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은 피다… 이 시대의 푸른 혈액이지”
  • 검색어로 읽는 오늘의 문학 7. 주식
    펀드매니저… 개미… 자본의 의미 캐묻고 경험을 소설화 하기도
  • 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  



    • ‘그날의 증권시세도 어김없이 벌건 사막에 풀어놓은 미친개였다. 뉴욕 증시가 어쩌구, 미국의 이라크 공격 계획이 저쩌고 하는 해설이 있었으나, 실은 머니 게임이 가지는 특성 중의 하나인 투자심리의 변덕으로 죽 끓듯 하던 장(場)은 결국 지수가 30포인트 가깝게 빠지면서 끝이 났다.’(이문열의 장편 ‘호모 엑세쿠탄스’ 중에서)

      소설가 이문열의 최신작 ‘호모 엑세쿠탄스’의 주인공은 증권사 근무 10년째를 맞은 386세대다. 이 소설은 종교적 구원이나 혁명 이데올로기에 의한 인간 해방을 모두 거부하는 인간의 존재론적 고뇌를 바탕으로 2002년 이후 한국 사회의 내부 갈등을 풍자와 환상을 뒤섞어 그린 작품이다.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작가는 “제가 증권사 직원을 주인공으로 쓴 것은 ‘속됨’과 ‘현대성’의 이미지를 결합한다는 정도로 보면 될 것”이라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 ▲ 주가 지수 1800을 넘어섰던 지난 18일 여의도 증권거래소 풍경. 주식 열풍의 현장을 묘사하는 소설도 주목 받고 있다. /조선일보 DB



    • 주가 2000 시대 개막을 눈앞에 둔 오늘날 전국에 주식 투자 광풍이 불기 전부터 한국 작가들은 주식 시장을 통해 나타난 새로운 경제 풍속도를 주목해왔다. 소설가 정미경의 장편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2005년)는 고객의 비자금을 은밀하게 관리하는 사설(私設) 펀드 매니저를 주연으로 등장시킨다. ‘장(場)이 롤러코스터를 탄 듯 미친 듯이 오르내린 날이면 흔히들 피를 말렸다고 하지만 그건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돈은 피다…돈은 이 시대의 푸른 혈액이지. 중호는 주먹을 꽉 쥐고 손등에 솟아난 제 혈관을 쓰다듬는다.’

      이 소설은 자본의 21세기적 의미를 정면으로 다룬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이 나라 주식과 파생시장에서 현대판 허생이다. 자본력에서 현저히 밀리다 보니 농간 부리는 걸 뻔히 보면서 속수무책’이라고 인정하거나, ‘그 사람들(조지 소로스나 워렌 버핏)은 탐욕을 위해 금욕을 실천하는 철학적 투기꾼’이라고 정의한다.

      “지금까지 자본은 문학에서 주변부에 속했지만, 저는 이 소설을 통해 당대 사람들의 돈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한 작가 정미경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소액 투자도 해봤는데, 매수 시점은 잘 포착해도 글을 쓰느라고 매도 시점을 놓쳐 크게 손실을 봤다”고 털어놓았다. 소설책 인세로도 그 손실을 보전하지 못했지만, 다행히 영화 판권은 팔렸다고 한다.

      소설가 김영하의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인 ‘보물선’(2004년)은 증권 시장의 ‘작전 세력’이 벌이는 주가 조작의 실태를 냉소적으로 그렸다. 학생운동권 출신의 극단적 민족주의자가 일제 시대의 보물선 인양 사업을 주장하자, ‘작전 세력’은 보물선의 진위 여하를 묻지 않은 채 그 사업에 뛰어든다. ‘보물선 닷컴’이란 유령회사를 작은 건설회사와 합병시켜 상장한 뒤 대대적인 보물선 소동을 선전해 투자자를 모은다. ‘주가총액은 이미 바다속에 가라앉아 있다는 금괴 100톤의 가치를 넘어서고 있었다. 전형적인 폭탄돌리기였다.’ 결국 작전세력은 주식을 팔아 막대한 차익을 거둔 뒤 빠져나가고, 순진한 ‘개미’들은 깡통을 찬다.

      소설가 이청준은 주식투자 경험을 바탕으로 일찌감치 단편 ‘시인의 시간’(1999년)을 발표한 적이 있다. 누나가 건네준 돈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한 어리숙한 시인이 처음에는 재미를 보다가 욕심이 생겨 매도 시점을 놓치는 바람에 결국 휴지조각만 남는다는 이야기다. ‘주식 시장의 개인들은 어차피 얼마쯤의 판 값을 물고 관전석 정도를 사 들어가 진짜 선수들의 게임을 즐기는 구경꾼에 불과했다. 그러니 구경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사각 링 밖의 구경꾼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중략) 그리고 진짜 선수들이 어떤 밀약 속에서 게임을 펼쳐가든 나는 그 게임의 즐거움을 관전료만큼 누리고 나오는 구경꾼으로 만족하고 더 이상의 몰입이나 동참을 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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