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에서 삭제… 비로소 그는 죽었다
검색어로 읽는 오늘의 문학… 3. 유비쿼터스
새로운 삶의 풍속도 냉소적 비판론 많아
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
‘모든 사물에 칩(chip)을! 가정에도 사무실에도 숲 속에도 칩을! 자동차에도 시계에도 냉장고에도 칩을! 유비쿼터스 만만세’(김중혁의 단편 ‘멍청한 유비쿼터스’ 중에서)
오늘날 문학은 정보 통신 환경이 ‘물이나 공기처럼 시공을 초월해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는 ‘유비쿼터스’ 시대에 직면했다. 인간은 이 세상 모든 곳에 편재한 새로운 신(神)의 존재를 향해 진화 중이다. 그런데 젊은 작가 김중혁의 단편 소설 ‘멍청한 유비쿼터스’는 정보통신혁명이 숭배하는 ‘컴퓨터 속의 신’에게 냉소적이다. 완벽한 유비쿼터스를 지향하는 기업체가 스스로 보안 시스템 실험을 위해 해커들을 고용한다. 이 소설에서 해커들은 획일화된 질서를 거부하는 ‘창조적 예술가’처럼 등장한다. 그들은 ‘인간들의 믿음이란 정보를 기반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가 믿음으로 바뀌는 것이다’라며 정보화 사회의 이미지 조작을 비판한다. ‘가장 안전한 컴퓨터는 꺼진 컴퓨터이고, 가장 안전한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는 것이 작가의 유비쿼터스 문명 비판론이다.
디지털 기술이 일상화된 시대에 새로운 삶의 풍속도는 오늘의 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탐구대상이다. ‘검색어 나에 대한 검색 결과로/ 0개의 카테고리와 177개의 사이트가 나타난다/ 나는 그러나 어디에 있는가/ 나는 나를 찾아 차례로 클릭한다’는 이원의 시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수록된 시집 ‘야후! 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가 대표작으로 꼽힌다. ‘새로운 디지털 문화가 삶이 되어버린 세계에서 존재의 처소에 관한 질문’(평론가 이광호)이라는 호평을 받은 시집이다.
‘다섯 번째 직장을 그만둔 뒤부터 B는 자신의 블로그에 거의 매일 글을 올리고 있다. 책을 뒤적거리다가 불현듯 그중 한 구절을 옮겨 적는가 하면 하릴없이 동네를 한 바퀴 돌던 중에 재미 삼아 카메라폰에 담아본 뒷골목 풍경을 새로운 게시물로 올려놓는다…’(은희경의 단편 ‘지도 중독’ 중에서)
한 블로그 중독자를 등장시킨 은희경은 소설 중반부터 종이 지도 중독자를 대립시켜 가상 현실이 아닌 현실의 생태계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재조명한다. 역시 디지털 문명에 대한 비판의식이 깔려 있다.
홍콩영화 배우 장국영이 만우절(2003년 4월1일)에 자살한 것을 놓고 벌어진 네티즌들의 반응을 소재로 삼아 작가 김경욱은 단편 ‘장국영이 죽었다고?’를 썼다. ‘장국영이 죽었단다. 어쩌면 그것은 거짓말인지도 몰랐다. 새로운 자극을 좇는 불특정한 다수의 호기심을 숙주 삼아 온갖 헛것들이 무한 증식하는 인터넷에는 실체 없는 소문들이 유령처럼 떠돌기 마련이다.’
그러나 장국영의 자살이 사실로 밝혀진 뒤 이 소설에 등장한 장국영 마니아들은 인터넷 채팅을 통해 추모식에 얼굴을 가린 채 모이고 각자 다시 밀실로 돌아가서 익명으로 채팅을 나눈다. “가상 세계에서 장국영을 매개로 채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도 아닌, 그래서 실제 세계에서는 있으나마나 한 행동(추모식)이 되고 오로지 가상공간에서만 맥락을 지닐 수 있는 행동을 그린 소설”이라고 평론가 우찬제는 풀이했다.
장경린 시인은 장국영의 죽음을 통해 인기인의 사망 뒤에 늘 발생하는 ‘근거없는 댓글 문화’와 ‘인기 검색어의 냄비 근성’을 풍자한 시를 썼다. ‘죽어서도 마음대로 떠나지 못하고/ 죽어서 더 영화 같은 스캔들을 이어가던 그가/ 인기 검색어에서 삭제된 오늘/ 비로소 그는 죽었다/ 컴퓨터 모니터 전자식 화장터에서/ 끊임없이 일렁이는/ 기호의 바다에서’(시 ‘인기 검색어에서 삭제된 오늘’ 끝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