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부터 112년전 1910년 8월 29일은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가 국권을 상실했던 '경술국치일'이었다. 마침 이날 나는 안중근 의사의 거사를 담은 이 책을 읽었다.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건 어릴때 학교에서 배워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 3명의 자녀가 있었다는 것. 그것도 막내인 안준생은 그가 집을 떠나고 난 뒤에 아내가 임신 사실을 확인, 출산하여 아버지를 평생 만나보지 못하고 쭉 살았다는 것을 이 소설로 알게 되었다. 김훈 작가는 안중근의 시간을 되살려 냈지만 그의 아내 김아려와 자식들의 시간은 되살려내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그 부분이 아쉬웠다. 그저 주요 인물들이 워낙 말이 없음으로 '퉁 친'느낌이었다. 남편의 거사 후에 그녀와 자식들의 삶은 그야말로 고단했을 거다. 사건 직후 당시 술렁이는 분위기의 향방을 읽기 위해 밀정들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데다 먹고사는것은 녹록치 않은 때였는데 홀몸도 아니고 어린 자식들을 줄줄이 데리고, 살던 곳을 떠나는 이상으로 살던 조국을 등지고 떠나는 인생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남편의 조국을 위한 거사 못지 않은 파란만장함이 그 안에 있었을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결국 그녀는 영영 이 땅에 돌아오지 않았다. 의지가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자녀들은 아버지의 뜻과는 상당히 어긋나보이는 삶을 살았다. 누가 이들을 탓할 수 있을까.
사형선고 뒤에 죽음을 앞두고 덤덤했던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시간들은 울지 않고 읽기가 힘들었다. 멀쩡한 가족들을 없는셈 치고 돌아설만큼 조국을 짓밟고 야욕을 키워가던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저항은 그에게 피할 수 없는 사명같은 것이었다.
이토를 죽여야 한다면 그 죽임의 목적은 살殺에 있지 않고, 이토의 작동을 멈추게 하려는 까닭을 말하려는 것에 있는데, 살하지 않고 말을 한다면 세상은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세상에 들리게 말을 하려면 살하고 나서 말하는 수밖에 없을 터인데, 말은 혼자서 주절거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대고 알아들으라고 하는 것일진대, 그렇게 살하고 나서 말했다해서 말하려는 바가 이토의 세상에 들릴 것인지는 알기가 어려웠다. - P89
만월대에서 찍은 이토의 사진은 벼락처럼 안중근을 때렸다.벼락이 시야를 열었다. 몸속의 먼 곳에서 흐린구름처럼 밀려다니던 것이 선명한 모습을 갖추고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토의 몸이 안중근의 눈앞에 와 있었다.시간이 없구나. 연추를 떠나자, 운신할 수 있는 자리로가자 내 몸을 내가 데리고 가서 몸을 앞장세우자. 몸이 살아 있을 때 살아 있는 몸으로 부딪치자.... - P97
-글은 아는가?
-조금 안다.
-평소에 존경하는 사람이 있는가?
-없다.
-평소에 적대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한 사람 있다.
-그게 누구인가?
-이토 히로부미다.
-왜 이토 공작을 적대시하는가?
-그 이유는 많다. 지금부터 말하겠다. - P189

왼쪽부터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 백범 김구, 안중근 의사
출처: 오마이뉴스'그런데 말입니다, 안중근은 왜 이토를 저격했을까요'
이런 수많은 희생(언급 되어지지도 않는 희생까지...). 그야말로 피, 땀 눈물로 지켜진 이 나라에서 이장이란 사람이 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죠수(야마구치)출신인 아베의 죽음을 두고 이런 말을 했었다. (지난 7월 12일)
"아시아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헌신한 고 아베 신조 전 총리님의 명복을 빕니다. 유족과 일본 국민들께도 깊은 위로를 표합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국과 일본이 앞으로 긴밀히 협력해 나가길 바랍니다." -P.100 , 한승동,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언론에서 앞다투어 시끄러웠던 반응을 퍼다올렸다. '꼭 저렇게 말해야 했을까?' 아베의 정부 대변인이었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했었다. 아베가 아시아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헌신했었나?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로 회귀하고 싶어 개헌에 올인하는 등 야욕을 키우고 영유권 다툼을 이어오지 않았나?
어쩌다보니 아베 이야기까지 하고 말았다. 그 많은 희생이 이 땅에 묻혀 오늘이 있는데도 누군가는 자기 자리에 걸맞는 역사인식이 부족해 민폐를 끼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근현대사 공부에 너무 소홀하다.
ㅡ내가 이토를 죽인 까닭은 이토를 죽인 이유를 발표하기 위해서다. 오늘 기회를 얻었으므로 말하겠다. 나는 한국 독립전쟁의 의병 참모중장 자격으로 하얼빈에서 이토를 죽였다. 그러므로 이 법정에 끌려 나온 것은 전쟁에서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객으로서 신문을 받을 이유가 없다. 이토가 한국 통감이 된 이래 무력으로 한국 황제를 협박하여 을사년 5개 조약, 정미년 7개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것을알기 때문에 한국에서 의병이 일어나서 싸우고 있고 일본 군대가 진압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일본과 한국의 전쟁이라 하지않을 수 없다. - P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