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마 시절부터 나(레누)의 인생을 뒤흔들어 놓은 친구 릴라.(나만 빼고 모두들 그녀를 리나 또는 라파엘라라고 부른다) 릴라는 우리들 중 머리가 가장 좋았고 못된 아이였으며 예측불가였고 특별했다. 나는 사팔 눈에다 절름발이인 엄마를 대신해 릴라를 인생의 롤모델로 정했다. 그녀를 중심에 두고 인생의 항해를 시작한다. 




릴라가 내 인생에 등장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나는 처음에 릴라에게 아주 강한 인상을 받았다. 릴라가 아주 못된 아이였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모두 약간씩은 못된 구석이 있었다. P.32

릴라는 금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였다. 외모는 연약해 보였지만 돌을 던지며 괴롭히는 남자아이들과도 맞설 줄 알았다. 동네에서 다들 두려워하는 돈 아킬레의 집에 들어가고, 공부를 계속하려고 가난한 부모와 맞서다 창문밖으로 내던져지기도 했지만 다시 털고 일어났다. 하지만 수업도 빼먹고 함께 동네를 벗어나 바다에 가기로 한 날, 경계에 이르른 이후로 모든것이 조금씩 달라진다. 릴라는 차차 가족들과 안정적인 자신의 미래를 위해 순응하는 삶을 선택한다. 나는 기회를 얻어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는데 릴라와 함께 '작은 아씨들'과 같은 소설을 써 부자가 되기로 했기 때문에 그녀에게 인정받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한다. 




틈이 나도 나가지 않고 집구석에 틀어박혀 도서관에서 빌린 델레다, 피란델로, 체호프,고골, 톨스토이,도스토옙스키 같은 작가들의 소설을 읽었다. 이따금 아버지의 구듯방에서 일하고 있을 릴라를 찾아가 특히 마음에 들었던 인물들이나 너무 좋아서 통째로 외워버린 문장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일기도 했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떨쳐버렸다. 말해봤자 기분만 상할 것 같았다. P.154 


형편 때문에 중학교 입학을 못한 릴라는 자기 아버지의 구둣방에서 일하며 온통 그 일에 빠져든다. 나는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그녀의 구두 디자인을 보고 구두로 성공하는 미래에 관해 릴라에게서 이야기를 듣노라면 내 성취는 하찮은 것이 되고만다. 그러나 알고 보니 릴라는 남몰래 책을 열심히 빌려다 보며 라틴어와 그리스어 공부등 모든 면에서 이미 학교에 다니는 나를 앞서 있었다. 여기에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고 고등학교에도 진학한다. 사춘기가 지나고 몸과 마음이 성숙해 지면서 이성 문제에도 관심을 쏟게 되는데 동네 청년들의 관심은 눈에 띄게 예뻐진 릴라에게만 집중 된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동네에 살고, 함께 유년기를 보냈고, 함게 열 다섯 살이 된 해를 보내고 있지만 갑작스럽게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계의 큰 희생을 무릅쓰고 중고 시장에서 구하거나 올리비에로 선생님이 마련해준 냄새나는 너덜너덜한 책을 구부정한 자세로 읽는 단정치 못하고 꾀죄죄한 안경잡이 소녀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에 비해 릴라는 무대의 여주인공처럼 머리를 빗어 넘기고 ,영화배우나 공주 같은 옷을 입고 스테파노의 팔짱을 끼고 거리를 활보했다. P.352


초등학교 때부터 나와 릴라를 지지해주었던 올리비에로 선생님은 공부에서 멀어진 릴라가 빛을 잃었다며 크게 실망한다. 결국 결혼에 이르게 된 릴라와 계속 공부를 하게 된 주인공의 삶은 두 갈레로 갈린다. 끈끈한 관계인 두 삶을 비교하고 들여다보며 많은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던 성장 이야기라 좋았다. 2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 이탈리아의 나폴리 한켠에 자리한 가난한 마을 사람들의 아웅다웅 살아가는 모습과 그 속에서 우정을 키워가는 두 소녀의 풋풋한 이야기가 시종일관 웃음을 터트리게 한다. 릴라와 레누에게 서로가 없었다면 그들은 얼마나 암울한 삶을 살았을까. 우정은 그렇게 서로에게 존재만으로도 빛으로 각인되는 것이 아닐까? 나폴리 4부작중 1권인 이 작품에는 등장하는 집안들도 많고 따라서 인물들도 다양한데 각자 개성이 강해 읽는 어려움은 없었다. 줄거리는 다르지만 순수한 우정을 다룬다는 면에서 <모모>를 떠올리게도 했다. 내 인생책이 이렇게 또 추가되었다. 베일에 싸인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말을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책은 한 번 출간되고 나면 그 이후부터 저자는 필요 없다고 믿습니다. 만약 책에 대해 무언가 할 말이 남아 있다면 저자가 독자를 찾아나서야겠지만 남아 있지 않다면 굳이 나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작가 엘레나 페란테





