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만 보면 물어뜯고 싶어하는 강아지처럼 내가 쓴 글만 보면 뜯어고치려는 본능으로 문장을 고치고 제목을 바꿔가며 세번째 소설집의 교정을 보던 어느 날, 하필 그때의 다짐이 떠올라 얼굴 붉히며 무안한 웃음을 지었다. 곧 죽어도 폼에 살고 폼에 죽으려던 그 푸른 시절엔 몰랐다. 내가 꿈꾼 그 세 권의 소설집을 얻기 위해서는 여섯 권, 아홉 권,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분량의 소설을 써보아야 한다는 것을.
여기 실린 글을 쓰는 동안, 세월의 변죽만 올리는 맹문이들을 보다 못해 저 위에 계신 분이 마련한 '인생 집중탐구 단기속성반'에 들어야 했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낸 적도 여러 번있었다. 내속에 내가 그렇게 많았다니! 진창길을 걷듯 버거웠지만, 그 길을 걷지 않았더라면 볼 수 없었을 것들에 겨우 눈을 뜨게 되었다. 고맙다. 그래? 그럼 한번 더 해볼까. 하고 물으신다면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뒷걸음질치겠지만. -254~2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