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어? 이 저녁이, 이 밤이 온통 우리 거라는 거."p.127


읽는 내내 행복했다. 아마 번역자도 그랬을거라고 짐작해본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작품을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이 소설을 읽고서야 그녀가 천재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녀는 "모르는 것은 쓸 수가 없다. 느끼지 못하는 것도 쓸 수가 없다. 체험하지 않은 일은 쓸 수가 없다."(패배의 신호,책 머리에) 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사랑과 고통 그리고 고독을 온전히 살아내며 추출한 사강만의 향기가 이 작품 속에서 향기롭게 퍼진다.  


루실은 마치 아버지와 같이 그녀를 사랑하고 보호해주는데다 부유한 샤를의 집에 살고 있다. 자유롭게 방을 따로 쓴다는 점과 루실을 사랑하지만 온전히 소유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샤를과 루실의 관계는 마치 프루스트의 소설속 주인공 마르셸과 알베르틴을 닮았다. 그리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사교계도 등장하는데' 게르망트 부인'을 떠올리게 하는 디안이란 여인의 젊은 애인 앙투안과 루실이 그만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이 둘은 각자 파트너가 있으면서도 그렇게 서로에게 깊이 몰입하게 된다. 


그녀는 앙투안을 사랑했으나, 샤를에게 애착이 있었다. 앙투안은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었고, 그녀는 샤를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았다. 두 남자를 평가하면서 그녀는 정작 자신에게는 -그 둘 사아에 걸쳐있는 자신을 경멸할 만큼-충분한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 충족감의 철저한 결여가 그녀를 잔인하게 만들었다. 간단히 말해서 그녀는 행복했다. p.96


사랑에 빠진 이 둘의 파트너인 샤를과 디안의 반응도 제각각 흥미롭다. 샤를은 루실의 행복을 위해 새장을 열어두듯 그녀의 사랑을 묵묵히 지켜봐주고 기다린다. 반면 디안은 젊은 루실에게 질투를 느끼지만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해 마치 앙투안의 배신이 사실이 아닌것처럼 모른척한다. 결국 서로가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느낀 루실과 앙투안은 좁지만 두 사람만의 애정과 열정으로 가득해진 집에서 살게 된다. 과연 이 둘의 삶은 어떻게 될까? 


"태양, 해변,한가로움, 자유...이게 우리가 누릴 것들이야, 앙투안. 우리도 어쩔 수가 없다고. 그게 우리의 정신에, 피부에 뿌리 박힌 걸. 어쩌면 우린 사람들이 타락했다고 말하는 그런 사람들일지도 몰라. 하지만 난 그렇지 않은 척할 때 , 더 타락했다는 기분을 느껴."  p.239

  

이 소설은 다분히 로멘틱하고 관념적이면서도 철학적이다. 사강이 30대에 쓴 작품이지만 그녀만의 소녀같은 위트와 전율을 부르는 포용적인 사랑이 담겼다. (포용적인 사랑은 샤를에 관해서라고 꼭 언급하고 싶다. "그런 걸 엉거주춤한 왈츠라고 부르는 거요."p.144 마치 영화의 명대사 같은 이 대목을,아마 소설을 읽은 분들은 이해할 것이다.) 프루스트를 떠올렸고 직접 언급도 되었지만 이 작품은 분명 프랑수아즈 사강만의 느낌으로 충만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더불어 여지껏 내가 읽은 사랑에 관한 소설 중 최고였다. 사람은 살면서 사랑과 이별을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불안과 고독을 절감한다. 누구나 소멸의 운명을 향해가기에 젊은 시절과 그것을 닮은 열정,사랑은 항상 문학의 주제가 되어 우리를 유혹한다. 이 작품을 통해 그런 삶의 환희와 아픔을 새삼 경험하고 위로 받을 수 있어서 기뻤다. 


행복은 그녀의 유일한 도덕이었다. p.154







*La Chamade:본문을 통해 짐작하건데 불어로 '퇴각의 북소리'라는 의미인듯하다. 이를 제목으로 만들며 '패배의 신호'로 번역해 보다 로맨스 소설다운 면모가 갖춰진 느낌이다.  








소설인데 마음에 드는 문장이 많아서 공부하듯 북마크를 붙였다. 들쭉날쭉한건 중요도에 따라 표시해보려고 한건데 이것도 너무 많으니 뭐가 더 중요한지 알아보기가 힘이들지경....하







 

  

  



화려한 표지만큼 내용도 알찬 녹색광선 책들~*








  

  

  

 

민음사 프루스트에 신경좀?!!!  

11,12,13권을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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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4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24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1-12-24 13:39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읽는 내내 행복했다니요. 이보다 더 심한 뽐뿌를 본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사강과 좀 안맞다고 생각하는 저조차도 호기심이 가득 입니다. ^^

미미 2021-12-24 13:52   좋아요 3 | URL
두 권 읽어보고 천재는 아닌것 같다고 약간 거품이지않나 생각했는데 이 작품 읽고 생각이 달라졌어요. 온통 마음에 들었습니다~♡ 바람돌이님 🎄메리크리스마스!!ㅎㅎㅎ🎅

mini74 2021-12-24 13:53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로맨틱과 관념적이면서 철학까지인 소설이 너무나 궁금해집니다. 미미님의 사강읽기 넘 멋지네요. 잃시찾 ㅠㅠ 소멸의 운명 속에서 위로가 되는 사랑이 문학의 주제가 되어 유혹한다니 , 미미님 글들이 더 유혹적입니디 ㅎㅎ 미미님 강아지님 옆지기님과 메리 크리스마스 *^^*

미미 2021-12-24 13:57   좋아요 6 | URL
처음부터 끝까지 다 좋았어요~♡ 너무 가슴이 일렁거려서 어제 리뷰를 쓸 수가 없더라고요. 완전 제스타일ㅎㅎ 알아서 홍보를 해버렸습니다😆

새파랑 2021-12-24 13:5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전 미미님의 글을 실눈뜨고 읽었습니다 ^^ 이따 이 책 읽고 큰눈으로 봐야겠어요. 다음 사강누님의 책으로는 <슬픔이여 안녕>으로 가시죠~!!

