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까지 쓰고 나는 생각했다.
데비, 나는 다시 잘못된 기차에 탔어.
- P50
네가 어느날 나에게 이어폰을 선물했어. 갑자기. 나는 고맙게 받았지 그런데 며칠 지났을때 너는 미안해하며 이어폰을 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어. 나는 왜그랬을까 억울한 마음이 들었어. 그게 뭐라고...느닷없이 똥고집을 부렸지. '치사하게 줬다 뺐느냐'고 그런 뉘앙스로 너에게 갚아주었던거같아. 바로 얼마전 너가 남자친구와의 문제로 한창 힘들어할 때 몇시간씩 들어주던것도 끄집어냈어. 그러려고 들어준게 아니었는데 나는 늘 너를 좋아했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아파하는게 나도 아파서 들어준거였는데 마음에도 없는 소릴 했었지. 내가 스스로 나의 선의를 망쳐버린거야. 이어폰 그게 뭔데 그거 얼마나한다고. 내 소중한 친구에게 못되게 굴었을까. 그때 싸우고.ㅡ 아니 일방적인 투덜거림이었지. 너는 단한번도 내게 화를 낸적 없는 여리고 여린 친구였으니까.ㅡ한번씩 너가 떠올랐어. 처음 만났을때. 너는 계단에서 울고 있는 나에게 따뜻한 메모를 건네주고 함께 옆에 있어준 친구였는데 내가 왜그랬을까. 너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 왜 물어보지 않았을까. 혹시 그 사람이 너에게 선물한 이어폰이 아니었을까. 뒤늦게 그런 생각을 했어.너는 충분히 그런 이유가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친군데 왜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을까. 바보같은 나... 폰에서 니 번홀 지워버린건 난데 그것 때문에 결국 애태운것도 나더라. 너가 그렇게 멀리 이사가지 않았다면 좋았을텐데. 잘 지내고있니? 혹시 그때 그 남친과의 일로 더 힘들어지진 않았을까 그 사람과 다시 잘 만났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과 결혼했을까. 바라던대로 선교사가 되었을까. 웃음소리가 개구장이같던 친구야 어리석은 친구였던거 미안해.
ㅡ나의 0순위였던 너에게. 닿지 못할 편지
그때 우리는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곤 했으니까. 심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P31
최은영의 단편소설을 읽다가 옛 친구에게, 가지 않을 편지를 썼다. 학교에서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들을 배우지 못한다. 배우지 못하는 것 중에는 '자신의 마음을 읽는 방법'도 있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우리가 배우는 것들은 모두 '자신에 대한 공부'를 뺀 나머지란 생각도 든다. 모든 에너지를 '나'를 뺀 세상 공부에 할애하느라 자신을 읽는 법은 정작 배우지도 알지도 못하는게 아닐까? 그래서 진심을 전하지 못하고 진의를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이'마음'이란 것을 자기식대로 함부로 판단하고 제멋대로 규정하는 폭력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에 읽은 '해러웨이 선언문'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자주 떠올랐다.
나라는 사람은, 2차 대전 이후의 미국 헤게모니와 마찬가지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거대하지만, 그 속에서 구축된 우정,정치,연애사처럼 피부에 와닿는 경험으로 실감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입니다.p.253 '해러웨이 선언문'
사랑한다는 것은 세속적으로 되는 것이고 소중한 타자성 및 타자를 의미화하는 것에, 다양한 규모로 지역적인 것과 전 지구적인 것의 층위 속에, 점점 더 뻗어나가는 그물을 통해 연결된다는 것을 뜻한다. p.215 '해러웨이 선언문'
이 세계는 개개인이 존재하고 이후에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전 지구적 생태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관계를 맺고 사랑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은 치열한 다툼과 모순 속에서 나와 이 세계를 이해하는 끊임없는 과정이기도하다.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지만 우리는 수많은 관계 안에서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나와 세계를 점차 배워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