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달나라에 사는 여인
밀레나 아구스 지음, 김현주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평생 달나라에 사는 여자 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드디어 같은 달나라 남자를 만난 것 같았다. 그것이 할머니가 오래전부터 그리워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P84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면서 눈물을 쏟았다. 몰입도 높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이탈리아의 제노바, 밀라노, 칼리아리의 풍경을 이 책의 문장을 지팡이 삼아 더듬어 걷고 또 걸었다. 과거에 대해 전해들은, 할머니를 많이 사랑했던 손녀의 관점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2차 대전 말 폭격때문에 홀아비가 된 할아버지를 만나 부부가 된 젊은 시절의 할머니는 결석 때문에 홀로 요양을 간다. 그곳에서 역시 결석 치료를 하러 온 재향군인과 할머니는 사랑에 빠진다. 평생을 기다린 사랑은 짧았지만 할머니의 영혼을 흔들었고 남은 그녀의 생애를 가득채울만큼 찬란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 너머 언덕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와 할머니를 향해 투명한 미소를 지어 보이면, 할머니는 너무 좋아서 가슴앓이를 하며 온종일 흥분에 휩싸였다.- P30
할머니는 남편인 할아버지와는 사랑없이 무덤덤하게 지냈다. 잠을 잘 때도 각각 멀찍이 떨어져서 자다가 한번씩 침대에서 떨어질 정도로 서로에 대한 친밀함이 없었다. 결국엔 둘만의 은밀한 게임을 하기도 했지만 그걸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재향군인은 피아노 연주도 좋아하고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할머니가 지은 시를 함께 읽으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할머니의 재능을 보지 못하고 정신나간 사람 취급하던 고향사람들이 이상한 거라며 그녀를 위로할 줄 알았다. 그렇게 재향군인은 외모나 감성 모든 면에서 할머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제 할머니의 공허함은 만노거리의 집과 피아노가 채워 줄 것이다. 재향군인은 할머니를 품에 안고 귓가에 콘트라베이스와 트럼펫, 바이올린, 플루트 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는 모든 오케스트라 소리를 낼 줄 알았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시간 눈밭 행군을 할 때나 수용소 들판에서 독일군들을 즐겁게 해 주느라 개들과 음식 쟁탈전을 벌일 때, 머릿속의 오케스트라악기 소리와 시로 버틸 수 있었다.- P40
결석 때문에 한동안 아이를 가질 수 없던 그녀는 요양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임신을 했고 아들을 낳았다. 이 아들은 재향군인과의 사랑의 결실일까? 아이는 커서 피아니스트가 되어 전세계를 누빈다. 할머니는 평생 재향군인을 그리워하고 잊지 못했지만 그와의 황홀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그녀만의 달나라에서 행복할 수 있었다. 사랑은 역시 사람을 '살게' 한다. 손녀에게 전해진 할머니의 사랑은 그렇게 또 '살아 남아'손녀의 삶을 환하게 밝혀 줄 것이다.
1959년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작가 밀레나 아구스는 이 작품에서 누군가의 어머니 또는 할머니가 가슴깊이 담은 애절한 사랑을 전한다. 2016년에 마리옹 꼬띠아르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개인적으로는 1992년작 마이클 더글라스 주연의 '사랑의 용기'를 떠올렸다.이 소설처럼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남녀의 사랑을 그려냈는데 특히 I'II be seeing you 라는 배경음악이 이 소설과도 무척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