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본다는 것은 한순간 그 대상을 향한, 그 대상에대한 호기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불행에 빠지는 행위이다. 누군가를 바라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그 시선에 합당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P69



마음에 꽂히는 문장들이 너무 많았다. 프랑스의 식민지당시 베트남의 사덱과 메콩강을 오가는 이 작품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짧지만 강렬한 137페이지로 공쿠르상을 수상했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현실에서 15세 소녀와 성인남자의 사랑을 이들의 사랑을 읽듯 바라보긴 쉽지 않을 것 같다. 작품 안에서도 여러 시선들의 따가운 눈총과 질타가 이어진다. 그럼에도 소녀가 중국인 남자에게 빠져든 것은 어머니로부터의 도피,도발의 측면이 강하게 작용한다. 처음에는 분명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내 생(生)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하지않는다. 거기에는 중심이 없다. 길도 없고, 경계선도 없다. 광활한 장소가 있으면 사람들은 누군가가 그곳에 있으려니 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 P14



개인적으로 제인 마치의 영화를 좋아했기에 영화로 먼저 '연인'을 경험했었다. 이제 책으로 읽어내니 영화 '연인'에서 제인마치의 캐스팅은 '신의 한 수'나 다름 없었다는 걸 알았다. 그녀의 미숙하지만 강렬한 욕망과 그 안에 깃든 고요한 슬픔을 제인마치가 무척이나 잘 살려냈다. 



하늘에서는 순수하고 투명한 폭포처럼, 침묵과 부동의 물기둥처럼 빛이 쏟아져 내렸다. 대기는 푸르고, 손에 잡힐 듯했다. 푸른빛, 하늘은 그 반짝이는 빛으로 끊임없이 맥박 치고 있었다. 밤이 모든 것을 비추고 있었고, 눈이 닿는 곳까지 강의 양쪽으로 펼쳐진 들판을 온통 비추고 있었다. 밤은 하루하루 새로웠다. 매 순간마다 새로운 밤이라고 할수 있을 정도였다. 밤의 소리는 들개들의 소리였다. 그들은 신비를 향해 짖어 대고 있었다. 그들은 밤이 만들어 낸공간과 시간이 완전히 소멸될 때까지.-P98


문장을 읽어가다보면 나의 소녀시절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간다. 그 시절에는 각자가 자신만의 세계가 부실하게나마 형성되기 시작한다. 나를 둘러싼 인생들로부터의 이해와 불이해가 공존하고 세상은 너무 두려운 동시에 내 안에서 엇비슷한 가능성이 꿈틀댐을 느낄때도 있다. 프랑스인 백인 소녀가 이국의 땅에서 다른 인종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매일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그 나이의 불안에 겹쳐 적지않은 혼란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가난한 엄마는 홀로 남매들을 키우느라, 혹은 그로인해 드러난 잠재된 기질로 인해 어딘가 '미쳐' 있다. 그런 엄마로 부터 가장 큰 기대를 받는 큰 오빠는 망나니로 돈을 벌지 못할 뿐 아니라 재산을 조금씩 탕진한다. 작은 오빠는 큰 오빠의 기에 눌려 살아간다. 그런 상황에 소녀는 엄마가 사준 중절모와 구두를 신고 외출한다. 그리고 운명처럼 그 남자를 만난다.


그때 나는 보았을 것이다. 남성용 모자 밑에서, 볼품없이 야윈 얼굴이, 어린 마음에 결점처럼 여겨지던 그 모습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야윈 얼굴이 자연의 숙명적이고 잔인한 현상을 받아들이는자세를 떨치고 그와는 전혀 반대로 된 것을, 다시 말해, 기질(氣質)이 선택한 어느 달라진 모습이 된 것을, 불현듯,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불현듯, 나는 마치 다른 여자를보듯이 나 자신을 보았다. 그 여자는 밖에서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내맡기고, 모든 시선에 자신을 드러내고, 도시와 도시를, 길과 길을 싸돌아다니며 자신을 굴리는, 욕망에 자신을 맡기는 여자 같았다. 나는 그 모자를 샀고, 그후로 줄곧 쓰고 다녔다. 나는 그 모자, 나를 온통 사로잡은 그것을 내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 P20



뒤라스의 문체는 참 독특하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껏 읽어왔던 어떤 작가와도 비교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서술방식은 기억을 따라 저쪽으로 갔다가 다시 이쪽에와서 마무리 짓는 식이다. 하지만 읽다보면 적응이 되어 그녀의 방식대로 잘 따라가며 빠져든다. 이 자전적 이야기를 읽으며 느꼈다. 조금 잔인할 수 있겠지만 재능있는 작가에게 슬픈 경험과 고독은 은총일 수 있겠다고. 다만 그 과정에 작가는 으스러지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글로 써 내야 완성된다. 이렇게 아름답게 활자화된 기억이.