미미 2021-12-24 13:59   좋아요 5 | URL
네!! 그 책 읽으려고요 새파랑님은 어떠실지 궁금해요. 그녀의 소설을 다 읽어야겠어요 두근두근😄

책읽는나무 2021-12-24 14:2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이 이미 사랑에 빠질만 하군요?
이 밤이 온통 우리 거라는 거....^^
오늘 저녁, 오늘 밤은 특히나 미미님 가정에도 특별한 날 되시길요♡

미미 2021-12-24 14:32   좋아요 5 | URL
이런 말들도 다른 말들도 곳곳에서 심장어택을 마구해요ㅎㅎㅎ 나무님! 가족들과 즐거운연휴, 해피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키라키라 2021-12-24 15:4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넘 좋아 당장 사고픈 맘을 주체할 수 없네요 ㅋ 궁금과 호기심에 맘이 벌렁벌렁~ㅋ

미미 2021-12-24 15:51   좋아요 4 | URL
키라키라님 제가 조금 과몰입하는 경향이 있으니 참고해주세요ㅎㅎㅎ그렇긴해도 사강이 이 책에 담은 애틋함과 강렬한 열정, 상실의 두려움과 쓸쓸한 외로움까지 전부다 흡족했습니다~♡🥲

페넬로페 2021-12-24 15: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을 나름 선택해서 읽지만
읽는 내내 행복하다는 느낌을 갖는 책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미미님께 그런 감동을 준 책이니 매력적인게 틀림없을 듯 해요^^
아직 사강의 책을 접해보지 않았는데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미미님, 크리스마스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모처럼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만날 수 있을것 같아 좋아요^^

미미 2021-12-24 15:54   좋아요 5 | URL
프루스트의 느낌인데 또 사강만의 분위기여서 더 좋았어요~♡♡ 제 인생책이 추가되었고 올해 저의 최고의책이 되었어요ㅎㅎ 페넬로페님도 저와같은 감동과 여운을 얻으시면 좋겠어요!!🎅👍

독서괭 2021-12-24 16: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책 너무 예쁘고~ 미미님 극찬하시니 궁금하고~ 사강 책 자꾸 올라오니 읽어야 하나 싶고~ 잃시찾을 읽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잃시찾과의 비교!! 너무 부럽고~
그렇습니다.. 미미님. 멋진 미미님. 즐거운 성탄/연말 보내세요^^

미미 2021-12-24 16:35   좋아요 3 | URL
이 소설 너무너무 달콤쌉싸름 해요 괭님~♡ 색연필로 밑줄 그었으면 수험서가 됐을거예요ㅎㅎ
저는 늘 부러운게 많은 사람인데 부럽다고 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어요😆 행복하고 웃음가득한 성탄절, 연말 보내세요🎅🤶🎄🌟

햇살과함께 2021-12-24 23: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녹생광선 책 진짜 이쁘네요^^ 소장각입니다!! 크리스마스에도 열독하실 미미님^^ 메리 크리스마스 입니다~

미미 2021-12-24 23:21   좋아요 3 | URL
책 커버 색에 반하고 내용에 더더 반했어요ㅎㅎ소장으로 분류했지요😉 햇살과함께님도 해피 크리스마스, 🎄🎅🎅 행복한연말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1-12-24 23: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는 책 표지가 선명하고 예뻤던 것 같아요.
책에 인덱스를 많이 붙여서 더 예쁩니다.
미미님,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날씨는 많이 춥지만, 행복하고 따뜻한 밤 되세요.
메리크리스마스.^^

미미 2021-12-24 23:24   좋아요 4 | URL
네! 이 시리즈는 표지도 예쁘고 작품들도 다 반응이 좋더라구요. 이 소설도👍오늘 은근히 쌀쌀해서 놀랐어요.ㅋㅋ 건강하고 포근한 크리스마스와 연말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1-12-25 2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크리스마스 잘 보내셨나요.
날씨는 오늘 더 추운 것 같아요.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메리크리스마스.^^

북깨비 2022-02-11 15: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라는 작품이요.. 11, 12, 13권 언제 나오냐고 그 말씀은.. 설마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 10권이나 나왔는데? 😱 이게 대체 몇권 완결인데요?

미미 2022-02-11 15:50   좋아요 2 | URL
네 제가 듣기로 완간까지 민음사에서 총13권까지 나오기로 되어있었는데요 지금 기약이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국일미디어와 시공사에서는 완간되어 있어요. 추가적으로 발견된 프루스트의 자료들이 있어 민음사에서 완성해주면 좋겠는데ㅠ 민음사 책 표지도 예쁘고 번역,주석도 마음에 쏙 들어 완간해주었음 하는데 아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