  




해변사진 출처:카페 '스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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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15 16: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둘의 묘한 신경전도 재미있었고 매번 죄절하는 레누에게서 뭔가 짠함도 생겼다가 그 레누가 가진 코딱지만한 희망조차 없음에도 고군분투하는 릴라가 왜 이리 안 풀리나 속상했던 ㅎㅎ 드라마 보고계신가요 미미님 *^^*

미미 2021-12-15 16:36   좋아요 3 | URL
네~오늘 밤에 보려구요!!ㅎㅎ 니노에 관해 스포일 당해서 속상해요😭
저도 읽으면서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 싱숭생숭. 그러나 전반적으로 즐거웠어요. 좋은 소설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미니님^^*🧡

scott 2021-12-15 16: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드라마도 완주!! 미미님 끝까지 완독 하시게 되면 주인공 ✌명 중👆명 미워 할꺼임 ㅋㅋㅋ

미미 2021-12-15 16:40   좋아요 3 | URL
저 안그래도 레누가 넘 노력파라 짠한데 걱정이예요! 게다가 여기 썸이 너무 얽히고 섥혀있어서 심장이 또 아파요ㅋㅋㅋㅋ😆

새파랑 2021-12-15 16: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일단 실눈뜨고 리뷰를 읽었습니다 ㅋ 영화도 있는 작품이군요~!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책상위에는 올려놨는데, 빨리 읽어야 하는데 ^^
역시 친구는 좋은 겁니다~!!

미미 2021-12-15 16:42   좋아요 3 | URL
네ㅋ영화인줄 알았는데 드라마가 있나봐요! 슬쩍 봤는데 여주들 모습이 기대를 충족시켜줘서 좋았어요ㅋㅋㅋ인생에 친구는 필수!!😄

scott 2021-12-15 17:21   좋아요 2 | URL
시즌제로 나눠져서 마지막은 내년쯤? ^^

독서괭 2021-12-15 16: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오 드라마도 재미있을까요?? 궁금하네요!

미미 2021-12-15 16:44   좋아요 3 | URL
드라마 예고봤는데 너무 기대되요! 제가 일부 캡쳐해온ㅋㅋㅋ주인공들 딱 기대하던 모습이예요😁왓챠!

유부만두 2021-12-15 17: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드라마 시즌 두 개 다 봤어요. 책 2권까지 내용일거에요. 책은 책대로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남배우들 비주얼 ;;;; 많이 아쉽지만) 재미있었어요.

미미 2021-12-15 17:50   좋아요 1 | URL
유부만두님도 보셨군요! 저는 왤케 늦게야 알았을까요. 3권 4권도 드라마로 나옴 좋겠네요ㅎㅎ제가 시리즈 다 읽기전에 말이죠😁

난티나무 2021-12-15 17: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캬~~~ 엘레나 페란테 멋지네요!

미미 2021-12-15 18:01   좋아요 1 | URL
그쵸!! 소설도 멋진데 저 문장 때문에 위대해 보임요😆

Jeremy 2021-12-15 17: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소위 ˝My Brilliant Friend˝ 를 시작으로 하는
˝Neapolitan Novels˝이라 불리는 Elena Ferrante 의 책 4권을 주르륵 다 읽었는데
역시 첫 번째 책이 가장 재미있었고 공감이 가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My Brilliant Friend˝ 는 진심 강추.
그러나 4권 다 읽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도 2편까지만?

그나마 그냥 책만 읽고 끝낼 걸,
괜히 이 4권에 대한 온갖 비평과 리뷰까지 찾아 읽다가
이제 Elena Ferrante 를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단어는
누군가가 혹평하며 썼던
omphaloskepsis [äm(p)-fə-lō-ˈskep-səs]
: contemplation of one‘s navel as an aid to meditation
-a form of religious meditation practiced by Eastern mystics
who stare fixedly at their own navels to induce a mystical trance.
>>>an idiom usually meaning complacent self-absorption,
preoccupation with yourself to the exclusion of everything else.

원래는 명상을 위해 온전히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방법 중의 하나였으나
이제는 그 의미가 많이 변질되어
자기만족, 뭐든지 자신을 위주로, 자신한테만 몰입해서
나머지 것들은 배제하는 경향?

동의어라 할 수 있는 navel-gazing
: useless or excessive self-contemplation
- generally a derogatory term referring to
excessive focus on oneself, self-indulgent introspection.

