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보다 별로다. 괜찮았다. 좋았다. 말 많았던 <신과 함께>를 보았다.

이 영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난 좋게 봤다. 글쎄, 생각 보다 별로란 말을 염두해 둔 덕분이었을까? 그렇게 생각하기엔 썩 괜찮은 측면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난 우리 영화가 아직도 건재함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이 영화는 그 영역을 한층 확장시켜 나간 것 같아 좋았다. <전설의 고향>이나 <구미호> 같은 호러 영화나 만들 줄 알았지 본격 저승 세계를 다룬 적이 있었나? 내 기억엔 없지 싶다. 이는 주호민 작가의 원작 웹툰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감독이 누군가 했더니 <국가대표>, <미녀는 괴로워>등을 만든 김용화 감독이다. 그런 일련의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면 선택하는데 후회할 것 같지는 않다.

 

영상이 다소 만화적이긴 하지만 풍부한 상상력과 CG가 그럴 듯하다. 얼핏 주인공이 자홍 역을 맡은 차태현 같기도 하지만, 사제복 같은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이승과 저승을 왔다갔다 하는 하정우에 좀 더 비중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하정우를 많이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옷을 그렇게 입으니 쫌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   

 

사제복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원래 복식사에서 보면 치마는 처음 남자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게다가 그건 카톨릭 신부들의 상징이기도 하다. 나도 어렸을 때 한때는 카톨릭 신자였던 관계로 사제복을 입은 신부를 자주 볼 수가 있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내가 다녔던 성당의 주임 신부님이 배가 적당히 나온 할아버지 신부님이였다. 그런데도 사제복을 입으면 배가 가려지면서 좀 멋있어 보이기는 했다. 그러니 젊고 풍채가 좋고 지적인 신부님이라면 어쩔뻔 했겠는가. 성당 미사실 한쪽 귀퉁이의 속죄소에 여신도들이 줄을 서지 않았을까?ㅋ

 

앞서도 말했지만 이 영화는 주호민의  웹툰<신과 함께>를 영화화한 것이다. 제목만 언뜻 들으면 영화 <신과 함께 가라>가 생각이 난다. 나는 이 영화를 두 번쯤 봤는데 물론 서로 전혀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 영화를 아직 안 봤다면 한번쯤 봐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미 봤다면  말나온 김에 한 번쯤 더 볼 생각이 들 정도로 잘 만든 영화다. 물론 두 영화는 아무런 연관성은 없다.

 

오히려 영화를 보다보면 데이비드 핀쳐 감독이 쵸서의 캔터베리 서사사에서 7대 죄악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던 <세븐>이 생각나기도 한다. <신과 함께>도 7가지 죄악이 나온다. 그런 점은 같지만 <세븐>은 서양식으로 인간의 죄악을 다루었고, <신과 함께>는 동양식으로 다루었다. 또한 <세븐>은 영계를 다루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실적이며 그로테스크한 것이 갈수록 포악해지고 죄악에 둔감한 인간의 죄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수작이다.

 

주호민 작가는 언제 또 우리 신화를 탐독했을까. 그도 그렇지만 감독이 각본도 맡았는데 원작 그대로 하지않고 자기식의 새로운 인물을 창조했다. 이를테면 원작에서 주인공의 직업은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영화에선 소방관으로 좀 더 역동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불에 갖힌 소녀를 구하다 사고로 죽어 저승에서 재판을 받는 것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이야기의 설정 자체도 흥미롭다. 저승법에 의해 49일 동안 7가지 죄악에 의거한 재판을 한다.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  이렇게 7개의 지옥에서 7번의 재판을 무사히 통과한 망자만이 환생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 게다가 염라대왕은 저승차사 세 명, 강림(하정우)과 혜원맥(주지훈), 덕춘(김향기)에게 천 년 동안 49명을 환생시키면 그들 역시 인간으로 환생시켜 주겠노라고 한다. 그러니 19년만에 나타난 마지막 49명째가 될지도 모르는 소방관 자홍(차태현)에게 거는 기대는 상당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최승이 단테의 <신곡>을 소설로 풀어 쓴 3부작이 생각났다. 지옥과 연옥에 관한 부분은 읽었지만 천국은 책만 사 놓고 아직 읽지 못한 것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리고 역시 <단테의 지옥여행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테의 지옥여행기>도 충분히 무섭긴 하다. 특히 구스타브 도레가 그린 삽화가 내용의 으스스함을 더한다. 물론 영화도 충분히 지옥답다. 그 무서운 지옥을 어떻게 보여주느냐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어차피 이승은 물질계지만 지옥은 사후 세계다. 죽어보지 않고서야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그곳을 갔다오거나 말거나 영계는 우리의 관심사인 건만큼은 사실이다. 물론 어떤 사람은 나는 사후세계에 대해 관심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면 뭐에 관심이 많아서 보게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죽고 난 후 그 영혼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있지 않을까? 이건 아무래도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임엔 틀림없는 것을 것이다.  

