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외지대… 문학이 보듬는다
  • 검색어로 읽는 오늘의 문학… 1. 고시원
    빈곤층의 ‘쪽방’… 2000년대 들어 시대의 자화상
  • 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
    • 지금은 검색어(檢索語) 시대다. 21세기 한국문학을 꿰뚫는 검색어는? 2000년대 젊은 작가들의 관심영역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검색어들을 찾아간다. 그것은 작품 속에 반영된 우리 시대를 조명하는 다른 방식이다. 시리즈 ‘검색어로 읽는 오늘의 문학’의 첫 순서로 ‘고시원’을 선택했다.

      ‘가족과 헤어진 사람들이 이곳에서 산다/ 가족들을 잊기 위해 산다/ 가족들을 잊지 못해 산다/ 가족들과 영영 헤어지기 위해 산다/ (…)/ 뼛속을 빼고는 관 속처럼 아늑하여라/ 창문 없는 내 방이여’(차창룡의 시 ‘고시원에서’ 부분)

      문학 작품 속의 공간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과거에 없던 새로운 거주 형태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고시원은 2000년대 한국 문학을 앞 시대 문학과 구별 짓는 공간을 대표한다. 고시원은 원래 고시 공부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숙식 시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일용직 중장년 근로자에서부터 취업이 안된 청년 백수들에 이르기까지 살 집이 없어 떠도는 빈곤층의 ‘쪽방’으로 통용된다. 그런 의미에서 고시원은 우리 시대의 소외 지대를 압축한 공간이다.


    • 한국 소설 문법에 당돌한 충격을 던진 소설가 박민규의 단편 ‘갑을고시원 체류기’는 고시원이란 새로운 공간이 배출한 인간형을 제시하면서 사회 현실을 고발한다. ‘1센티 두께의 베니어로 나뉜 칸칸마다 빼곡히 남자나 여자들이 들어차 있다. 그 속에서 다들 소리를 죽여가며 방귀를 뀌고, 잠을 자고, 생각을 하고, 자위를 한다. 생각할수록 그것은 하나의 장관이다.’(소설집 ‘카스테라’에 수록)

      소설가 김영하가 조선일보에 연재 중인 소설 ‘퀴즈쇼’의 주인공 이민수도 고시원에 살고 있다.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청년 백수인 그는 1.5평짜리 골방에 자신의 존재를 맞춰가면서 살고 있다. 창문도 없는 골방이지만 그는 매일 ‘윈도우’에 들어간다. 창문이 있는 방은 더 비싸기 때문에 그는 ‘현실의 창 대신 빌 게이츠의 창, 마이크로 소프트의 윈도우를 선택’ 한다. 햇빛은 못 봐도 인터넷은 매일 검색해야 하는 세대는 가상 공간 속에서 비루한 현실(고시원과 취업난 등등)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 서울 고시원 203호에서 창문을 열면…’이라며 시작하는 신예 작가 김미월의 단편 ‘서울 동굴가이드’는 ‘방음은커녕 날이 갈수록 뛰어난 통음(通音) 효과를 자랑하는 이곳의 널빤지벽 시스템은 오직 서라운드 입체 음향에 익숙한 자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며 고시원의 밀실의 아이러니를 묘사한다.

      70~80년대 한국 소설의 문제적 공간은 아파트였다. 최인호의 ‘타인의 방’이 대표작이다. 80년대에는 양귀자의 ‘원미동사람들’처럼 수도권 신도시가 소설에 등장했고, 90년대 이후 박상우의 ‘내 마음의 옥탑방’이 눈길을 끌었다가 이제는 고시원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아파트와 고시원 세대의 문학 차이에 대해 평론가 신수정은 “선배 작가들의 ‘방’이 개인성의 수호 공간으로 기여한 측면이 있는 반면, 고시원은 일말의 개인성도 수호할 수 없는 다수 인간들의 빈번한 침입을 고발하고 끔찍해한다”며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리 시대 인간 조건의 가장 정직한 현실적 반영이자 점차 개인성의 수호가 얼마나 지난한 과제인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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