이 단어, omphaloskepsis는 너무나 새로와서
제 머리속에 콕 뿌리 박혔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Neapolitan Novels˝ 4권을 다 읽다보면 작가의
navel-gazing; omphaloskepsis 의 증상이
점점 심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역시 책과 작가를 사랑하는 것도 어느 지점에서 맺고 끊어야야하는 듯!
작년에 출간된 “ The Lying Life of Adults” 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제꼈답니다.
Elena Ferrante 는 이제 안녕!

미미 2021-12-15 18:07   좋아요 2 | URL
Jeremy님은 마치 주인공 릴라처럼 혹은 공부열심히 해서 만점받은 레누처럼 지적인것 같아요!!👍

역시 1권은 모두에게 사랑받고 3~4권이 호불호가 갈리는군요.
최근작도 궁금했는데...
일단 2권 읽으면서 차차 판단해야겠어요.😉

책읽는나무 2021-12-15 18: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엔 레누에겐 화이팅!!!! 했구요.
릴라 당돌하면서도 매력적인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뒤의 권 수 책을 읽다 보면 점점 릴라에게도 연민이 느껴지더군요.
이탈리아 남자들은ㅜㅜ
이젠 나폴리 하면 엘레나 페란테 작가밖에 안떠오른다는~ㅋㅋㅋ
저는 다른 책 시리즈도 읽어 본다고 첫 권 읽다가 또 멈췄네요ㅋㅋㅋ
그 책도 여자들의 묘한 심리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어 놀랐던 기억이 있네요^^
드라마도 나왔다니??
몰랐네요...찾아봐야 겠어요^^

미미 2021-12-15 18:42   좋아요 1 | URL
저도 둘에게 딱 그런 마음이예요!ㅋㅋㅋ이탈리아인들의 성향같은게 조금 느껴지더라구요. 모욕을 당하면 보복을 해야하고 작은 시비꺼리가 과격해져서 패싸움이 되기도 하는거요.
(당시 분위기가 다 그랬으려나...) E.M.포스터 소설에서도 영국과 비교될정도로 정렬적으로 보였는데
으아~ 뒤에 어떤일들이 있을지 걱정되면서 기대되요ㅎㅎㅎ😳

페넬로페 2021-12-15 19: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학교 다닐 때 릴라같이 매력적인 친구가 꼭 있었는데 그런 친구는 친하게 지내기보다 그냥 옆에서 동경하게 되는 친구더라고요.
이 책의 배경이 나폴리라서 더 읽고 싶어졌어요^^^
사진은 영화인가요? 아님 드라마?

미미 2021-12-15 19:54   좋아요 3 | URL
나폴리 가보고 싶어요!!ㅎㅎ 정말 재미있어요. 릴라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흥미로운데다 열심히 따라잡으려는 레누의 노력도 만만찮게 빛나거든요. 거기다 로멘스까지ㅎ 이런 얘기를 잘 썼어야하는데 요즘 또 로봇체로 써집니다🤦‍♀️ 1번 사진은 출판사 소개 페이지에서,두번째는 드라마에서 가져왔어요~♡

mini74 2021-12-16 16: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달인 되신거 무지무지 축하드려요. 우리 앞으로도 오래오래 서로 책 지름 권장하며 행복하게 책 읽어요 ㅎㅎ

미미 2021-12-16 16:45   좋아요 2 | URL
네~♡♡ 미니님!!😆 내년에도 그후년에도 쭉 서로에게 무자비한 책지름신이 되어주기로해요 ㅎㅎㅎ

단발머리 2021-12-18 2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아~~ 미미님! 저 이 리뷰 이제 봤어요. 쭉 따라가며 읽는데 어머나! 예전에 읽었을 때 생각나면서 가슴이 콩닥콩닥!
저도 뒤쪽으로 갈수록 아쉽기는 하지만(1권 두 권 구입 ㅋㅋㅋㅋㅋㅋ) 한때나마 저를 강하게 사로잡았던 페란테에 대해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릴라를 부러워하는 마음에 대해서도 일면 이해가 되구요. 니노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알면 더 화가 난다지요.
즐독하세요. 앞으로 올라올 리뷰도 기대만발입니다^^

미미 2021-12-18 20:45   좋아요 1 | URL
아아! 단발머리님 이 책 저의 인생책이 되었어요!!!ㅋㅋㅋㅋㅋㅋㅋ니노는 그렇게 안봤는데 느낌이 쎄해서(분위기가 딱 거시기 하니까요ㅠ) 이미 저는 마음을 어느정도 정리했습니다😭 감사해요!! 2권도 너~무 기대됩니다🤭