 

내가 이 영화에 꽂힌 것도 오래 전 나의 아버지가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는 오빠가 통과했을지도 모를 곳에 대한 상상 때문이기도 하다. 나 역시 죽으면 통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내세관이 기독교적 관점과 동서양의 그것이 조금 다르다. 기독교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가리지만(물론 그게 다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선 살아있을 때 얼마나 착하게 살았느냐에 촛점을 맞춘다. 아무래도 이런 스토리는 권선징악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하나님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이런 스토리 때문에라도 세상이 조금이라도 착해진다면 바라건대 이런 이야기는 자꾸 나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너무 그래도 관객들은 식상해 하겠지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진행 방식도 마음에 든다. 원래 이야기는 이건가 싶으면 저것이고, 저것인가 싶으면 새로운 무엇이 나오는 것이 좋은 이야기 방식이다. 그건 충분히 흥미롭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보게 만든다. 세 명의 차사는 저승 재판에서 자홍의 옳음을 계속 증명하고 응원해야 하지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자홍 역시도 까 보면 잘한 것이 하나도 없는 죄인이다. 그래서 판관들은 할 수만 있으면 자홍의 죄를 들추어 그를 지옥으로 보내고 싶어한다. 그래서 벌의 구렁텅이에 빠질 것만 같지만 또 그럴 때마다 옳음이 증명되 극적으로 구제를 받곤한다. 만화 같지만 흥미롭다.

 

          

 

그런데 아무래도 영화를 짠하게 하는 건 자홍의 동생이 죽기 전 어머니와의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모르긴 해도 이제 대표 어머니 역은 나문희에서 자홍모 역을 맡은 예수정으로 넘어간듯도 하다. 이 배우는 맡는 역마다 약하지만 강한 어머니상을 맡는다. 이 영화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어찌보면 가장 한국적인 어머니상을 보여주지 않나 싶기도 하다. 

 

영화 전편에 흐르는 것도 자홍이 죽기 전 어머니를 뵙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책이 깔려있다. 무엇보다 이 어머니는 말을 하지 못한다. 게다가 첫째인 자홍뿐만 아니라 곧이어 둘째 아들도 총기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두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처량함을 예수정 배우는 잘도 연기했다. 그러니 그런 어머니를 두고 이승을 떠난 두 아들의 마음은 또 어떻겠는가? 가끔 꿈에 죽은 사람이 보이곤 하는데 이를 두고 현몽이라고 하는가 보다. 둘째 아들 수홍이 어머니를 위로한다고 꿈에 나타나는데 그때 어머니의 혀가 풀리고 모자가 얘기를 하는데 순간 뭉클했다. 나도 가끔 아버지와 오빠가 꿈에 보고 울다가 깨곤 하는데, 현몽이란 정말 있는 걸까? 

 

관객을 안타깝게 하는 건 자홍이 죽기 전 언젠가는 누룽지 기능이 되는 전기밥솥에 편지를 넣은 어머니를 위한 선물을 전하지 못한 것인데 그걸 보면서 역시 어머니는 밥으로 대비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우리나라 인사법 중에, 밥은 먹었냐, 밥은 먹고 다니냐 뭐 이런 것인데 그 질문을 남자가 할 땐 밥을 사 주겠지만, 여자 그것도 어머니가 하면 그 어머니는 꼭밥상을 차려온다. 못 먹고, 못 살아서라고 생각했는데 오래도록 그것이 지배하는 걸 보면 그것 이상의 뭔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밥은 모성의 하나로 대비되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물론 여기선 누룽지지만. 자홍모는 누룽지를 잘 만드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그것을 자홍은 전기밥솥이 대신하길 바란다. 역시 인간이 기계를 이기지 못하는 것 같다. 또한 영화든 드라마든 모성 이야기를 하면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것도 있다.   

 

영화는 정말 꿈 같은 것이긴 한가 보다. 자홍이 7가지 심판을 다 통과를 해서 드디어 환생 티켓을 따낸 것 같은데, 역시 염라대왕은 그냥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거 웬만하면 세 명의 저승차사에게 환생할 기회를 줄 일이지 후편을 예고하며 끝나니 역시 이번 생에서도 환생은 어려운 듯 싶다. 기대가 되긴 하는데 이런 거라면 16 또는 8부작 정도하는 시리즈물로 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환생이란 게 참 그렇긴 하다. 어쨌거나 그렇게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 환생을 한 누군가는 이번 생을 살고 있다면 세상은 조금 나아져야 할 것도 같은데 여전히 죄에 매여살고 있지 않은가? 이런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 보다 그냥 극락왕생이 낫지 않나? 저 저승차세도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만할 이유가 있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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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4-21 1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인 가구 인구가 늘어나도 ‘어머니=집밥’으로 연결된 모성을 강조하는 프레임은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가정’에 대한 향수를 소환하는 소재로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쓰일 거예요.

stella.K 2018-04-21 13:27   좋아요 0 | URL
그건 뭐 거의 이야기의 법칙이지.
그런 엄마가 또 좋은 엄마잖아.
자식이 잘못하고 들어와도 암말 않고 밥상 차려
밀어 주면 이 세상 다른 사람은 다 욕해도
엄마만은 나를 믿어주는구나. 그래서 세상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것 아니겠어?
결국 내편, 나에게 힘을 주는 사람의 상징이 엄마라서 그런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