그는 잠깐 뜸을 들인후 이렇게 말했다. 그의 사랑은 예전과 똑같다고, 그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며, 결코 이 사랑을 멈출 수 없을 거라고, 죽는 순간까지 그녀만을 사랑할 거라고.- P137



















다른 작품들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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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2-06 14: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말 문장이 매력적이네요~♡
뒤라스 한 권도 안 읽어봤는데 연인으로 시작해봐야 겠습니다.ㅎ

미미 2022-02-06 15:02   좋아요 4 | URL
어느 순간부터 손에서 거의 놓질 못했어요~♡ 슬픔가운데에 명문장을 이곳저곳 쏟아냅니다. 그녀 말따라 ‘투명한 폭포‘처럼요ㅎㅎ

독서괭 2022-02-06 15: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연인> 사놓기만 했는데.. 올해는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어떤 작가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문체라 평하시니 더 궁금하네요!

미미 2022-02-06 15:44   좋아요 3 | URL
마침 제가 읽은 작가중에 비교대상이 없었을 수도 있어요.^^; 초반에 조금 의아했는데 읽다보니 매력있었습니다~♡ 괭님은 어떠실지 궁금해요!

페넬로페 2022-02-06 15: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로만 접했는데 뒤라스의 문장으로도 읽고 싶었어요^^
본문에 있는지 모른겠는데 영화의 끝장면은 중국인 남자가 프랑스에 올 기회가 있어 나이든 나에게 전화하는 거였는데 그것 보고 눈물이 나더라고요~~
뒤라스의 문장은 매력있어요^^

미미 2022-02-06 16:09   좋아요 3 | URL
네!ㅎㅎ책에도 오랜 시간 뒤 그 사람이 전화해요. 저도 눈물났어요! 영화도 다시 보려고요~♡ 곱씹어 읽고싶은 매력적인 문장이죠^^*

새파랑 2022-02-06 16: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영화도 보셨군요~! 전 안봤는데 책을 읽고 나서 한번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전 뒤라스의 책을 네권 읽었는데 <연인>이 가장 좋더라구요 ㅋ <히로시마>랑 <여름비>는 좀 많이 어려웠습니다 😅 미미님의 소녀시절이 궁금하네요~!!

미미 2022-02-06 16:31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 영화 잘 안보셔도 이 영화는 한번 보시면 반하실지도 몰라요ㅎㅎ
네 권이나 읽으셨군요! 저도 두 권정도 가지고 있는데 어렵다니 감안하고 읽어야겠어요! 저 생긴건 청순but말괄량이였어요 히히 😎

햇살과함께 2022-02-06 17: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는 고등학교 때 반 친구가 부모님이 이 영화 비디오 빌려 보셨는데 주말에 집에 안계시다고 해서 토요일 방과 후에 그 친구네 집에 7-8명이 우르르 몰려가서 본 기억이~ 친구네 거실에서 암막커튼 치고 숨죽여 본 영화네요. 금지된 것을 몰래하는 짜릿함과 함께 저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영화입니다 ㅎㅎ 나중에 읽은 책도 넘 좋았구요~

미미 2022-02-06 18:00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그러실만해요!! 저도 그런기대를 하고 봤는데 생각보다는 야하지 않아 아쉬?웠어요😆 그래도 분위기가 강렬하긴하죠! 책 읽어보니 영화도 더 좋아집니다!!

햇살과함께 2022-02-06 18:50   좋아요 2 | URL
ㅋㅋㅋ 지금 보면 이게 왜 청불?

프레이야 2022-02-06 18: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섯 권이 겹치네요. 연인의 제인 마치는 정말 매혹적이지요. 가엾기도 하구요. 모데라토 칸타빌레와 히로시마 내사랑도 영화 좋습니다.^^

미미 2022-02-06 19:09   좋아요 2 | URL
제인 마치 완벽한 캐스팅같아요!! 여자인 제가 보기에도 넘 매혹적이예요~♡ 최근 사진을 찾아봤는데 여전히 곱더라구요. 오~! 영화 다 찾아봐야겠어요😄

레삭매냐 2022-02-06 2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보겠다고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결국 못 읽고 반납
한 기억이...

영화 스틸컷은 정말 고혹적
이네요. 영화로도 한 번 보
고 싶네요.

