는 사람과 세상에 관해서 썼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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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9-04 17: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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