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봄-여름 2018 소설 보다
김봉곤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책을 안 읽는 시대라고 한다. 이 말은 적어도 30년 전부터 있어 온 말이다.

정말 책을 안 읽는 시대라고 한다. 이 책을 보니 왠지 그 말이 더 실감이 난다. 예전에 이런 사이즈의 책은 시집 외엔 나오지 않았다. 그것도 바로 이 문지를 콕 찝어 얘기하는 거다. 그런데 소설이 이렇게 나온다는 게 왠지 책 안 읽는 시대에 뭔가의 자구책인 것 같아 마음이 짠하고 안쓰러운 느낌이 든다. 그것도 작가 한 사람이 아니라 무려 네 사람의 작품을 담았다. 게다가 인터뷰까지 들어가 있다. 마치, 이렇게까지 만들었는데 늬들(독자들)이 진짜 안 읽을 거니 하는 것도 같다. 또 가격을 얼마나 착한가? 오지게 착하다.

 

더구나 잡지 형식이다. 격월이나 계간처럼 정기적으로 나온다. 또 문고본으로도 볼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한 30년 전 삼중당 문고와 범우사의 문고본이 생각이 난다. 거의 쌍두마차 아니었나? 그러다 책의 고급화 전략에 따라 거의 사라지다 얼마 전부터 다시 나오는 줄로 알고 있다. 반갑긴 하다. 휴대하기도 좋고. 무엇보다 나 같은 경우 마음은 있으나 소설을 생각 보다 많이 읽지 못해 요즘 작가들이 어떻게 소설을 쓰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런 사람에게 이 책은 부담없이 읽을 수 있으니 좋다. 다른 책을 사는 김에 끼워서 샀다. 7, 8천원만 해도 안 샀을 거다. 

 

좋기는 한데 한편으론 염려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 않아도 작가들이 장편을 잘 안 쓴다고 하는데 더 안 쓰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도대체 신인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지 알 수 없지만 좀 스폰서 제도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책이 좀 안 팔리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문학상이나 타야 겨우 작가를 알아 보는 구조니 이 문학상 한 번 타 보겠다고 난리 브루스를 칠 작가지망생들만 늘려 놔서야 되겠는가? 그런 시상 제도에 의존하지 말고 잘 쓰던 못 쓰던 꾸준히 쓰고 가능성 있는 사람을 발굴 계속 후원한다는 쪽으로 흘러주면 좋겠다. 지난 몇년 간 우리 문학계는 많은 자성과 비판, 질타들이 오고 갔을 텐데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이런 얇은 책을 통해 요즘 작가들의 작품 성향을 알 수 있게 된 건 반가운 일이다. 어떤 독자는 특정 작가에 대해 작품이 나오면 막 환호하고 그러던데 난 뭘 몰라서 그런지 환호할 정도인가? 의아하다. 그러나 누군가는 환호해 줘야할 것이다. 그래야 그 작가가 클 수가 있다. 요즘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이 외국어로 번약되는 경우가 빈번해졌나 본데 반가운 일이긴 하다. 이것도 다 한류의 영향은 아니겠는가? 케이팝은 물론이고 음식, 영화, 뷰티쪽에서 강센데 문학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 있겠는가. 제발 문학에서도 한류 열풍이 불기를 기대해 본다.

 

작년에 김봉곤 작가를 처음 발견했다. 물론 그의 작품을 읽어 본 것은 아니고 무서운 신예 작가라고 치켜 세우던데 그때 그의 책 표지가 제법 심쿵했다.  

 

그런 소설이 있기는 한다. 책에 나온대로 온전히 자신을 재료삼아 쓰는 이야기. 화자가 곧 작가 자신이어서 어디를 갔으며 무엇을 했는지를 시시콜콜하게 밝히는. 나도 한때 습작이긴 하지만 그렇게 써 본 적이 있기는 하다. 쓰는 작가로서는 이것만큼 사실적이고 잘 아는 이야기가 어디 있겠는가만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뭔가 작두를 타는 느낌이다. 과연 이래도 되는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작가는 게이로서 자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귄 이성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작품을 읽으니 오래 전 어느 연예인이 우스갯 소리로 한 말이 생각났다. 그럼 남자가 여자 좋아하지 남자 좋아하겠냐고 했던 말. 그건 자신이 바람둥이로 오해 받는 게 싫어 애둘러 말한 건데 그때는 그런 농담이 통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요즘 똑같은 말로 사람을 웃기려고 한다면 뜨아할 것이다. 요즘은 성적 취향이 고려되는 시대니까. 

 

내용에 보면 화자의 이성 친구 혜인이 갑자기 자신에게 가슴을 밀착시켜 빤히 쳐다보더라는 설명이 나오던데 문득 그녀는 왜 그랬을까 싶다. 적어도 독자인 나는 화자가 신기하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정말 이성에 관심이 없는 거니? 뭐 그런 의아함. 다시 한 번 보라는 의미에서 그러지 않았을까? 성적 취향이야 감히 뭐라고 얘기는 못하겠다만 난 좀 보수적이라서 그런지 자꾸 이성간의 관계가 줄어드는 것이 못내 아쉽다. 이러다 다음 세기 땐 역전이가 돼 오히려 이성간의 관계가 특이해 보이는 것으로 변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그때가 되면 창조주가 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는지 재조명 되는 때가 오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제일 재밌고 의미있게 읽은 건 조남주의 <가출>이다. 나도 읽으면서 얼핏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생각이 났다. 부재로 인해 그 사람을 다시 한 번 재인식하는  건 인간의 자연스런 심리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오히려 아버지의 부재가 가족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게 또 그닥 불행하거나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오히려 하나로 모이는 계기가 된다. 어머니는 평생 살림하느라 이골이 났건만 그래도 가족회의를 위해 가족이 모인다고 먹일 반찬을 해 대는 걸 보면 그것 밖에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그건 거의 본능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평생 뼈빠져라 가정에 헌신했으니 마지막으로 내 멋대로 살아보겠다고 해서 가출한 건데 이게 참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가장의 무거움, 굴레. 자유에 대한 갈망. 그렇더라도 가장이 된 건 오래 전부터 당신 자신의 선택이니 끝까지 지키면 안 되는 걸까? 뭔가 이제까지 그럭저럭 지켜왔던 삶의 질서를 무너트리는 것 같아 짠했다. 하지만 일시적이더라도 그런 기간은 필요한 것 같긴하다.