미미 2022-02-06 20:23   좋아요 1 | URL
그럼 레삭매냐님도 영화에 먼저 도전해 보세요. 책 읽으며 떠올릴 이미지가 있어 도움이 꽤 되었어요^^*

저도 차일피일 미루다 이번에 읽었거든요. 서술형식이 좀 독특한데 이해되는순간 흥미롭게 읽힙니다. 해설에 담긴 내용들까지도 좋았어요!

가필드 2022-02-06 2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봤던 영화였는데 책은 아직 안 읽어봤아요 미미님의 글과 주옥같은 문장들을 공유해주시니 읽어싶어여

미미 2022-02-06 21:52   좋아요 2 | URL
저도 영화를 본 상태로 읽었는데 문장들이 참 좋더라구요. 조금 난해한 느낌은 있어요. 나에 대해 이야기하다 엄마에 대해 서술하는 식이라 헷갈리기도 해요. 어머니와 가족들의 무게로 소녀가 힘겨워했는데 혼란스럽던 감정이 글에 고스란히 담겨있어요^^*

책읽는나무 2022-02-06 21: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연인이 뒤라스의 작품이었군요?
전 영화만 봤었어요. 고등때 연인 영화가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닌가? 암튼 비디오로 나왔을 때 친구들 집에 불러모아 놓고 짠~하고 틀어서 보다가 그 베드씬 부분에서 다들 침을 꼴깍 삼켰던 기억이 떠오르네요ㅋㅋㅋ
그래서 전 그 영화가 살짝 에로물로 기억했다가 작년에 넷플에서 다시 봤는데 많이 슬픈 영화였단 걸 알았어요^^
책으로 다시 한 번 읽어봐야 겠네요!!
제인 마치의 눈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요^^

미미 2022-02-06 21:58   좋아요 3 | URL
나무님도 그렇게 보셨군요!ㅋㅋㅋ도대체 야한영화볼때 침은 왜나오는걸까요ㅋㅋㅋㅋㅋ 저도 영화만 봤을때 제인 마치에 반했었는데요 책을 읽고보니 다시 영화를 보면 이미지 넘어 깊은 감정선이 더 와닿을듯해 기대가돼요
책도 굉장히 얇아요 나무님 초반 난해한 글의 느낌에 적응하심 쑥~읽힙니다.^^*

햇살과함께 2022-02-07 09:52   좋아요 3 | URL
나무님도 저처럼 고딩 때 친구들이랑 보셨군요~ 그 당시 이 영화 소문이 엄청났죠~ ㅎㅎ

책읽는나무 2022-02-07 10:14   좋아요 3 | URL
전 제목만 보고 로맨스 영화인 줄 알고..^^
제인 마치가 꼭 빨강머리 앤처럼 보여서 모자 쓰고, 양갈래 머리에~^^
기대하고 친구들을 불러 모았었는데....쩝~
서로 민망해서 다 못보고 껐죠!!
대학 들어가 어떡하다가 나 친구들이랑 연인 영화 봤다니까 남자애들이 에로 영화 봤다고 엄청 놀리더라구요. 그래서 전 그 영화가 그런 줄 알았었네요ㅋㅋㅋ
남자들 세계에선 그런 영화로 인식되어 있나 봐요?

Yeagene 2022-02-06 2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책이랑 영화 다 보긴 했는데 책은 정말 기억이 거의 나질 않네요^^;;; 미미님 좋다고 하시니 다시 읽어볼까 봐요♡

미미 2022-02-06 23:26   좋아요 2 | URL
예진님~♡ 재독은 너무너무 멋진 일입니다^^* 저도 나중에 꼭 다시 읽고싶어서 소장용으로 분류해두었어요.

잘못 알려드렸어요! 노벨상은 다른 작가예요😅

mini74 2022-02-07 15: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양가휘의 부잣집 도련님 모습이 느글했고 제인 마치의 그 가난한 ? 패션이 넘 멋져보였던 ㅎㅎ 저도 영화로 먼저 보고 책으로 읽은 ㅠㅠ 근데 기억이 가물가물해요.저희때 연인 포스터 엄청 많이 팔았던 기억도 납니다. 작가님 참 힘든 삶을 산 거 같아요 그게 작품의 원동력이 되었지만요 ㅠㅠ

미미 2022-02-07 15:26   좋아요 2 | URL
양가휘 느끼하죠ㅋㅋㅋㅋ그래도 소설을 읽어보니 배역에 잘 어울리는 것 같더라고요ㅋ <연인> 포스터 많이들 샀던걸로 기억해요! 저희 학교앞에도 영화 포스터 코팅해서 잔뜩 팔았거든요. 해설에서 개인사 읽고 슬펐어요ㅠㅠ 그럼에도 다작을하고 이렇게 토하듯 글로 쏟아내다니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