 

이내 더 잘 된 건 가족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가출로 인해 그동안 억압된 것들이 뭔지 모르게 자유로워지면 새로운 질서가 생기려고 하고 있다. 우린 그 누군가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아도 그 누군가가 없이도 잘 사는 존재들이다. 무엇보다 우린 누군가 가출하면 클 나는 줄 알고 일탈이라며 죄인, 부적응 뭐 이런 이미지를 덧씌우기 좋아하는네 여기선 오히려 긍정적인 면들이 보인다. 그건 또 아버지가 어딘가 살아 있다는 수신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전혀 찾을 수 없다면 그런 긍정적인 변화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또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새들은 죽을 때가 되면 무리를 떠나 홀로 있다 죽는다고 하던데,  자신이 죽을 때 남아 있는 가족들이 사별의 슬픔을 덜 느끼게 해 주려면 가출도 괜찮은 방법이겠다 싶은 것이다. 나의 죽음으로 인한 부재를 가족들에게 미리 학습시켜 주는 것이다.  우린 애정의 집착을 떠나 그 사람이 그곳에 잘 있겠거니 하는 믿음을 가질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김혜진의 <다른 기억> 역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사람에 대해 믿는 것이 정말 올바른 믿음인 건지, 소문과 추측만 가지고 그 사람을 그렇게 보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그 사람은 이렇게 반듯하고 흐트러짐 없고, 힘든 상황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려고 하는데 그것과 상관없이 변절자, 악덕업자, 천하의 죽어 마땅한 사람으로 되어 있으니 말이다. 어떤 게 그의 진실된 모습인지 시간만이 그 진실을 밝혀 주겠지? 그렇지만 그렇게 몰아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이 등장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 그 질서에 순응 못하면 짤리거나 그만두는 건 확실히 폭력적 상황이란 생각이 든다. 세상은 사람들에게 그리 관대하지 않다는 걸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흘러 간다는 것을 또 한 번 각인시켜준 소설이다. 또한 세상의 가짜 뉴스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나약한 인간을 잘 묘사한 것 같아 좋았다. 내가 좋다고 말하는 건 생각할 꺼리를 줘서 좋다는 거다.

 

정지돈은 나에게 언제나 그렇듯 잘 이해가 안 되는 작가다. 그러다 어느 무가지에 짧은 소설을 연재하는 것을 보고  꽤 색다른 느낌이었다. 작가가 이렇게도 쓰는구나 하는 새로운 자각 뭐 그런. 그러다 이 책에 실린 그의 작품을 읽고 예전에 읽었던 <내가 싸우듯이>이가 생각이 났다. 보통 작가들은 현실에서 문제 의식과 부조리함 뭐 그런 걸 끄집어 내지 않나? 그런데 이 작가는 무슨 문화계 르포르타주 형식이라고나 할까? 일반인들이 문화계 전반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니 이렇게라도 접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면 있는 거지만 난 왠지 작가의 특이함이 긍정도 부정도 못하겠다. 하나 확실한 건 난 이 작가와 친해지기는 힘들겠구나 하는 것. 

 

그러지 않아도 그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이 그것을 뒷받침 해 주었는데, 인터뷰어인 김신식(이 사람은 또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문학평론가인가? 아님 출판사 편집 일을 하나? 이런 거 정도는 밝혀주면 좋을텐데)이, '...지돈 씨가 염두엔(이거 오타 같다. '염두해' 아닌가?) 둔 향후 계획을 공유 해'달라니까 그가 그런 말을 한다. "미래를 생각하진 않습니다. 너무 무섭기 때문입니다." 한다. 그래도 이 작가가 어디까지 가나 궁금하긴 하다.

 

얼마 전, 2019년 봄-여름호가 나왔나 본데 기회있는대로 사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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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3-18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책 읽기를 하고 계시는군요.

김봉곤 작가의 출현이 어쩌면 문학계에 새 바람을 불게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게이들의 사랑이야기 자체도 새롭지만 작가 자신이 게이임을 드러냄 또한 흔한 일이 아니라서요.
낙서처럼 막 쓰는 듯한 글 스타일이 노래로 말하면 꼭 랩을 듣는 듯하더군요. 저는 적응이 잘 되지 않더군요. 김봉곤의 <여름, 스피드>를 읽고 나서 든 생각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stella.K 2019-03-18 14:4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김봉곤은 좀 적응이 안 되더군요.
무슨 사소설이라고나 할까?
물론 가끔 사소설이나 자전 소설이 뭐가 다를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소설을 쓰는 작가의 입장에선 혹 할만하다 싶기도 해요.
이런 소설도 먹히는 세상이 되었구나 싶어서.
솔직히 저도 이렇게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하거든요.
역시 사람은 간사한 것 같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2019-03-18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8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